“공중사상사고로 이 열차는 재래선을 이용하겠습니다.”
지난 2월 9일 저녁 KTX 열차를 이용했던 승객 A씨는 갑작스러운 사고 소식을 전하는 안내방송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일반인에게 우리말로 전하는 방송인지라 사고가 있었구나 하고 대충은 이해를 했지만,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상황은 이랬다. 천안아산역을 지나던 서울행 고속철도(KTX) 열차에 선로에 있던 사람이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시속 200~300㎞로 달리는 KTX 선로 주변에는 높은 펜스가 쳐져 일반인이 들어가기 힘든 곳이다. 생각지도 못한 사고에 다들 충격이 이만저만한 일이 아니었다. 사고 수습 등으로 그 시각 달리던 열차들은 일제히 운행이 중단됐다. 운행이 재개된 후에도 중단과 운행이 반복되면서 승객들은 불편을 겪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승객들은 운행 중단에 답답할 노릇이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직원들은 안내방송을 통해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최대한 빠른 시간 운행을 재개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을 것이다. 승객들이 겪어야 할 불편이 한 사람의 소중한 생명에 비할 바는 아닌지라, 안내방송을 얼마나 친절하게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사연을 모른 채 열차안에서 기다리다보면 쌓이는 불만으로 오히려 안전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에 현황 안내 역시 무시할 수는 없는 문제다.
그런데 이같은 상황을 굳이 공중사상사고나 재래선 같은 알아듣기 힘든 용어로 안내해야 했을까. 공중사상사고는 공중 즉 일반인이 열차 충돌 등으로 사망 또는 다치는 사고를 말한다. 재래선은 고속선이 아닌 무궁화호나 새마을호가 다니는 선로를 뜻한다. 선로에서 직원이 아닌 일반인이 사망해 고속철도를 지날 수 없으니 우회해서 운행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승객이 이해하는 용어로 풀어 설명할 생각은 왜 하지 못했을까.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이뿐이 아니다. 최근 국토교통부는 열차 차량 정리를 자동화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자동화 시스템 도입은 지난해 발생한 오봉역 사망사고가 계기가 됐다.
그동안 열차 정리는 기관사와 수송원이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무선기로 교신해 이뤄졌다.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에는 위험한 일도 부지기수였다. 작업이 완료되지 않았는데 기관사가 열차를 움직이거나 열차가 다가오는 것을 작업자가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사망사고까지 일어났다는 것이다.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했던 미국 등에서는 사고가 절반으로 떨어지기도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장비 가격폭등, 노조의 암묵적 반대 등으로 도입되지 못했다. 기관사의 일자리가 없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던 탓이다. 뜻하지 않게 다른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반갑지는 않겠지만 사망사고까지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국토교통부는 2024년까지 8개역 10개소에 무선 차량정리 시스템을 도입하고, 2025년까지 20개역의 수동식 선로전환기를 자동방식으로 개량할 예정이다. 오봉역 사고를 계기로 2018년 시범 도입된 후 5년만에 비로소 본격 도입되는 셈이다.
특정 직업 종사자들의 세계는 일반인의 눈으로 보기에 다른 세계로 보이기도 한다.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너무나 빨리 변하는 세상에서 '그들만의 세상'은 위험해보인다. 이제는 사회와 눈높이를 맞춰야 할 때가 됐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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