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웅제약과 메디톡스 간 분쟁이 장기화하며, 자칫 국내 보톡스 산업 전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달 메디톡스가 대웅제약을 상대로 낸 영업비밀 침해금지 등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대웅제약에는 400억원 손해배상과 나보타 등 보톡스 제조 금지를 명했다. 사실상 보톡스 시장에서 대웅제약을 퇴출시키는 결정이다.
대웅제약이 항소와 더불어 1심 판결 집행정지 가처분에 나서며 급한 불을 껐지만 분쟁은 오히려 산업 전체로 번질 기미다.
휴젤은 이달 메디톡스를 상대로 미국에서 '보톡스 특허'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휴젤도 메디톡스와 미국국제무역위원회(ITC)에서 보톡스 균주 출처를 놓고 분쟁 중인데, 해당 소송의 조기종료가 어려워진데다 대웅제약이 1심에서 패소하며 그간 소극적인 태세를 바꿔 반격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웅, 올해 중국 진출 걸려 있어…시장 “불확실성 커져” vs 대웅 “연내 허가 기대”
박재경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대웅제약과 메디톡스 1심 판결 이후 “(대웅제약의 보톡스)중국 진출 관련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대웅제약은 2021년 12월 31일 중국에 자사 보톡스 '나보타' 생물의약품허가신청서(BLA)를 신청했다. 일정대로라면 올해 허가·판매 등 중국 진출이 유력한 상황이지만 국내 1심 판결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애널리스트는 “중국 식약처 인허가는 (국내 판결이) 최종심이 아닌 1심 결과이며 나보타 자체 품질과 관련된 이슈가 아니므로 절차대로 진행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파트너십 계약의 경우에는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파트너사가 법적 불확실성을 감수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밝혔다.
대웅제약은 여전히 연내 진출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1심 판결 집행정지 가처분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제조와 공급 안정성에 문제가 없다”면서 “연내 중국 정부 허가가 기대되고 현지 파트너십도 견고해 시장 진출에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미국, 유럽과 함께 세계 3대 보톡스 시장으로 꼽힌다. 중국으로부터 보톡스 판매허가를 받은 곳은 우리나라 기업 휴젤을 비롯해 세계에서 4군데에 불과하다.
KOTRA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중국내 한국산 보톡스 제품 수입은 전년도에 비해 188% 늘어 단일 국가 기준 최고 성장률을 기록했다. 20대를 위주로 한국산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 국내 관련 기업에는 '기회의 땅'이다.
메디톡스도 중국 진출을 추진 중이나 현지 파트너로부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 업계 전체로 보면 1~2년 안에 중국 보톡스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기업은 대웅제약이 유일하지만, 자칫 법적 분쟁이 발목을 잡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균주 출처 놓고 극한 대립…“소송 끝까지 갈 것”
대웅제약과 메디톡스의 분쟁은 앞으로 최소 3년에서 최대 5년이 걸릴 전망이다. 양측이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어 대법원 판결까지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두 회사 민사 소송 핵심 쟁점은 대웅제약이 메디톡스 보톡스 균주와 제조 공정을 도용했는지 여부다.
1심 재판부는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통해 대웅제약 보톡스 균주가 메디톡스 균주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메디톡스는 자사 직원이 대웅제약에 이직하는 과정에서 균주와 제품 제조공정 기술문서를 도용해 대웅제약이 균주를 불법으로 취득했다는 입장이다. 1심 판결에서 대웅제약 균주가 메디톡스 균주로부터 유래했다는 개연성을 인정한 만큼 2심에서도 균주 도용에 대한 판단을 이끌어낸다는 방침이다. 메디톡스 관계자는 “1심에서 일부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 항소심에서 다툴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웅제약은 자사 보톡스 균주 출처(용인시 포곡읍 하천변)가 명확하다며 메디톡스 주장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대웅제약은 1심 판결 직후 “편향적, 이중적, 자의적 오판으로 점철된 초유의 판결”이라며 이례적으로 재판부를 원색 비판했다.
특히 1심 재판부가 유전자 검사로 균주 출처를 판단한 것은 과학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유일한 간접증거인 단일염기다형성(SNP) 검사로는 균주 유래 관계를 확증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보편적인 인식”이라면서 “재판부도 계통분석 결과만으로는 두 균주 사이 출처 관계를 곧바로 증명할 수 없음을 인정했다”고 말했다. 소유권 취득, 출처관계 증명, 영업비밀의 특정 및 판단에서 판례와 법리에 어긋나는 자의적인 기준을 적용하여 일방적으로 원고(메디톡스)편만 들었다는 것이다.
민사와 별개로 형사 소송도 계속된다. 메디톡스는 지난 2017년 1월 대웅제약을 산업기술 유출 방지법·부정경쟁방지법 등을 위반한 혐의로 형사고소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2월 해당 사건에 대해 증거불충분 등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메디톡스는 서울고등검찰청에 항고한 상태다.
메디톡스 관계자는 “민사와 형사 소송은 보는 관점이 다른 만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면서 “고등검찰청에 항고를 제기한 만큼 철저한 수사가 진행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양측 주장이 워낙 첨예해 소송을 통한 해결이 유일해 보인다”면서도 “분쟁이 길어지면 결국 국내 보톡스 산업의 브랜드 가치, 국제 파트너십 등 글로벌 경쟁력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승자 없는 분쟁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