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가 미국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 본격 참전한다. 기존 보수적 성장전략에서 탈피, 공격적 투자로 전환했다. 달라진 삼성SDI의 행보에 협력사들도 대거 움직이기 시작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SDI는 제너럴모터스(GM)와 합작법인 설립에 대한 업무협약(MOU)을 교환했다. 최윤호 삼성SDI 사장과 메리 배라 GM 최고경영자(CEO)가 8일(현지시간) 미국 GM 디트로이트 본사에서 만나 2026년 가동을 목표로 GM 전기차에 들어갈 배터리 합작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투자 규모, 생산 능력, 생산 제품 등 세부 사항은 추후 결정할 계획이다.
GM은 그동안 LG에너지솔루션과 협력해 왔다. LG와 얼티엄셀즈를 설립, 지금까지 총 3개 공장 투자를 확정했다. 네 번째 합작 공장도 LG엔솔과 협상을 벌였지만 삼성SDI로 선회했다.
GM은 배터리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특히 파우치 배터리 외 각형·원통형 배터리 수급을 위해 삼성SDI를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는 “다양한 폼팩터(형태)로 배터리를 만들 수 있는 삼성SDI를 최적의 파트너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삼성SDI의 미국 내 전기차 배터리 합작은 지난해 5월 스텔란티스에 이은 두 번째다. 삼성SDI는 국내 주요 경쟁사인 LG에너지솔루션, SK온과 비교해 미국 진출이 다소 늦다는 평가를 받았다. LG에너지솔루션이 GM·혼다 등과 공장을 짓고, SK온도 미국 현지 공장과 포드 합작공장 등을 세운 반면에 삼성SDI는 '정중동'의 신중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지난해 하반기 들어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기회로 작용했다.
손미카엘 삼성SDI 부사장은 4분기 실적 설명회에서 “IRA 이후 더 다양하고 큰 프로젝트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면서 “미국 시장을 목표로 하는 완성차 업체들과 전지 업체의 비즈니스 관계가 많이 창출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철희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IRA로 이차전지 회사들의 협상력이 높아졌고, 삼성SDI는 그간 낮은 시설투자를 진행한 덕에 경쟁사들보다 자금 여력을 갖추고 있었다”면서 “수주 행보를 공격적으로 바꾼 이유”라고 풀이했다.
삼성SDI의 달라진 모습에 협력사들도 바빠졌다. 미국 진출에 대응해 관련 부품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알루미늄 소재의 사각·원형캔, 보호장치인 캡어세이가 대표적이다. 업계에 따르면 상신이디피, 신흥에스이씨, 상아프론테크가 미국 현지 생산을 추진하고 있다. 상아프론테크는 신흥에스이씨에 이어 전기차 배터리용 보호 장치인 캡어세이 신규 공장 설립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신이디피는 삼성SDI 스텔란티스 미국 공장 인근에서 각형·원통형 캔케이스 공장을 세우고 제품을 공급할 예정이다. 삼성SDI는 미국 내에 별도의 배터리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자국 내 생산을 강조한 IRA 영향이다.
업계 관계자는 “솔브레인, 에코프로비엠, 포스코케미칼 등 전기차 배터리 주요 소재 가운데 생산 원가 비중이 크거나 유통 기한에 따른 변질 우려가 있는 양극재·전해액 업체를 시작으로 소재 공급망도 꾸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지웅기자 jw0316@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