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배터리 업계의 미국 진출이 빨라지고 있다. 그동안 LG, SK에 비해 소극적이던 삼성SDI가 스텔란티스에 이어 제너럴모터스(GM)와 미국 내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설립하기로 하면서 미국 현지 진출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배터리 업체에 소재와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사들도 미국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국내 배터리 업계의 미국 투자는 지난해 발효된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영향이 크다. IRA는 미국에서 판매되는 전기차에 대한 세액공제(보조금) 조건으로 북미 조립을 내걸었다. 배터리 광물과 부품도 북미 공급망 내에서 활용할 것을 규정했다.
지원을 받지 못하면 제품 경쟁력이 떨어져서 시장 퇴출이 뻔하니 배터리는 물론 소재도 부품도 미국 현지로 나가려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앞으로 전 세계에서 전기차 수요가 가장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지역이다.
우리 기업의 투자는 기회를 잃지 않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러나 해외 투자 러시가 국내 경제에 좋을 리 없다. 미국 투자로 한국 투자 감소 가능성이 있고, 대기업인 배터리 제조사가 해외로 나가면 소재·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사도 동반 진출하게 돼 국내 제조업의 공동화 시간을 앞당길 수 있다.
해외 투자가 불가피하다면 이제는 빈 자리, 난 자리를 채울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최근 재세능원, 네오배터리머티리얼즈와 같은 중국·캐나다 소재 업체들이 한국에 진출하는 경우가 눈에 띄고 있다. LG, 삼성, SK 등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는 국내 배터리 업체와의 협력을 위해 지근거리로 옮기는 것이다. 2019년 일본의 반도체 수출 규제 이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해외 소재·부품·장비(소부장) 협력사들의 한국 진출을 대거 유도한 것처럼 배터리에서도 공급망을 국내 중심으로 재편할 가능성이 엿보인다. 정부는 이런 때 차별화하고 과감한 정책으로 해외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 국내 산업과 경제를 지켜 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