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기후 때문에 한 해에 한 번 봄에 벼를 심고 가을에 수확한다. 수확 후 비축했던 벼(쌀)는 이듬해 가을 벼 수확기까지 못 가고 이미 봄에 바닥이 났다. 이를 대비해 벼를 수확한 직후 보리를 심어 이듬해 봄에 수확했다. 그러나 쌀이 모두 떨어지는 시기와 햇보리가 수확되는 시기 사이에 힘들게 버텨야 하는 몇개월 공백기가 생기는데 이를 보릿고개라고 했다. 이때는 풀뿌리나 나무껍질 등으로 어렵게 끼니를 때우며 햇보리가 수확되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과학기술 발전과 경제성장 덕분에 식량 생산량이 증대하고, 수입으로 식량 비축량을 충분히 준비할 수 있게 되면서 우리나라에서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보릿고개는 더이상 없다.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또 다른 형태의 보릿고개가 다가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바로 '에너지 보릿고개'다.
우리가 그동안 사용해 온 에너지 대부분은 화석연료로부터 얻었다. 하지만 화석연료 사용은 지구 온난화 원인인 온실가스가 발생하고 이는 전 인류에게 기후 변화와 같은 심각한 위기를 가져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는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화석연료 활용을 줄이는 노력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2050년까지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화석연료 사용량을 가파르게 줄여야 한다. 반면 에너지 수요는 경제 규모 확대와 기술 발달로 더욱 늘어나고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우라늄을 포함해 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 에너지원 93%가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원유, 가스, 석탄 등 3대 에너지원 수입액은 전년 동기 대비 60% 이상 급증하면서 이는 우리나라 무역수지 적자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전력 소비량은 4위인데 에너지 순수입이 2위에 달하는 우리나라는 이제 심각하게 '에너지 보릿고개'를 걱정해야 할 때가 됐다.
지금까지 화석연료를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점점 더 사용할 수 없게 돼 적절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에너지 기근으로 힘들게 버텨야 하는 '에너지 보릿고개'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보릿고개는 쌀 비축량을 충분히 늘리거나 비축량이 떨어지기 전에 보리 수확이 이뤄지면 끝이 날 것이다. 에너지 보릿고개 역시 이를 대비해 적기에 수확할 수 있는 보리를 심어 놓아야 한다. 바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해 줄 미래 에너지원 개발이다. 즉, 화석연료를 대신할 수 있으며 에너지 수입 의존도를 낮춰 에너지 안보 확보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에너지원 개발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난달 23일 국가핵융합위원회를 통해 핵융합으로 전력생산을 실증하기 위한 핵융합 실증로 기본개념을 확정했다.
태양에너지의 원리인 핵융합 반응을 이용한 전력생산 실증을 목표로 하는 핵융합 실증로 개념과 최종목표를 결정하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실현 로드맵 마련과 실증로 설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보릿고개를 끝낼 수 있는 보리를 심는 것처럼 에너지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핵융합에너지를 실현하기 위한 씨를 뿌린 것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7개 핵융합 선도국들이 공동으로 건설하고 있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는 다소 지연은 있을 수 있겠지만 2035년에서 2038년 사이에 대용량 핵융합에너지 생산을 실험적으로 검증하는 계획을 하고 있다. 이 검증이 계획대로 성공한다면, 정부는 핵융합 실증로의 건설에 대해 정책적인 결정을 내리고 추진할 계획을 하고 있다. 이로써 핵융합 실증로 핵심기술 확보를 위한 '골든타임'은 짧게는 2035년까지 12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이번에 확정된 실증로 기본개념을 기반으로 핵융합 실증로 핵심기술을 적기에 확보하고 핵융합에너지를 실현해 우리나라가 무사히 '에너지 보릿고개'를 넘기고 에너지 걱정 없는 세상을 맞이하길 바란다.
유석재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장 sjyoo@kfe.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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