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 스타트업의 '돈줄' 역할을 해온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예금인출 사태와 주가 폭락으로 파산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문을 닫은 워싱턴뮤추얼 저축은행 이후 미국 내 두 번째로 큰 파산 규모지만 국내 시장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1일(현지시간) 현지 언론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은 불충분한 유동성과 지급불능을 이유로 SVB를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파산 관재인으로 임명했다. SVB 영국지점도 파산 선언을 앞뒀으며 이미 거래를 중단하고 신규 고객을 받고 있지 않다.
SVB는 1983년 설립된 신생 기술기업 전문 은행이다. 예금자 대부분이 스타트업으로 이들 자금이 묶이면 미국은 물론 현지 진출한 다른 국가 스타트업의 줄도산과 대량 해고가 우려되고 있다. FDIC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SVB 총자산은 2090억달러(약 276조원), 총예금은 1754억달러(약 232조원)다. 총예금 중 예금보호한도 25만달러(약 3억3000만원)를 넘어서는 예치금은 95%에 달한다.
SVB 파산은 위기가 불거진 지 불과 이틀도 안 돼 갑작스럽게 이뤄졌다. 주요 고객인 스타트업들의 예금이 줄자 미 국채로 구성된 매도가능증권(AFS)을 매각해 18억달러 손실을 입었다는 발표가 도화선이 됐다. 이 발표 후 주가가 60% 이상 폭락하고 자금을 빨리 인출하라는 벤처캐피털(VC) 경고까지 나오자 뱅크런이 발생했다.
SVB는 증자 계획이 무산되자 회사 매각을 추진했으나 금융당국이 이례적으로 빠르게 폐쇄를 결정했다.
현지에서는 SVB 파산 위기가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 SVB가 스타트업에 특화된 데 비해 일반 은행 구조상 SVB처럼 갑작스러운 인출 사태에 직면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각국 정부 개입이 없으면 SVB에 자금을 예치한 스타트업이 잇달아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SVB는 지난 40년간 실리콘밸리에서 스타트업 성장을 도운 만큼 스타트업이 가장 많이 거래하는 은행 중 하나다. 현지 진출한 국내 스타트업과 VC에도 악영향이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내 금융당국은 12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참석한 거시경제·금융현안 관련 정례 간담회에서 이번 사태를 집중 점검했다.
당국 관계자는 “아직까지 이번 사태가 미국 은행 등 금융권 전반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 시각이 우세하지만 글로벌 금융긴축으로 시장변동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국내외 금융시장과 실물경제 등에 대한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앞으로 관련 상황을 24시간 면밀히 모니터링해 우리 경제 부작용으로 확산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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