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온고지신]과학기술 강국 첫걸음...분석과학 인재 양성

권희석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 책임연구원
권희석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 책임연구원

분석과학은 과학기술 분야 전반에 걸쳐 데이터를 수집·분석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 장비와 이를 이용한 분석법을 개발·활용하는 학문이다.

지식을 창출하고 새로운 기술과 산업 발전을 이끄는 근간이다. 분석과학은 의·약학, 생명과학, 화학 등 기초과학은 물론이고 최근 부각되는 헬스케어, 환경모니터링, 법의학까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선진국들은 분석과학 인프라 확충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관련 연구개발(R&D) 투자를 꾸준히 늘려온 결과, 2020년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국내총생산(GDP) 대비 투자율 5위권에 들게 됐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얘기가 다르다. 총 연구개발비 대비 기초과학 분야 투자율은 회원국 중 28위로 하위권에 해당해 실상은 선진국에 비해 매우 부족하다.

이에 반해 기초과학 뿌리인 분석과학 분야는 최근 팬데믹을 거치면서 보다 정밀하고 신뢰도 높은 실험 데이터를 요구하고 있다. 필연적으로 연구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값비싼 고성능 연구장비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이제 돈 없으면 연구도 못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연구 현장은 위축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첨단 대형 연구 장비를 중심으로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과 같은 개방형 공동연구 기관을 설치하거나 대학별 공동실습관 인프라 개선으로 국내 연구자들이 원하는 연구 장비를 공동 이용함으로써, 제한된 예산으로 국가 연구장비 활용도를 극대화해왔다. 이러한 정책은 상당 부분 효과가 있었으며, 국가 과학기술 경쟁력을 견인해 왔다.

하지만 빠르게 늘어나는 연구장비 수요에 비해 여전히 분석과학 분야에 투입할 수 있는 전문인력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최첨단 연구장비를 갖고 있음에도 이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전문인력은 부족한 곳이 많다.

이는 단지 인건비나 장비 유지관리비 등 예산 차원 문제만은 아니다. 전문인력 확보는 보다 장기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행해야 되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분석과학 분야에 대한 선호도가 높지 않아 대학에서 전문인력을 양성하기도 쉽지 않다.

물론 KBSI에서 연구장비 운영·관리, 유지보수 및 분석과학을 전담할 실무 종사자를 양성하기 위해 2012년부터 '연구장비 엔지니어 양성사업' 등을 추진해 왔지만, 이 사업만으로는 연구·산업 현장에서 요구되는 전문가 수요를 감당하기는 매우 벅찬 상황이다.

전문인력이 부족한 원인은 간단하다. 연구장비 도입 예산은 꾸준히 증가한 데 비해 운영 예산은 정부 인건비 통제에 따른 신규 정원 제한으로 안정적인 인력 수급이 곤란해지면서 취업문이 좁아지게 된 탓이다.

이로 인해 대학에서도 분석과학 분야를 기피하는 경향이 자리 잡게 됐다. 초·중·고교 학생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살펴봐도 과학자는 항상 10위권 안에 들지 못한다. 이는 곧 연구 현장에 투입할 인력풀이 황폐화되는 단초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해결 방안은 무엇일까? 분석과학에 필요한 분야별 전문인력에 대한 정확한 수요 파악이 선행돼야 한다. 그리고 연구장비 개발, 운영 및 유지보수는 물론이고 고난도 분석과학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교육훈련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통해 인력양성에 매진하고, 해당 인력을 적재적소에 투입해야 할 것이다.

또 무엇보다 분석과학 전문가 위상을 높여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분석과학기술 혁신으로 과학기술 경쟁력 및 기업 발전에 기여한 현장 엔지니어를 사회적으로 우대하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KBSI가 국내 최초로 시행한 '분석과학 마이스터' 제도는 국내 연구환경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연구원에서는 분석과학 연구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최고 전문가를 선정해 예우하고 후속 전문가 양성을 돕고 있다. 이를 통해 분석과학 역량 대외 신뢰성을 높이고, 분석과학자에 대한 인식 전환에도 기여하고 있다.

과학기술 발전은 지속적인 연구와 혁신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 중심에 분석과학 전문가들의 노력이 있음을 주지하고, 그 성과와 역량을 존중하는 문화가 마련돼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국가 차원에서도 분석과학 분야에 대한 연구지원을 늘리고 전문인력 양성과 함께 연구자들에게 충분한 자원과 연구 환경을 제공한다면, 대한민국 과학기술 미래는 밝을 것이라 확신한다.

권희석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 책임연구원 hskweon@kbs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