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칼럼]복수의결권과 경영권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구글이 2004년 복수의결권 활용으로 창업자가 경영권을 유지하면서 상장에 성공한 이후 메타, 알리바바, 에어비앤비, 텐센트, 드롭박스, 줌, 리프트, 핀터레스트 등 많은 테크기업이 복수의결권을 도입했다. 그러나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테슬라 등은 여전히 도입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20년 6월에 처음 발의됐지만 재벌의 경영권 승계 악용 가능성, 주주평등원칙 위배 및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제도 도입이 3년 가까이 미뤄지고 있다. 복수의결권을 도입한 쿠팡이 뉴욕 증권시장에 성공적으로 상장하면서 혁신생태계 활성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복수의결권 제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복수의결권이란 상법상 '1주(株) 1의결권' 원칙의 예외를 인정하고 안정적인 경영권을 확보하지 못한 대주주에게 보통주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해서 경영권을 보장할 수 있게 해 주자는 제도를 말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가운데 미국, 유럽 등 17개국이 도입했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허용되지 않고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복수의결권 법안은 창업주에 한정하며, 대규모 투자유치로 최대주주 지위를 상실하는 경우 1주당 10개의 의결권을 부여한다. 기간은 최대 10년 이내로 한정하고 75% 이상의 주주 동의를 거쳐야 하며, 공시 대상 기업집단에 편입되면 즉시 보통주식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혁신단체들은 복수의결권이 스타트업의 성장 사다리이자 신규 일자리를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유지하면서 대규모 투자 유치를 할 수도 있고 장기적 관점에서 경영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부터 자유로우며, 기업공개(IPO)를 하더라도 경영권이 보장된다는 측면을 강조하며 법안 통과를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나 전문가들은 법안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국내 기업지배 구조의 후진성과 소수 주주 보호의 낮은 수준을 고려하면 득보다 실이 클 것이란 게 이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몇 년 전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이머징 마켓 소수주주보호 지표에서 한국은 러시아보다 낮은 점수로 20개국 가운데 최저 점수를 받았다.

최근까지 복수의결권 성과에 대한 실증분석은 여러 연구자가 수행했지만 일관된 결론은 도출되지 않았다. 기업가치 제고에 부정적이라는 결과도 있고 긍정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러한 이유는 복수의결권을 허용한 국가는 많지만 실제로 이를 도입한 기업 수가 많지 않고 세부 내용도 천차만별이어서 객관적 비교가 쉽지 않다.

많은 언론이 쿠팡이 미국에 상장한 이유를 복수의결권 때문인 것처럼 분석하고 있지만 사실 쿠팡은 처음부터 미국에 상장을 예정하고 본사를 델라웨어에 설립한 미국 법인이다. 또한 복수의결권을 허용한 나라도 자국이 아닌 미국에서 상장한 사례도 많다. 투자유치나 상장요건 등을 고려했을 때 미국 증시가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복수의결권이 허용되면 우량 기업이 해외 증시가 아닌 국내에 상장할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복수의결권 제도는 창업자의 경영권 방어 수단이 되는 동시에 투자자의 의결권 행사를 제약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지분이 많지 않은 소액주주의 경우 의결권 행사에 더 큰 제약을 받게 된다. 이에 따라 ESG 관점에서 좋지 않은 제도라는 평가가 많다. 또한 무능력한 경영진까지 과도하게 보호해 M&A 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으며, 벤처캐피털의 원활한 투자자금 회수 등 스타트업의 선순환 생태계 조성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

미국 기관투자가협의회(CII; Council of Institutional Investors)는 1주 1의결권 기업에만 투자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규제당국은 물론 주요 증권거래소 운영사들을 압박, 복수의결권 기업의 상장과 지수 편입을 제한하고 있다. 미국의 증권거래위원회(SEC)도 최근 복수의결권 상장기업 증가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해 상장 심사 강화, 지배구조의 투명성 강화 및 규제를 검토하고 있다. 복수의결권의 원조인 구글도 복수의결권을 폐지하자는 안건이 매년 주총에 상정되고 있으며, 이를 지지하는 주주가 점점 늘고 있다.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지분율이 낮아지는 것은 창업자 스스로가 만든 것이지 다른 누군가가 강제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많은 의결권을 원하면 투자를 과도하게 받지 말든가 주식을 더 매입해서 지분을 확보하는 게 공정하다. 자본시장에서 최고 경영권은 복수의결권이 아니라 경영진의 우수한 경영 능력과 실적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이는 스타트업도 예외가 아니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hsryou60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