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가 등장했고, 직업과 업무 방식도 다양화되고 있다. 수십년간 뿌리내려온 전통적인 노동 개념에 대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 개혁은 그 변화에 속도를 가하고 있다. 화물연대 파업에서 보여준 '원칙' 대응은 이번 정부의 노동정책이 과거 정부와는 결이 다를 것임을 보여줬다. 노동조합도 달라지고 있다. 복수의 노조가 서로 다른 가치를 경쟁하고 있고, 청년 노동권을 대변하는 MZ노조가 등장하기도 했다. 그 어느 때보다 노동자, 기업, 정부 간의 소통이 강조되는 시점이다. 노사정 소통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김문수 위원장을 만나 바람직한 노동 개혁과 미래 노동 시장의 방향성에 대해 들어봤다.
-경사노위 위원장 반년, 그동안 성과와 아쉬움은.
▲윤석열 대통령의 법치주의 노동 개혁이 힘있게 추진될 수 있도록 자문과 조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고 상당한 진척도 보인다. 화물연대의 불법 운송 거부 사태에서도 확실한 법치 기조를 세우면서 노동 현장에 무너졌던 공권력이 바로 서고 있다.
1980년대 노동 투쟁 이후 수십년간 노동 현장에서의 법치는 무너져 왔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기업이 해외로 떠났고, 노동 시장 규율도 흐트러졌다. 하지만 노동 법치주의를 통해 불법행위 단속이 시작되면서 현장의 노사 당사자들과 시민들도 좋은 평가를 하고 있다.
경사노위는 조직을 조기에 정비해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자문단'과 '노동 시장 이중구조 연구회' 등을 발족하며 윤 정부 노동 개혁 과제에 대한 전문가 논의를 이어오고 있다. 최근에는 중대재해 관련 '처벌'보다 '예방'이 더 중요하다는 취지에서 '중대재해 예방 노사정 합의문'을 도출하기도 했다.
다만 아직 노사정 협의체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는 부분은 아쉬움이다. 법치 중심 노동 개혁이 아직 거대 노동조합 입장에선 불만으로 작용하고 있다. 위원회는 기본적으로 노동을 위한 플랫폼이지만 노동계가 적극적인 참여를 하지 않고 있어 아쉽다. 지속적인 소통 노력으로 위원회가 노조에 열려있는 공간임을 계속 어필할 계획이다.
-노동 개혁의 올바른 지향점은.
▲우리나라 노동 시장의 고질병인 이중구조 해소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기업과 하청기업, 공공과 민간 그리고 비정규직 근로자까지 직업과 근로 여건에 따라 노동자 사이에도 상당한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
최근 금융권의 평균 퇴직금 규모가 5억원 수준에 달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이런 문제를 더욱 실감한다. 대기업 노조는 파업을 하고 코로나 이전으로 출근 복구 문제 등을 따지는 반면에 노조도 없는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노동권도 보장받지 못한 채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다.
전체 근로자의 86%에 해당하는 분들이 노조 없이 어려운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다. 여기에 플랫폼 노동자 등 새로운 고용 형태도 등장하고 있어 다양한 여건에 맞는 보호 시스템을 강구해야 한다. 우선 노사 관계에 무너진 '법치주의'를 확립하고, 노동환경에 맞지 않는 불합리한 제도와 관행을 고치며 이중구조를 해소해야 한다. 이를 통해 노사가 안정된다면 투자와 일자리가 늘어나고, 열악한 환경의 일자리들도 개선될 것이다.
-올해 경사노위의 핵심 과제는.
▲앞서 이야기한 노사 법치주의, 노사 관계 제도와 관행 현실화 개선을 기본으로 노동 개혁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 이와 함께 지난해 개정된 '공무원 및 교원 노조법'의 근로시간면제 한도(2023. 12. 13 시행)를 경사노위에서 심의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관련 준비를 해야 한다.
초고령 사회에 대응한 계속 고용 논의도 중요한 의제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계속 고용 문제는 급속한 고령화 속도, 연금 수급연령 상향 등을 고려해 볼 때, 임금 체계와도 연관돼 있어 사회적 영향이 큰 주제다. △자율적 정년연장 △정년폐지 △재고용 등 다양한 고용연장 방식 도입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노조 회계 투명성과 불법행위 근절은 어떤 효과를 예상하나.
▲회계 투명성과 불법행위 근절은 시시비비가 있을 수 없는 당연한 것이다. 여기에 '불법과는 타협이 없다'는 윤 정부의 국정철학에 비춰볼 때 이는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하는 부분이다.
노조의 자금이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 따져보면 회계 투명성은 선택이 아닌 의무의 문제다. 조합비는 수많은 조합원이 모은 자금이고, 보조금은 국민들의 혈세다. 노조의 별도 수익이 아닌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조합을 잘 운영하라고 준 돈이다. 그 사용처와 현황을 공개하는 것은 당연하고 거부하면 법의 처벌을 받아야 하는 부분이다.
건설 현장에서 문제되고 있는 폭력 행위는 노사 모두에게 문제가 있다고 본다. 공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사례비 등 금품이 오가고 과중한 업무가 강요되는 사례들이 있다. 또는 현장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다툼이 발생하기도 한다. 노사가 서로 투명하면 되지만 아직 현장에서는 개선할 것들이 많다. 금품을 주고받고 서로의 약점을 봐주는 안 좋은 관습의 반복은 사라져야 한다.
-과거와 지금의 노동운동은 무엇이 다르다고 보는가.
▲지금의 노조는 기득권 권력이 됐다. 거대 노조 단체와 대기업 노조 등은 이제 사회에서 하나의 권력으로 여겨지고 있다. 공무원 노조도 공공분야 70%를 장악하고 있어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기득권 권력일수록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고 국민을 생각해야 하는데, 지금의 거대 노조는 그렇지 않다.
제가 활동했던 1970년대 시기 노조는 민주화 주역으로, 정권을 비판하더라도 상대 얘기를 듣고 토론으로 결론을 도출하는 문화가 있었다. 조직과 집단의 힘으로 노조원 개개인의 판단과 선택을 억누르고 비판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노조는 전투성만 강조되고 있다. 민주화의 전통이 사라졌다, 변하지 않는다면 영국의 탄광노조 이상의 병폐를 가져올 것이다.
노동 운동이 노조만을 위한 방향으로 흐르면 안 된다. 86%의 미조직 취약 노동자들을 위한 연대 차원에서도 역할을 하는 것이 노동 운동의 미래다. 좋은 직장에서 아성을 쌓아 본인들의 이익만 챙기며 다른 이들의 참여를 막는 것은 미래세대 젊은이들에게 절망을 주는 행위다.
전태일 정신을 생각할 때다. 가난한 재봉사였던 그는 보조 직원들과 풀빵 하나도 나눴다. 자기 집단만을 위한 운동보다는 어려운 노동자들을 위해 열린 자세로 희생하고 봉사하는 노조 문화가 정착되었으면 한다. 노동 운동의 도덕성을 회복해야 한다. 지금은 사람이 귀한 시대다.
-근로시간 논쟁은 어떻게 보는가.
▲해당 사안은 처음부터 입법 절차를 거쳐야 하는 문제다.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지금의 여소야대 국면에선 어려운 점이 있다. 여기에 노동자, 사회적 여론 모두 등을 돌린 상황이다. 지금으로선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당초 취지 자체는 근로의 유연성 확대다. 노동시간 증가가 아니라 노동 총량이 줄어드는 제도였지만 이점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았다. 현실에선 거의 불가능하지만 '주69시간'이라는 프레임만 강조되면서 국민적 오해가 커졌다.
윤 대통령도 재검토를 지시했다. 현장의 실태를 좀 더 보고 연구를 할 필요가 있다. MZ세대 등 다양한 세대와 계층들의 의견 수렴을 통해 보완하고, 노사가 합의할 수 있는 수준의 연구와 실태조사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경사노위 차원에서는 의견 수렴 노력을 할 것이다. 연차휴가를 얼마나 사용하고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몰아서 쉬는 것이 왜 어려운지 등을 정밀히 파악해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노조 단체와의 소통 회복 계획은.
▲여러 시도는 하고 있다. 공동 봉사활동을 제안하기도 하고, 기업체의 노조 행사에도 자주 참여하며 지역 현장의 각 지부를 만나서 의견을 청취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 노조 총연맹의 현 정부에 대한 대치 기조는 쉽게 해소되지 않고 있다. 노동 현안만 가지고 이야기를 하면 좋겠지만 너무 정치적인 문제를 논한다. 한국노총과는 최근 집행부와 간담회를 가졌고 비공식 회동을 통해 대화 재개를 노력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1998년 2월 탈퇴 이후 24년째 불참하고 있다. 설득해 나가야 하지만 난제가 많다.
그나마 최근 중대재해 관련 노사정 합의가 있었던 점은 의미가 크다. 과거 공장에서 안전관리기사를 2년 정도 했었다. 당시 현장 근로자들은 번거롭다는 이유로 안전 관련 지시를 잘 따르지 않았다. 국회의원을 처음 했을 당시, 악수를 하다보면 손가락이 없으신 분들을 많이 만나기도 했다. 지금은 많이 줄어서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처럼 노동 현장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챙겨야 할 가치들이 있다. 특히 산업재해처럼 정책, 제도와 함께 교육, 현장 문화까지 바꿔야 하는 사안은 노사정 모두가 힘을 합쳐야 가능한 부분이다. 노사정이 함께 협력해야 하는 중대하고 시급한 이슈들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관계를 회복해 나갈 계획이다.
-인공지능(AI) 시대, 새로운 노동 시장의 해법은.
▲AI와 로봇 시대가 다가올수록 기본적인 형태의 노동은 점점 그 시간이 줄어들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노동의 성격과 효율을 증대하는 쪽으로 간다면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도 나타날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새로운 기술 진보에 따라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하겠지만, 총량적인 관점에서 보면 '사라지는 일자리'와 '생겨나는 일자리'의 수가 같아질 것이라는 주장도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다.
개인 스스로도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20살 대학이 끝이 아닌 신기술을 배우기 위한 또 다른 교육이 필요해질 것이다. 공부하지 않고서는 적응할 수 없는 시대며 평생 교육이라는 자세로 자기주도 학습을 해 나가야 한다.
정부는 이를 위한 사회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전통적인 교육도 신기술에 맞춰 바꿔야 하고, 그 과정도 다양화시켜야 한다.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노동자들을 위한 전직훈련과 사회안전망 등 지원을 통해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
다만 모든 것을 개인 맞춤형으로 정부가 다 준비해 줄 수는 없다. 여기에 반드시 함께해야 하는 것은 노동자들 스스로 대전환을 대비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바른 노사 관계서 기업의 과제는.
▲노사 관계의 기본은 노동조합과 기업의 역할에 달려있다. 하지만 현재의 기업은 정부 뒤에만 있고 노사 관계를 선진적으로 이끌어가려는 역할이 부족하진 않았는지 성찰해야 한다. 기업·지역·업종·전국 단위에서 노동조합을 파트너로 인정하고 현장의 문제와 제도개선 과제 등을 허심탄회하게 대화로 풀어나가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출산율을 보면 이제 노동자들을 구하기 힘든, 사람이 귀한 시대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구내식당 메뉴부터 직장 분위기, 휴게실 인테리어 하나까지 사람 중심 경영이 묻어나야 한다. 과거에는 '돈을 얼마나 벌 것이냐'가 기업 경영의 핵심이었다면 지금은 '어떻게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것이냐'로 바꿔야 한다. 직원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는데 사람에게, 소비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는 없다.
대기업은 원·하청 상생을 위한 모델을 만드는 데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중소기업은 지불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 과제들이 해결되어야 우리나라의 노동 이중구조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앞으로는 새로운 기술로 인해 일하는 방식에서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것이다. 위험한 작업은 사라지고 단순 노동 시간도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노동자가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기술 변화에 따른 새로운 기업문화와 노동문화에 대해 노사 모두가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때다.
◇김문수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은...
1951년 경상북도 영천에서 태어나 경북고등학교,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대중들에게는 경기도지사를 지낸 보수 정치인으로 많이 알려져있지만 마흔이라는 나이까지 노동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선두에 섰던 투사로 두 번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지역 연고가 없는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에 출마해 당시 현역 국회의원이었던 박지원 후보를 꺾고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내리 3선을 하고 32대, 33대 경기도지사를 지냈다.
산업안전관리기사, 택시운전자격 등 다수의 자격증을 취득하고 있으며 실제 현장에서 안전기사와 택시기사로 활동했다. 특히 경기도지사 시절 현직에 있으면서 주말을 이용해 택시를 운전, 도민과의 소통 행보를 실천하면서 관심을 받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특유의 친밀함으로 유명하다. 힘 있는 악수와 밝게 웃는 표정, 소탈한 말투로 허물없는 첫인상을 준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노동운동가, 정치인, 행정가로서 쌓아온 경험들을 용광로에 녹여내고 있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 사진=이동근기자 fot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