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으로 국내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투자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이재명 당대표 주재로 지난 21일 '미 SVB 사태 대응 벤처·스타트업 업계 간담회'를 열었다. 중소벤처기업부에서도 16일 'SVB 파산 대응 리스크 점검회의'를 개최했다. 아직 SVB 파산 영향을 정확히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그 영향은 처음 우려한 것보다는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정부가 예금 전액을 보호하겠다는 파격적인 조치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SVB 파산이라는 외부 요인으로 며칠 사이 스타트업 업계의 어려움이 여론의 깜짝 관심으로나마 이어진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스타트업은 SVB 파산과 별개로 이미 경기 침체와 투자 감소로 매우 어려운 상황을 보내고 있기 때문에 뒤늦은 관심이라도 필요하다.
중기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벤처투자 금액은 6조7640억원으로, 2021년 7조6802억원에 비해 11.9% 감소했다. 분기별로 보면 2022년 3분기와 4분기는 전년 동기 대비 38.6%, 43.9%로 급감했다.
지난해 초만 하더라도 투자자들은 스타트업 성장 가능성에 주목했고, 당장 실제 수익을 올리지 못하더라도 기업 규모가 커지고 있다면 과감하게 투자했다. 이로 말미암아 시드 투자는 물론 시리즈 A, B, C에 이어 프리IPO 단계까지 적극적인 투자환경이 조성돼 한국에서도 투자생태계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다는 기대가 시장 참여자들에게 널리 공유됐다. 그러나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세계적 경기 침체는 투자자에게 스타트업의 성장 가능성과 수익성을 둘 다 확인해야 투자하는 보수적인 방향으로 정책을 수정하도록 만들었다.
문제는 투자 위축의 어려움이 스타트업 업계 전반에 고르게 분산됐다면 그나마 상황이 더 나빠지지는 않았겠지만 이와 반대로 특정 단계의 스타트업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막 창업한 초기 스타트업이 정부의 창업 패키지 등 지원을 받고 가능성을 인정받아 5억원 이하의 시드 단계 투자까지 유치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후 데스밸리를 지나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해야 하는 성장기의 스타트업에 필요한 투자 시장은 말라붙었다.
벤처캐피털(VC)도 투자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는 출자자(LP)를 모집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투자 여력이 있다 하더라도 지금 당장 돈을 벌 수 있고 성장 가능성이 검증된 후기 단계 스타트업에 집중하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막 정부의 창업 지원을 졸업한 업력 3년 이상의 스타트업 대부분은 당장 돈을 벌지 못하고 매출 실적이 없어서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게 된 것이다. 그 결과 투자만 제대로 받았다면 유니콘으로도 성장할 수 있는 양질의 스타트업이 도약은커녕 사업 축소와 인원 감축을 하는 등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동력이 떨어지고 있다.
더욱 문제인 것은 민간 투자자들도 더 이상 여력이 없고 어렵기는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한 예로 벤처펀드 출자사업에서 신생 운용사끼리만 경쟁하는 루키리그가 위축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루키리그에 2개의 운용사를 선정해서 각 40억원을 출자할 계획이었지만 이번 달 해당 계획을 취소했다. 군인공제회 같은 큰 규모의 출자자들이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실적이 검증된 대형운영사 위주로 출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자금 조달 능력이 뛰어난 대형 VC와 신생 VC 간 양극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스타트업 투자 생태계는 스타트업의 성장 단계별로 이에 걸맞은 다양한 규모의 VC 투자가 활발히 이어져야 비로소 활성화될 수 있다. 그런데 중간 허리 단계의 투자가 위태롭게 됐으니 기껏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창업 초반의 어려움을 극복해 낸 스타트업들이 더 도약할 발판이 사라진 셈이다.
중기부 통계자료에서도 2022년 중기 스타트업(업력 3~7년)에 대한 투자가 2조7305억원으로 2021년에 비해 7509억원(21.6%)으로 가장 크게 감소했고, 후기 스타트업(업력 7년 초과)에 대한 투자는 2조285억원으로 3105억원 13.3% 감소했다. 같은 기간 초기 스타트업(업력 3년 미만)에 대한 투자만 2조50억원으로 전년 대비 1452억원(7.8%) 증가했다.
또한 올해 통계에서는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벤처투자의 중심을 바꾸겠다는 정부의 기대와 달리 시장의 우려대로 민간투자는 위축됐다는 점이 확인됐다. 애초 2023년 모태펀드 1차 정시 출자 공고에서 정부는 1835억원을 출자해 2800억원 규모의 벤처펀드를 신규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를 분석해 본 결과 한국벤처투자가 운용하는 지역혁신 벤처펀드(모펀드) 330억원과 글로벌 펀드(모펀드) 235억원을 제외하면 모태펀드의 최대 출자 비율은 56.8%에 이른다.
반면에 2022년 1차 정시 출자 당시 3700억원 출자에 총 결성액 1조3181억원이 모여 모태펀드 출자 비율이 28%에 그친 것에 비하면 2배나 뛴 것으로, 그만큼 민간 참여가 저조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스타트업·벤처투자 업계에서는 모두 한목소리로 정부의 모태펀드 예산 확충을 요청하고 있다. 초기 스타트업 육성과 데스밸리 극복은 창업진흥원을 중심으로 한 정부의 창업 지원으로 감당할 수 있지만 이후 투자 단계에서는 모태펀드가 확충되어야 경기 침체 국면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해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예산심사 당시 중기부에서는 모태펀드 예산이 감소하더라도 회수예산을 활용하기 때문에 보완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지만 올해 모태펀드 2차 정시 출자에서 확인된 회수예산은 3505억원으로 2022년 5628억원에 비해 2123억원이나 감소했다. 2023년 모태펀드 예산 3135억원과 2022년 모태펀드 예산 5200억원까지 감안하면 1년 사이 4188억원이나 줄어든 것이다. 그나마 2021년 회수예산 2555억원에 비해서는 약 1000억원 많지만 2021년에는 모태펀드 예산만 8000억원이었다.
지금 정부에서는 SVB 파산 사태, 이후 불거진 크레디트 스위스 은행의 위기가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없는지 면밀하게 살펴보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서두에서 설명했지만 아직 이번 사태의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국내 스타트업을 위한 신속한 조치는 추경을 통한 모태펀드 예산 확충밖에 없다.
적어도 2022년 모태펀드 예산 5200억원과 2023년 모태펀드 예산 3135억원의 차액인 2065억원 규모로 추경을 편성해야 한다. 그래야 어려움에 빠진 스타트업계가 투자 혹한기를 버티고, SVB 파산 사태로 인한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
홍정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waytohong@naver.com
〈필자〉홍정민 의원은 서울대 경제학 학사 졸업 후 석·박사과정을 수료한 경제전문가다. 현재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소속돼 있다. 삼성경제 수석연구원과 로스토리 주식회사 대표로 활동해 왔다. 21대 총선에서 경기 고양시병에 출마해 당선, 국회에 입성했다. 21대 국회 초반에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활동하는 등 산업과 경제 관련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했다. 변호사, 경제학박사, 융·복합 금융전문가, 벤처 최고경영자(CEO)라는 다양한 이력을 쌓았다. 당내에서는 정책위원회 부의장, 원내대변인 등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