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산업에서 디지털 혁신이 가속화되며 법률서비스 시장에서도 법률과 기술이 결합된 리걸테크(Legaltech)가 주목받고 있다. 리걸테크는 법률서비스 시장에서 정보통신기술(ICT) 및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서 선보이는 새로운 유형의 서비스로, 공급자인 변호사와 수요자인 국민 모두에게 긍정적 가치를 창출하며 법률서비스 시장 규모를 확대·발전시키고 있다. 리걸테크에 대한 국민의 기대도 높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 국회 스타트업 연구모임 유니콘팜, 스타트업얼라이언스와 공동으로 진행한 '전문직 서비스 플랫폼'에 관한 설문조사에서 국민 10명 가운데 8명(82%)이 '법률 플랫폼이 소비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그러나 '세계 최고 ICT 강국'이라는 국가 이미지와 국민 호응에도 국내 리걸테크 도입 및 발전 속도는 굉장히 느리다. 법률서비스 시장의 미래를 위한 디지털 혁신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불과 15년 전만 하더라도 '디지털 전환'이라는 용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금은 너무나 익숙한 '애플리케이션(앱)' 기반의 플랫폼 서비스도 당시에는 흔치 않았다. 많은 소통이 오프라인에서 이뤄졌고, 대부분 업무는 수작업으로 진행됐다. 정보를 찾기도 쉽지 않고, 그마저도 한정된 공간에서 제한된 정보를 접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보기술(IT)과 스마트폰의 등장은 디지털 대전환을 가속화했고, 이제 우리는 시공간 제약 없이 대량의 정보를 탐색하며 쉽게 온라인에서 상품을 구매하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디지털이 빠르게 적용된 산업군도 금융, 유통, 헬스케어, 모빌리티 등 무궁무진하다. 이로 인해 수많은 일자리가 창출됐고, 산업의 성장은 시장 확대로 이어졌다.
그러나 디지털전환 시대에서 국내 법률 분야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국내 법률서비스 시장은 정보 비대칭이 극심하다. 변호사 수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 등장 이전인 2011년 기준 약 1만2000명에서 2023년 기준 약 3만3000명으로 급증했지만 1인당 사건 수임 건수는 2008년 6.97건에서 2021년 1.1건으로 감소했다. 국민의 법률서비스 이용 현황을 봐도 대법원의 '민사 본안 및 형사사건 변호인 선임 현황'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1년 3월까지 민사 본안소송 1심에서 원고와 피고 모두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나 홀로 소송'이 전체의 72.7%에 이른다. 원고와 피고 가운데 한쪽만 변호사를 선임한 사건까지 포함하면 무려 92.7%다. 변호사 수는 증가했지만 '나 홀로 소송'에 처한 국민이 많다는 것은 여전히 변호사 사무실 문턱이 높다는 것을 뜻한다.
결국 낮은 사법접근성은 불법 법조 브로커에 의존하는 결과로 이어져 변호사와 국민 모두를 어렵게 만든다.
리걸테크는 이러한 정보 비대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먼저 지인, 전관, 불법 법조 브로커에 의존하던 기존의 아날로그 방식에서 IT를 통해 변호사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변호사와 의뢰인의 만남을 공정하고 정당하게 양성화할 수 있다. 변호사도 의뢰인과 편리하게 소통하면서 사건 수임을 위한 시간과 노력 비용을 줄이고, 기존 사건 경험 및 전문성 중심으로 분야 및 지역별 홍보를 효과적으로 하면서 본업인 법률 문제 해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
또한 변호사 업무를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도록 돕는 법률 IT 솔루션을 활용하면 사건 처리 속도 및 업무 효율성을 높여 단위 시간 안에 더 많은 사건 처리가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AI 기술이 적용된 판례 검색 및 분석, 법률 서식 초안 작성 등의 서비스는 변호사가 전략 수립에 집중할 수 있는 업무 환경을 제공한다. 이외에도 상담, 고객, 사건, 문서 등을 통해 변호사 업무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도록 지원하면 같은 시간 동안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수 있는 사건 및 국민의 수가 늘어난다. 이는 국민의 사법접근성 향상과 법률서비스 시장 확대로 이어지게 된다.
해외에서는 이미 여러 리걸테크 서비스가 국민의 사법 접근성 확대를 위해 많이 활용되고 있다. 선진 법치국가에서의 리걸테크 발전이 특히 눈부시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트랙슨(Tracxn)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전 세계 리걸테크 업체는 약 7000여개, 투자 규모는 113억달러(약 14조8900억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48억달러(6조3200억원)의 투자는 최근 2년 사이에 이뤄졌다.
미국에서는 아보, 로켓로이어 등 수백 개의 법률 플랫폼이 등장, 변호사와 의뢰인 연결 및 소통을 활발하게 지원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대표적인 법률 플랫폼 '벤고시닷컴'이 2014년에 상장, 일본 변호사 가운데 50% 이상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ARAG가 '리걸 파이낸싱'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리걸 파이낸싱은 경제적인 이유로 소송을 포기하는 국민에게 대출, 보험 등을 통해 변호사 선임 및 소송 비용을 지원하는 '금융 상품'을 말한다. 정부·의회·법원의 정책이나 법 및 판례 규제 정보 등을 AI와 빅데이터 기술로 수집·분석해서 신규 법안의 입법 확률을 예측하는 서비스도 있다. 한국계 미국인이 창업해 지난해 나스닥에 상장하며 화제가 된 피스컬노트가 대표적이다.
이처럼 해외 리걸테크는 다양한 영역에서 혁신적인 서비스를 출시하며 법률 소비자인 국민과 공급자인 변호사, 나아가 기업·정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에게 편익을 제공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리걸테크 영역 가운데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서비스 형태인 법률 플랫폼을 두고 대한변호사협회가 가입한 변호사를 징계하도록 하는 규정을 만들어 리걸테크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형국이다.
국내 리걸테크 업계가 시름하는 사이 해외 리걸테크 기업은 기술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최근 미국의 AI 기업 오픈AI가 선보인 챗GPT의 등장으로 각종 산업에서 기술 혁신은 거스를 수 없는 변화로 인식하고 상생 방법을 활발하게 고민하고 있다.
그럼에도 각종 그림자 규제와 이해관계자와의 갈등으로 혁신 기회가 박탈된다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해외 기술·서비스에 주도권을 빼앗기게 될 것은 자명하다. 국내 리걸테크 산업이 경쟁력을 갖추고 발전하기를 원한다면 정부·국민·변호사 모두의 적극적인 관심은 필수다. 치열한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고 독자적인 기술로 당당하게 경쟁하려면 지금이라도 리걸테크의 가능성을 이해하고 적극 지원에 나서야 한다. 혁신을 외면한 대가는 고스란히 미래세대에게 빚으로 돌아갈 것이다.
정재성 로앤컴퍼니 부대표(공동창업자) js.jung@lawcompany.co.kr
◇정재성 로앤컴퍼니 부대표(공동창업자) 프로필
정재성 부대표는 고려대에서 산업공학과 금융공학을 전공했으며, 경영학을 부전공으로 공부했다. 졸업 후 약 3년 동안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앤드컴퍼니'에서 경영 컨설턴트로 근무했으며, 법률서비스 시장에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변화를 일으키고자 2012년 김본환 대표와 함께 '로앤컴퍼니'를 창업했다. 현재 로앤컴퍼니는 국내 1위 법률서비스 플랫폼 '로톡'을 비롯해 법률 정보 검색 서비스 '빅케이스' 등 법률서비스의 대중화와 선진화에 기여할 서비스를 다양하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