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원이 달라진 인공지능(AI) 활용, 학교폭력 등 학생들의 생활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에 대한 대응, 데이터 활용을 위한 보안까지.
29일(현지시간) 개막한 세계 최대 에듀테크 전시회 '벳(Bett) 쇼 2023' 디지털 교육 혁신 현장에 전 세계 이목이 쏠렸다. 교육 현안들을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국내 교육계 전문가와 정부 관계자들도 발걸음이 빨라졌다. 맞춤형 학습 제공이나 교사의 업무 경감에 디지털 전환 정책 초점이 맞춰진 국내 상황과 달리 폭넓은 영역에서 디지털 혁신을 가속화하고 있는 모습이 확인됐다.
◇인프라·기술 표준·AI에 팔 걷어 붙인 영국 정부
질리언 키건 영국 교육부 장관은 Bett 쇼에 참석해 교육 혁신의 기본인 네트워크 인프라와 누구나 안전하게 도입할 수 있는 기술 표준, 게임 체인저로서의 AI를 강조했다. 영국은 우리나라가 교육 분야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는데 여러 분야에서 모델로 삼고 있는 나라다. 학교가 문제 해결을 위해 자율적으로 에듀테크를 활용할 수 있도록 생태계가 구축된 점 때문이다. 학교 인터넷 인프라 측면에서는 우리가 앞서지만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기 위한 영국의 정책적 행보에 주목할만 하다.
키건 장관은 Bett 쇼에서 향후 교육 분야 혁신을 위한 계획을 발표했다. 우선 연결성을 위해 2025년까지 모든 학교에 기가비트 광대역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지역·학교마다 인프라 격차가 큰 점을 감안해 우선 55개 지방 당국에서 연결 표준을 충족하지 못한 열악한 학교에 와이파이 네트워크 업그레이드부터 시작했다.
키건 장관이 강조한 두 번째 키워드는 '기술 표준'이다. 키건 장관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기술은 비용이 많이 들고 학교에서 저질러서는 안 되는 실수”라면서 “잠재적으로 유해하고 부적절한 온라인 자료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는 것을 포함해 학교가 효과적이고 안전한 전략을 개발하는 데 (기술표준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9월에 우선 교육 투자지역인 블랙풀과 포츠머스에서 시범서비스부터 시작한다고 밝혔다.
키건 장관은 교사들이 여전히 수업 계획이나 학생 관리, 채점 등에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기 때문에 AI가 교사 업무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영국 교육부는 이날 AI가 교육에 가져올 기회와 위험에 대해 설명한 성명서를 발표하며 AI와 함께 하는 여정을 시작했다. 규제기관, 연구원, 교육자 등 전문가들과 논의를 시작했으며, 이런 방식 자체가 AI 규제에 대한 정부의 혁신적 접근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키건 장관은 한국의 사례도 언급했다. 그는 “우리는 에스토니아의 통합 교육 데이터든, 한국의 모범적인 AI 전환 리더십이든, 모범 사례를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학폭 대응, 정신건강까지…넓어진 에듀테크 영역
국내서는 국회 청문회까지 열릴 정도로 학교 폭력 해결이 큰 화두로 떠오른 상태다. 이 같은 상황은 비단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학생들의 폭력이 악화되기 전에 관리하고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은 전 세계 학교의 숙제다. 아보(Arbor)와 같은 학교 경영정보시스템(MIS) 전문기업들은 학생들의 행동과 심리 상태까지 관리할 수 있는 기능들을 선보였다. 학생들의 출석상태, 성취도 수준뿐만 아니라 행동(behaviour) 항목 중 폭력과 같은 부정적인 사태가 얼마나 자주 일어났는지를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 기능이다.
라이트스피드시스템은 위험 상태에 있는 학생들을 찾아 대응하는 솔루션을 소개했다. 그동안 유해 언어 등을 걸러내는 필터 솔루션을 영국과 유럽 학교들에 공급해온 이 회사는 학생의 위험에 보다 빨리 대응할 수 있는 '라이트스피드 알러트'를 선보였다. 자살, 폭력 등 학생 상태가 위험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단어를 검색하거나 SNS에서 사용할 경우 관리자가 곧바로 학생에게 연락해 실시간 위험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해주는 솔루션이다. 위험한 단어를 입력했을 때 학생에게 일단 연락하고 연결이 되지 않으면 경찰이나 커뮤니티 등으로까지 연결해준다.
투심플(2Simple)은 코딩 프로그램, 학생 성취 수준을 관리할 수 있는 툴과 함께 학생들의 체육활동관리, 정신건강관리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MIS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에듀테크 플랫폼들이 대시보드를 통해 학습자나 교사의 상태와 활동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점도 눈길을 끌었다.
챗GPT로 촉발된 AI의 활용도는 더욱 세밀해졌다. UAE 에듀테크 기업인 알레프(Alef)는 AI를 활용해 맞춤형 교육을 지원하는 플랫폼을 시연했다. 과학에 관심있는 학생이 마치 아인슈타인과 대화하듯이 질문에 답하고, 자동문장생성 기능을 통해 문장을 넘어 이야기까지 풀어낸다. 자동으로 프레젠테이션이나 교육자료도 만들어준다. 센추리(Century)는 영어·수학·과학을 중심으로 초등 2학년부터 성인에 이르는 맞춤형 학습을 지원하는 플랫폼을 전시했다.
에듀테크 활성화와 함께 데이터 보안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시큐어스쿨, 넷서포트, 와치가드 등 에듀테크에 최적화돼 데이터 보안을 제공하는 솔루션들이 대거 전시장에 등장했다. 데이터 공유와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동시에 보안에 대한 공감대도 커지고 있다. 다양한 플랫폼과 기술들이 서로 보완해주면서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29일 캐롤린 라이트 BESA(영국교육기자재협회) 사무총장을 면담하고 “에듀테크 기업과 학교현장을 연결해주기 위해 정부와 민간이 협력하는 영국의 에듀테크 생태계 조성 정책은 우리나라에도 큰 시사점을 준다”면서 “학교는 다양한 에듀테크를 자유롭게 체험한 후 구매하고 민간기업은 현장 수요를 반영해 제품을 개발하는 에듀테크 선순환 체제를 구축하는 데 있어 정부가 촉매제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앞으로 에듀테크 진흥 정책 수립시에 이런 점을 적극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런던(영국)=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