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의 사회적 역할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최근까지 이어졌던 코로나19 사태가 이를 잘 보여줬다. 직접적인 역할을 하는 백신은 물론이고 질병 전파를 막는 데 활용된 모든 기반이 과학기술 산물이었다. 과학기술은 우리 사회 곳곳을 발전시키고 위험까지 막아준다.
김재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원장은 이런 지금이 바로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이 시험대에 오른 시점이라고 피력했다. 국가와 사회현안 해결에 주도적 역할을 해 '왜 출연연이 필요한가'를 국민에게 입증해야 한다고 했다.
KISTI가 활약할 여지가 많다고도 말했다. 현재 과학기술 발전 근간이자 핵심자산은 누가 뭐라 해도 데이터다. KISTI 전문분야다.
김 원장은 이번 인터뷰에서 지난 2021년 취임 후 연구원들과 함께 치열하게 고민해 기획을 마련하고, 또 수행해 온 '국가사회현안 프로젝트'들을 소개했다. 취임 후부터 많은 공을 들인 덕에 몇몇은 이미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몇몇은 아직 더 힘써야 한다고 했지만, 이들모두 향후 파급력이 큰 프로젝트라는 것이 느껴졌다.
취임 3년차를 맞은 김 원장에게 KISTI의 역할과 노력, 각 프로젝트 면면과 의미,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어봤다.
대담=최정훈 전국총괄국장
-취임 후 2년이 지났다. 임기 중 진행한 국가사회현안 해결 노력들이 점차 빛을 보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원장 취임하면서 해야할 가장 중요한 역할로 꼽은 것이 '출연연의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출연연은 편한 일만, 혹은 자기 연구만 하는 곳이 아니다. 각종 국가사회현안 해결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잘하는 데이터 분야 역량을 활용해 그동안 우리 사회가 풀지 못한 매듭을 풀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러면서 우리가 '주연'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동안 KISTI 역할을 돌이켜 보면 '조연' 역할에 치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다른 곳 연구자에게 컴퓨팅 파워와 데이터를 제공한다. 논문 작성으로 예를 들면 우리는 지원 역할을 담당해 '공동저자'에 머물렀지 '주저자'는 아니었다.
이런 구도를 깨보자는 것이 제 결심이었다. 지금은 데이터 시대고, 데이터 솔루션이 곳곳에서 힘을 발휘한다. 데이터를 중심으로 다양한 국가와 사회 현안에 뛰어들어 출연연의 미션에 충실하고, 주연으로 거듭나자는 것이었다.
10개 정도 중점 프로젝트를 꾸려 기관 역량을 집중했고, 상당 부분 효과를 내고 있다.
-팬데믹 시기에 취임한 만큼 감염병 대응 분야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안다.
▲그렇다. 감염병의 경우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이 우리 역할이 아닌만큼, 데이터를 활용한 대응 방안 모색에 나섰다.
인공지능(AI) 기반 감염병 대응 기술들을 개발했다. 전 세계 빅데이터를 활용해 감염병이 어떻게 발생하고 전이되는지 모니터링하는 기술이 그 성과다. 9곳 출연연 연구진과 협력해 미지의 감염병 위험징후를 사전에 탐지해 예방하는 AI 기술을 개발했다.
전 세계 실시간 질병 뉴스, 세계보건기구(WHO)가 제공하는 국가별 독감 발생 데이터, 국가별 바이러스 서열데이터, KT 로밍데이터 등 다양한 빅데이터로 학습용 데이터셋과 AI 모델을 만들었다.
이것으로 변이나 전파양상을 예측할 수 있다. 빌 게이츠재단에서도 관심을 가져 도움을 받았다.
앞으로 미지의 감염병은 반드시 온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2015년에는 메르스, 그 이전 2009년에는 신종플루가 있었다. 5~6년 주기로 신변종 바이러스 창궐에 따른 질병 대유행이 전 세계인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우리 노력이 향후 새로운 팬데믹 대유행에 훨씬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국민 안전 확보를 위해서는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했는지.
▲국민 안전은 등한시할 수 없는 최대 현안이다. 그래서 안전 기술 구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여러 가지 위협 형태에 대응하는 첨단 기술들을 확보했다.
먼저 우리 기관과도 친숙하고, 중요성이 날로 커지는 사이버 위협 분야를 들 수 있다. AI로 패턴을 찾아 공격을 막는 기술을 갖추는 데 힘썼다.
또 다른 노력 분야는 '소리지능' 기술이다. 언어 지능과 달리 말 그대로 소리를 듣고서 위험 여부 등을 파악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매우 중요하고, 성장 가능성도 막대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소리지능은 개발이 쉽지 않다. 유리잔 하나 깨지는 것도 소리 형태가 수백가지다. 그렇지만 소리센서는 카메라보다 싸고, 국제 표준화 등 번거로운 일이 전혀 필요 없다. 다양한 상황에 대한 소리 데이터를 축적하고 연구를 지속하면 향후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다.
아주 어렵게 두 가지 성과를 냈다. 먼저 우리 기업 파트너인 'ASTI' 회원사 중 한 곳인 SMI와 협력해 소리로 유독가스 누출 등을 파악하는 모델을 개발한 성과가 있다.
또 한국철도기술연구원과도 협력해 열차 사고 위험을 사전에 소리로 진단하는 기술을 개발해 특허 출원을 준비 중이다. 이들 모두 아주 획기적이면서, 국민 안전 확보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성과다.
-설명 기술들은 국방 영역에서도 활용이 가능하겠다.
▲물론이다. 앞서 설명한 사이버 보안 기술의 경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러시아가 전쟁 개시 전에 우크라이나 주요 정보체계를 공격해 전세 우위를 가져간 것은 익히 알려진 얘기다.
우리가 개발하는 소리지능으로는 '총 소리'를 인지하는 것도 가능하다. 국방과 관련된 경호에도 쓸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기술이 진작에 활용됐다면'하고 생각한 일도 있다. 지난해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암살 당했는데 두 번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첫 번째는 실패했는데, 경호원들이 이를 총격으로 인식하지 못한 것 같다. 그 때 뉴스를 접하면서 '총성인지 여부를 바로 알고 즉각 대응했다면 경호에 성공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소리지능 기술은 당연히 휴전선에 경계 보조 역할로도 활용할 수도 있다. 총성을 비롯해 다른 여러 소리에 대응해 외부침입을 감지한다면 경계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KISTI는 데이터 기술을 무기체계 상태기반정비(CMB+)에도 적용했다. 무기체계 운영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해당 무기가 언제 고장이 날지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
군수 영역에서는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무기체계 도입 후 관리를 위한 부품 조달을 훨씬 체계화할 수 있다고 한다. 신무기 개발에도 당연히 도움이 된다.
그래서인지 방산기업도 우리 기술 개발에 다수 참여하고 있다. 우리도 그 중요성을 크게 봐 이달 초 'CMB+특화연구센터'도 열었다. 우리 기술 개발이 향후 군수산업 발전에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산업 성장에 영향을 끼치는 또 다른 프로젝트도 있는지.
▲'데이터 농업' 연구 프로젝트가 있다. 빅데이터와 AI로 최적의 농산물 생육 레시피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단순히 키우는 것을 돕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시장 수요 현황에 맞춰 출하 생산량을 조절할 수도 있게 체계를 만들고 있다.
만드는 것은 복잡하지만, 성공한다면 누구나 효율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된다. 더욱이 이 체계는 일부만 이득을 보는 것이 아니다. 농업은 농부나 유통업자뿐만 아니라 농약이나 종자를 파는 공급업자도 관여한다. 이득을 보는 사람이 무궁무진하다.
농촌진흥청, 충남대 농대 등과 공동 연구센터 설립을 준비 중인데, 우리 역시 컨테이너 팜을 만들어 작물을 키우는 중이다. 또 농진청의 60년 농업 데이터 공부도 하고 있다. 데이터를 정비하고 표준화해 플랫폼을 만들고 다양한 비즈니스 종사자들이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우리 계획이 잘 실현된다면 많은 국민이 함께 건전한 농업 생태계를 이루고, 농업 자체의 미래성장을 견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프로젝트가 많은데, 꽤 진척도가 높고 성과도 나오고 있다. 쉽지 않았을텐데.
▲몇몇은 원장 취임 전부터 생각해 온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것이다. 일례로 소리 지능 연구는 5년 전부터 구상한 것이다. '언젠가 써먹어야지' 생각했다.
취임 초부터 강조한 '애자일(Agile)' 방법론이 이들이 진척을 보이는데 힘을 발휘한 것 같다. 상황에 기민하게 대응해 시작도, 방향 수정도 바로 시행하는 것이 애자일이다.
각종 현안 프로젝트는 애자일 팀을 구성해 그림만 나오면 바로 실행했다. 짧으면 이틀 만에 발령을 내 일에 착수한 경우도 있었다.
-추진하는 일들이 현 정부의 디지털플랫폼정부와 같은 곳을 보는 것 같다.
▲데이터를 중심으로 연계와 융합을 이루는 점에서 같은 궤를 달린다. 우리 성과가 특수한 분야를 다루는 것도 있지만, 일반적인 것도 많다.
또 국가사회현안에 대응하는 만큼 여러 측면에서 디지털플랫폼정부에 힘을 보탤 부분이 많다. 디지털플랫폼정부와 연동하면 굉장히 파괴적인 효과를 낼 것으로 본다. 안 그래도 디지털플랫폼정부 전문기관협의회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플랫폼 구축에 꾸준히 협력하고 있다.
직접적으로 정책적인 부분에 활용할 수 있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일례로 소·부·장 사태를 비롯한 글로벌 공급망 위기에 대응해 은행과 언론데이터, 각종 기술동향, 미국 공시정보 등으로 원부자재 공급망을 관계분석하고 모니터링 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여러 기관이 가진 정책 데이터를 통합하고 공유한 빅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고, 과학적 정책 의사결정이 가능하도록 하는 일에도 참여하고 있다.
정리=
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
◇김재수 원장은...
전자전산 공학 박사로, 30년 넘게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을 지키고 있다. 특히 데이터, 소프트웨어(SW) 분야에서 활약했다. 2008년부터 9년 동안 국가과학기술지식정보서비스(NTIS) 사업단장을 맡았고, 2018년부터 원장 취임 직전까지 국가과학기술데이터본부장을 역임했다.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과학기술정책 전공 책임교수, 차세대 정보컴퓨팅기술개발 사업추진위원회 민간위원을 역임했고, 빅데이터 민간 합동 태스크포스(TF) 위원도 지냈다. 과학기술기관장협의회장, 한국융합학회 상임고문, 한국기술혁신학회장, 한국콘텐츠학회 부회장, 한국정보관리학회 부회장,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부회장 등 이력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