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배용준·최지우 주연의 '겨울연가'가 일본 중년 여성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며 시작된 한류는 K-콘텐츠와 K-팝을 필두로 전 세계로 급속히 확산됐다. 이후 K-푸드, K-화장품, K-바이오 등으로 확대돼 글로벌 문화 콘텐츠 시장의 확실한 강자로 자리 잡았다.
2023년 이후 K-열풍 주역의 다음 타자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K-디지털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소프트웨어(SW)와 플랫폼 등에서 다소 약세를 보이던 한국 디지털 산업이 K-DID(한국형 디지털 신원인증체계)로 불리는 디지털 인증 기술을 무기로 글로벌 디지털 시장을 석권할 것으로 예측한 것이다. 근거는 우리나라가 국가 차원의 디지털인증을 세계 최초로 성공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병무청은 2020년 공공기관 최초로 병무청민원 포털 사이트에 블록체인 전자지갑 민원 서비스를 시작했고, 2021년부터 같은 기술이 적용된 '모바일 공무원증'이 서비스됐다.
행정안전부는 2022년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신원인증(DID) 기술이 탑재된 디지털 운전면허증 제도를 시행, 실물 면허증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시대를 열었다. 비트코인 광풍으로만 인식되던 블록체인 기술이 K-DID이라는 실생활에 유용한 기술로 재탄생한 것이다. DID는 중앙 서버에 개인정보를 모아 두지 않고 개인 단말에서 관리하며, 위·변조가 불가능한 블록체인에는 정보의 진위 여부만 기록하기 때문에 해킹이나 데이터 위·변조 등으로부터 안전하다. 국가 단위에서 블록체인 기반 DID 기술을 활용, 국민의 신원을 인증하는 방식은 해외 몇 개 국가의 주(State) 단위에서 실행한 것을 제외하면 우리나라가 최초다.
DID 기술이 탑재된 디지털 신원인증서비스는 국가유공자증, 주민등록증 등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이후 등기증(대법원), 외국인등록증(법무부), 학생증(교육부), 건강보험증(보건복지부), 각종 자격 증명(고용노동부) 등 다양한 분야에 디지털 인증 체계가 도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디지털 플랫폼 정부 구현을 위해 지난해 9월 '디지털플랫폼 정부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국민에게는 편리한 민원서비스를 제공하고, 해외 진출 등으로 국가 신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취지다.
최근엔 행안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주축으로 세계에서 가장 앞선 기술로 평가받고 있는 한국형 DID 기술의 국제표준화 작업을 서두르고 있으며, 이를 위한 오픈소스 개발은 물론 정부·학계·기업이 참여하는 커뮤니티 설립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한국의 DID 플랫폼은 국가 차원에서 디지털 인증을 도입한 선진 사례로 소개되며 많은 국가가 앞다퉈 문의해 오고 상황이다.
그러나 최근 우려할 만한 일이 발생하고 있다. 정부의 디지털플랫폼 확산과 K-DID의 세계화를 위한 행안부와 과기정통부의 노력에 모든 부처가 하나로 힘을 모아야 함에도 일부 정부 부처가 독자적인 디지털플랫폼 구축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국내 디지털 인증 플랫폼이 일원화되지 않으면 이중 투자에 따른 국민 부담이 가중될 수 있고, K-DID의 국제표준화를 시도하고 있는 중앙정부·민간·학계의 노력과도 어긋난다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국내에서의 표준화를 배제하고 글로벌 표준에 성공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로 여겨진다. 지금은 정부 부처의 소통과 협력을 통해 국내 신원 인증 체계를 통합하고 미래 대한민국 100년을 좌우할 K-디지털의 국제화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할 때다.
류재철 충남대 교수 jcryou0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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