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지역소멸과 저출산이라는 전대미문의 인구문제에 직면했다. 특히 지역소멸 문제는 저출산 문제와 겹치면서 해법을 찾기가 더욱 어렵다. 정부는 지역소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방소멸대응 기금을 매년 1조원씩 10년 동안 투자할 계획이다.
지방자치단체도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선 백약이 무효다.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115곳이 인구소멸 위험지역으로 나타났고, 더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우리 삶의 터전은 지역 간 발전 격차로 수도권과 대도시 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졌다. 지난 40여년 동안 인구 이동이 수도권과 대도시 쪽으로 크게 쏠렸다. 이들 지역이 더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한 이 같은 흐름의 방향은 쉽게 바꾸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정부나 지자체가 추진하는 지역소멸방지 정책의 지향점은 명료하다. 도로 신설·확장, 상하수도 설비, 소하천 공원화, 문화·체육·복지 시설 건립 등 이른바 아날로그 사회간접자본(SOC) 확충을 통해 지방 생활 수준을 높여서 수도권과 대도시 쪽으로 편향된 인구 이동 규모를 가능한 한 줄이는 것이다.
지방소멸 대책과 관련해 목도한 장면 하나가 떠오른다. 어느 군에서 지역민 복지 증진을 위해 읍·면 소재지마다 생활편의 시설을 하나씩 건립했다. 그런데 그 가운데 한 곳은 완공 때부터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갔고, 다른 한 곳도 오래 가지 못하고 운영을 멈췄다. 모두 시설수요자인 주민 수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인구 감소를 막겠다고 복지관을 건립했는데 인구 감소 때문에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생긴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한 것일까. 아날로그 SOC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일정 규모 이상의 인구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SOC는 인구 감소 초기 단계에는 어느 정도 정책 효과를 발휘할 수 있지만 이후 단계부터는 효과가 감소된다.
그럼 보완책은 있는가. 지금은 디지털 대전환시대다.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빅데이터 등 디지털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이것을 활용한 생활편의시설, 디지털 SOC도 다양하게 출현하고 있다. 디지털 SOC는 인구 규모에 덜 종속적이다. 아날로그 SOC 확충만으로는 정책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는 만큼 디지털 SOC를 적극 활용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어떤 디지털 SOC를 설치해야 할까. 철저하게 주민과 함께해야 한다. 생활 속에 감춰져 있는 미세한 불편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어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발 빠른 지자체는 섬 지역 물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IoT를 활용, 빗물 저장과 이용을 과학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빗물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한다고 한다. 또 다른 지자체는 전기장판을 사용하는 시골 어르신 가정의 화재 방지와 고독사 예방을 위해 IoT를 활용한 전기 사용 패턴 분석 사업을 하겠다는 소식이 들린다. 디지털 SOC 확충은 생활 밀착형 사업이다. 주민 참여 지향적인 사업이기도 하다. 지역에 디지털 수요를 발생시킴으로써 디지털 기업을 유인해 지역디지털산업 생태계 조성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지역소멸시대, 역외 인구를 불러 올 수 없다면 역내 인구라도 지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주민 삶의 불편을 최소화해 줘야 한다.
아날로그 SOC와 디지털 SOC 가운데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일까에 고민이 생긴다면 “나이 많은 어르신만 사는 마을에 4차로 도로 확장 사업이 그분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요?”라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시골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정부의 지방소멸 대책이나 섬 발전 종합계획 등 각종 지역균형개발 계획에 디지털 SOC 확충 사업이 많이 포함되기를 바란다.
이재영 한국지역정보개발원장 jy128@klid.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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