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부터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 사회 문제를 부르는 마약성 진통제가 있다. 바로 '펜타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일반인, 학생에까지 퍼지면서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강력하고 빠르고 간편하게 진통 효과를 낸다. 그리고 이는 그만큼 마약으로서 위험성도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래 참을 수 없는 극심한 고통을 겪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뚜렷한 이유 없이 극심한 통증이 몰려오는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CRPS)' 환자, 말기 암 환자, 신체절단 환자 등에 쓰인다.
펜타닐 약효는 모르핀의 50배에서 100배에 달할 정도로 높다. 매우 적은 양으로도 효과를 낸다. 점막으로 빠르게 흡수되는 특성이 있어 CRPS 환자는 극미량을 막대 상태 형태에 담아 입에 물어 활용하기도 한다. 패치 형태로도 만들 수 있어 편의성이 크다. 이 때문에 수많은 마약 중독자들이 펜타닐에 손을 뻗고 있다.
약효만큼 중독성이 막강한데, 투약량이 조금이라도 많다면 사망 사고도 잇따른다. 지난해 미국 시민단체 '펜타닐에 반대하는 가족(Families Against Fentanyl)'이 낸 보고서에 따르면 2015~2016년 미국에서 펜타닐 과다복용으로 사망한 이들은 20만9491명에 달한다.
2㎎이 채 되지 않는 매우 적은 양으로도 사람이 죽을 수 있는데, 의약용이 아닌 불법적으로 만든 것이라면 용량이 정확하지 않아 뜻하지 않은 사망자가 양산된다.
과다 투여 시에는 질식해 죽게 된다. 그 원리는 이렇다. 우리 몸은 체 내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면 호흡중추에 이를 알려, 숨을 참을 때 생기는 고통인 '질식통'을 유발해 숨쉬기를 유도한다.
그런데 펜타닐은 이런 신경 신호전달을 차단하고, 위험 상황에서도 전혀 고통스럽지 않게 한다. 자연스럽게 호흡이 줄고, 이 탓에 뇌가 산소를 공급받지 못하게 된다. 펜타닐 과다복용 해독제도 질식통 감각부터 살려주는 약물이다. 마비된 호흡중추를 회복시켜 숨을 쉬게 만든다.
이런 와중에 최근 미국 휴스턴대 연구진이 '펜타닐 백신'을 개발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체 내에 펜타닐 항체를 형성, 약물의 뇌 유입을 방지하는 것이 핵심 원리다.
펜타닐과 같은 약물은 혈관에서 '혈뇌장벽'이라 불리는 막을 통과해 뇌로 침투, 우리 신경계에 악영향을 미치는데 이런 이동을 차단하는 것이다. 백신이 만들어낸 항체는 펜타닐 분자에 달라붙게 되고 활동을 둔화시켜 혈뇌장벽 통과를 방해한다.
당연히 펜타닐을 써도 환각과 같은 마약 효과를 느낄 수 없다. 호흡을 방해하는 일도 막아 사망 사고를 원천 차단할 수 있다.
연구진은 '디프테리아'로 불리는 병원체에 펜타닐과 유사한 구조가 있다는 점에 착안, 백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쥐를 이용한 동물 실험에서는 백신을 투여한 쥐가 이후 펜타닐을 맞아도 정상 수준의 고통 반응 속도를 보였다. 펜타닐 기능 차단에 성공한 것이다.
연구진은 현재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초기 결과에는 전혀 이상이 없어, 향후 실제 펜타닐 중독자를 막을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다.
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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