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이 연일 협의회를 열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원팀'임을 보여 주기 위한 액션이다. 또 '정책 엇박자'를 최소화하고 정책 집행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효과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붙는다.
대표적인 것이 전기·가스 요금 인상이다. 이와 관련해 당·정 협의회와 민·당·정 협의회 등이 무려 네 차례나 진행됐다. 그러나 간담회 때마다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함께했다”는 원론적인 내용만 고장난 녹음기처럼 반복하고 있다. 인상 폭과 시점에 대한 진전된 논의는 없다.
인상 시점에 대한 언급은 '금기어'가 되어 가고 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당정협의회 후 인상 시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시점은) 말하지 않았다” “의견 수렴 단계다” “여건 문제다”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등 요리조리 답을 피하고 있다.
요금 인상을 반길 국민은 없다. 저항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미 한 차례 학습 효과도 있었다. 지난겨울 '난방비 폭탄' 사태를 겪으며 여론이 악화한 것을 체감했다. 곧 다가올 여름의 '냉방비 폭탄'이라는 비난도 두려울 것이다. 국정 지지율이 부진한 현 상황에서 굳이 스스로 찬물을 끼얹기가 여간 조심스럽지 않을 것이다.
현 정부는 문재인 전 정부의 에너지 포퓰리즘을 맹비판했다. 그러나 어느덧 그대로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최근 여당 지도부 내에서도 요금 인상 찬반 여부를 놓고 입장이 갈린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인상안을 놓고 저울질할수록 내부 분열은 더 심해질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이야말로 국민 눈높이에 맞춘 설득이 가장 용이한 적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치르면서 국제 에너지 가격은 급등했다. 지난해 평균 액화천연가스(LNG) 수입가격은 톤당 1053달러로, 2021년 평균가 550달러 대비 무려 2배 가까이 상승했다. 전 정권만을 탓하기에는 군색하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LNG 수입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요금을 꼭 올려야 한다면 제때에 해야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 정부·여당이 계속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기만 하면 불안감만 키울 뿐이다. 이대로 눈치 보는 데 시간을 허비할 경우 더 큰 시한폭탄 사태를 맞을 수도 있다. 전력산업 자체가 붕괴하고, 그 부담은 또 국민에게 돌아간다.
지금 당장 요금을 인상하면 안 되는 이유를 찾을 거라면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낫다. '고물가 속 국민 부담 최소화'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결국 '표심'을 의식한 '쇼'로 비춰질 뿐이다. 그럴 바에야 하루빨리 손을 떼는 게 당의 지지율을 위해 나은 선택이다.
최근 당정은 유류세 인하 조치도 연장했다. 지난해 말부터 세 차례 연장돼 온 유류세를 여론 눈치 때문에 또 붙잡혔다. 한시적으로 유류세 인하를 적용하는 나라가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장기간 유류세 인하 조치를 하진 않는다.
갈 길이 멀다. 차일피일 눈치 보며 미룬다고 해서 에너지 공기업의 빚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한시적으로 지지율 하락이 불가피하겠지만 '그래도 정부·여당이 할 일을 한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 이보다 앞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포퓰리즘' 법안이라며 강력히 반대한 것이 국민의힘이다. 포퓰리즘 쓰나미는 비극의 시작이다. 결단이 필요하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