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자영주권(이레지던시) 제도 도입을 추진한다. 한국 진출을 원하는 스타트업이 거주비자 없이도 법인 설립부터 은행 거래까지 온라인에서 편리하게 비즈니스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에스토니아를 사이버 강국으로 만든 전자영주권 제도를 벤치마킹, 글로벌 창업 대국인 '스타트업코리아'의 주요 수단으로 삼겠다는 취지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2월부터 부처 내에 국정과제 추진을 위한 자율기구인 사이버경제추진단을 설치하고 전자영주권 도입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전자영주권은 유럽 발틱해 연안에 위치한 에스토니아가 2014년 세계 최초로 도입한 제도다. 외국인이 에스토니아 현지 전자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제공하는 디지털 신분증이다. 온라인으로 법인 설립과 은행 거래 등 비즈니스 활동을 할 수 있다. 온라인에서 10~15분이면 신청할 수 있고, 1개월 정도 승인 절차를 거쳐 취득한다. 체류와 거주 권한을 주는 비자와는 구분된다.
중기부는 에스토니아가 전자영주권 제도 도입 안팎으로 스타트업 창업 열풍을 이뤘다는 점에 착안, 제도 도입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전자영주권을 통해 에스토니아에 창업한 외국 법인은 지난 4월 10일 기준 2만5591개에 이른다. 총 10만여건의 전자영주권 발급자 가운데 25%를 차지한다.
일자리 창출 효과뿐만 아니라 스타트업 친화적인 제도 운영으로 해외투자 유치와 전자서비스 수출 등도 덩달아 상승세를 타고 있다. 주핀란드대사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자영주권 제도를 통한 세수가 1750만유로를 기록했을 정도다. 이처럼 에스토니아에서 전자영주권 제도가 안착하면서 포르투갈과 우크라이나도 관련 제도를 도입, 운영하기 시작했다.
중기부는 올 상반기에 발표할 스타트업코리아 조성을 위한 대책에 관련 내용을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스타트업코리아는 윤석열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제시한 슬로건으로, 정부에서 글로벌 창업대국 환경 조성을 목표로 합동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종합대책에 관련 내용이 담기더라도 과제는 있다. 외교부는 물론 행정안전부, 출입국관리소 등 범부처 단위로 조율해야 할 문제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도 외국인 전문인력 비자 발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 데다 스톡옵션 부여와 매각에 따르는 불편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중기부 관계자는 “우수 인력 국내 유입을 촉진하기 위한 대안으로 여기고 있지만 쉽지 않은 과제”라면서 “내부 검토에 들어간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중기부는 당장 전자영주권 도입이 어렵더라도 온라인에서 누구나 쉽게 법인을 설립하고 해외로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디지털 벤처밸리를 가상공간에 조성하는 방안을 스타트업코리아에 담을 예정이다. 중기부 내부에서는 'K스타버스(가칭)'라는 플랫폼 명칭도 정해 뒀다.
중기부 관계자는 “큰 틀에서 국경 없는 창업을 통해 스타트업 해외 진출은 물론 우수 스타트업의 국내 진출까지 지원할 수 있는 플랫폼을 조성할 계획”이라면서 “전자영주권은 물론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