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부품·장비(소부장) 관련 기사를 보면 '소부장 이슈를 제대로 담을 정책이 과연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게 된다. 전혀 생각지도 않은 소재가 갑자기 큰 문제가 되는가 하면 해결된 것으로 보이던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큰 문제가 되리라고 예상한 것이 빗나가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언제든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요소수가 불러온 물류 대란, 잊힐만하면 등장하는 희토류 이슈, 계속 오를 것만 같던 리튬 가격이 안정세를 보이는 것 등 예측을 불허하는 느낌마저 든다.
공급망 충격을 연이어 받게 되면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정책에 집중하게 되고, 폐쇄적인 공급망의 지역화를 추구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양질의 소부장 제품을 세계 전역에서 값싸게 공급받아 성능 좋은 완제품을 시장에 값싸게 내놓을 수 있는 글로벌 공급망이 경제적 효율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게 된다.
지역화나 인위적 재편으로 공급망을 안정시킬 수 있으나 필연적으로 원가를 상승시켜 수요 감소를 불러오므로 경제적 효율성이 떨어지게 된다.
이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공급망은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지속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지금까지 공급망 정책이 안정화에 초점을 두었다면 앞으로는 경제적으로 지속 가능한 공급망 구축이 관심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심각한 공급망 붕괴를 경험한 데다 지정학적 요인으로 글로벌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심화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풀어야 할 숙제는 만만치 않다. 공급망의 취약성을 극복하면서도 경제적 효율성을 갖춘 지속 가능한 대안을 찾아야 한다. 지속 가능한 공급망은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경제 주체의 관심 대상이기 때문에 공급망 재편 움직임을 눈여겨봐야 한다.
글로벌 공급망의 중심축인 미국의 움직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7월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LG 사이언스파크를 방문해 행한 연설에서 미국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옐런 장관은 취약한 공급망으로 말미암아 가격이 상승하고 생산이 감소했으며 그 원인이 무역을 지정학적 무기로 사용하는, 시장에서의 위치를 악의적으로 이용하거나 거래를 방해하는 특정 정부에 있다고 했다. 이를 돌파하는 전략으로 신뢰할 수 있는 무역 파트너(동맹)와의 경제적 통합을 심화해 공급망을 연결하는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을 언급했다. 미국은 쿼드(Quad) 및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IPEF) 등과 협력해 기후(변화), 반부패, 인권, 공급망 탄력성을 포함하는 새로운 국제 규칙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했다. 이런 움직임은 미국조차도 공급망의 취약성을 단독으로 해결하고 지속 가능한 공급망을 구축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우리 대안은 무엇인가. 주요 경제 주체의 공급망 지역화 추세는 우리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는 지속 가능한 공급망 구축이 절실하기 때문에 프렌드쇼어링 움직임을 주시하고 적극 대응해야 한다. 첫째 기후변화나 반부패 등 새로운 규칙의 바탕이 되는 부분에 선제적으로 대응, 경쟁력을 기를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소부장의 저탄소화와 친환경화를 적극 추진해서 선진국을 앞질러 가야 하며,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대열에 서야 한다. 둘째 누구나 친구(프렌드)가 될 수는 없다. 우리를 공급망 파트너로 삼을 수밖에 없도록 초격차의 소부장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치밀하고 과감한 선택과 집중으로 많은 글로벌 소부장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셋째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 핵심 광물 자원처럼 우리 능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영역이 있다. 우리와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는 국가에 투자를 확대해서 함께 번영할 수 있는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프렌드쇼어링은 우리만의 노력으로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쉽지 않은 소부장 영역의 한계를 돌파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프렌드쇼어링 관점에서 현재의 소부장 전략을 들여다보면 더 많은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박종구 나노융합2020사업단장 jkpark@nanotech2020.org
-
정현정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