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반도체 산업에 대한 미국 정부의 강경입장으로 국내에서 때아닌 미국 반도체 정책과 일본과 대만의 반도체 정책 등 해외 정책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 반도체가 국내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막대할 뿐만 아니라 미래 산업에서 가장 핵심적 역할을 할 부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반도체의 중요도는 비단 동북아시아와 미국에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유럽 역시 반도체가 기술적으로 산업적으로 중요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국내에서 유럽의 반도체 기조가 어떠한지는 좀처럼 조망하지 않는 듯하다.
유럽연합(EU)은 최첨단 반도체의 역내 생산역량이 부족한 상황으로, 반도체 경쟁력 강화 및 반도체 글로벌 공급망의 다변화가 필요한 실정이다. EU는 자동차 산업의 경제적 비중이 높기 때문에 현재의 반도체 부족으로 인한 자동차 생산 차질이 부담으로 작용있다. 이로 인해 역내 반도체 자립에 대한 주요국의 정책적 의지가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정책 의지는 2020년 12월,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2030년까지 20%를 점유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발표한 ‘European Initiative on Processors and Semiconductor Technologies’에서도 확인가능하다.
반도체 공급망 공동투자와 역내 반도체 기술 활용을 지원하기 위해 2~3년 내에 1450억 유로를 투자 계획이다. EU 27개 회원국 중 22개 회원국이 참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들 참여국들은 다양한 펀딩 프로그램을 통해 프로세서 디자인, 반도체 공정 등 반도체 생태계 조성을 위한 투자를 진행할 예정이다. 특히 이번 투자는 산업계 이해관계자의 결속을 위해 공동투자를 형태로 진행된다고 한다. 유럽 내부에서 서로 반도체 주도권을 가져가기 위해 불필요한 내부 경쟁이 촉발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또한 반도체칩 기술을 중소기업이 활용할 수 있도록 안전한 반도체 공급조달 및 전자장치 공동표준⋅인증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EU집행위원회는 반도체 경쟁력 제고를 위해 5개 분야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했다. 32개 반도체 기업 및 연구기술기관(RTOs, Research and Technology Organizations)이 참여하기로 했다. EU 집행위원회 차원에서 추진하는 반도체 프로젝트 5개 하위분야는 에너지효율 반도체, 전력반도체, 스마트센서, 고급 광학장비, 복합재료로 구분된다.
이 중에서 에너지효율은 반도체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기 위한 새로운 솔루션 개발을 목적으로 하며, 혁신적인 반도체 소재 디자인 및 제조기업인 프랑스 Soitec이 주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력반도체 부분은 스마트 가전 및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부품 개발, 반도체 기기의 신뢰성 향상 목적, 독일 Infineon이 주도할 계획이며 스마트센서 부분은 향상된 성능과 높은 신뢰성을 갖춘 새로운 광학·모션 센서 개발 및 자동차의 안정성 개선을 목적으로 한다. 이 부분은 독일 Bosch가 주도하기로 했다.
고급광학장비에서는 하이엔드 미래형 반도체를 위한 효과적 광학장비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부분은 독일 Zeiss가 주도해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복합재료 부분에서는 기존 실리콘을 대신해 고성능 반도체에 적합한 새로운 복합재료 개발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이 부분은 영국 웨이퍼 제조사 IQE가 주도하기로 했다.
이상에서 나열한 바와 같이 미래 고부가가치 반도체 분야에서 유럽 역시 물러설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EU는 EU 차원에서의 전략적 접근을 통해 자체 기술 및 산업화 추진을 도모하고 있는 상황으로, 향후 EU 역시 유럽판 반도체 보호무역 조치들이 추가적으로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는 이제 산업의 쌀이 됐다. 이 산업의 쌀을 서로 생산하기 위한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 질 것으로 보인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 aijen@mj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