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들의 지역별 석유제품 도매가 공개와 관련한 정부 논의가 중단됐다. 지난 2월 첫 논의에서 결론을 내지 못한 상황에서 추가 논의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이 따르면서 정부 내 추진 동력이 약화된 모양새다.
1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는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석대법) 시행령’ 개정안 심의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개정안은 정유사가 일반 대리점과 주유소에 공급하는 석유제품 도매가를 지역별로 공개하는 게 골자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해 9월,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규개위는 지난 2월 24일 첫 심의에서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어 3월 10일, 재심의 일정을 잡았다가 취소했고 곧바로 잡은 24일 일정도 소화하지 못했다. 이후엔 아예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규개위 관계자는 “해당 안건이 규개위에 오르지 않고 있고 향후 일정에 대해서도 전달받은 바가 없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석대법 개정 동력이 크게 약화했다는 관측이 따른다. 현 정부가 규제 완화를 국정 핵심 과제로 내세운 상황에서 오히려 과도한 규제를 추진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다.
현재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는 이미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경유 소매 판매가격과 국내 정유사의 주간·월간 공급량·판매가격이 공개된다.
산업부는 여기에 더해 정유사의 판매량, 판매단가 ‘보고 범위’를 기존 ‘전국 평균값’에서 ‘시·도별 평균값’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정유사 공급가 ‘공개 범위’도 석유제품의 주간·월간 평균 판매가격에 주유소·대리점 등 판매대상별 판매가를 더 할 계획이다.
산업부는 이와 관련해 고유가 상황에서 도입한 유류세 인하 정책과 관련해 인하분이 정유사나 주유소 등 업계 이윤으로 흡수됐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추가 정보를 제공해 시장 경쟁을 촉진하고 가격 안정화 효과를 얻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정유업계는 가격 공개 정책이 기업의 경영활동을 저해하는 과도한 규제라고 지속 반발하고 있다. 현재 세계에서 지역별 석유제품 공급가를 공개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이와 함께 경쟁사의 가격을 파악할 수 있게 돼 가격 상향 동조화나 공동행위(담합)가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유 업황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기름값 상승, 정유업계 호황이 겹친 상황에서 횡재세 도입와 함께 도매가 공개 논의에 불이 붙었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정유 4사의 1분기 총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78.7% 감소했다. 총 영업이익 감소분은 3조5200억원에 이른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가격 공개 논의의 본질은 유류세 인하 효과의 추적이지만 지난해 정유업계 호황에 정부가 여론을 등에 업고 정책을 밀어붙인 측면도 있다”면서 “올해 기름값이 안정화하고 업황도 악화하면서 가격 공개에 대한 정부 밖 목소리가 많이 수그러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사안의 민감성을 감안해 신중히 접근하고 있다”면서 “추가 심의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호 기자 snoop@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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