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칼럼]지방정부가 기업에 제기하는 기후소송

지현영 녹색전환연구소 변호사
지현영 녹색전환연구소 변호사

전세계적으로 다양한 기후소송이 증가하고 있다. 가장 많은 기후소송이 제기되는 곳은 미국이다. 특이점은 NGO나 시민들뿐 아니라, 미국의 지방정부도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말 지방정부의 기후소송에 관한 유의미한 미국 대법원 판결이 나와 주목을 끌었다.

2018년 미국 콜로라도 주의 볼더 카운티 등 3개 카운티는 기후변화에 중대한 책임이 있는 주체로 대형 석유회사인 선코어에너지와 엑손모빌을 지목했으며 이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카운티는 미국의 광역 행정구역인 주의 하위 행정구역으로 우리나라의 ‘도’ 규모에 해당한다. 원고인 지방정부들은 모두 야심찬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수립하고 기후 관련 예산을 통과시켰다. 이들은 향후 수십년 동안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1억달러 이상 지출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체적으로 산불 예방 및 복구 프로그램, 관개 농경지의 물 효율성 개선, 기후 취약성 평가를 위한 전문가 연구, 손상된 도로 및 인프라 수리 등에 비용이 지출될 예정이다. 이로 인해 시민들은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데 드는 비용을 세금으로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지방정부들은 기업이 기후변화에 기여한만큼 이에 대한 비용을 지불함으로써 지역의 납세자들에게 불공정한 부담이 전과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연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들이 피고로 지목한 두 석유회사의 사업장은 콜로라도에 위치하며 콜로라도 휘발유와 경유 수요의 35%를 공급하고 있다. 이들은 1970년부터 2010년까지 콜로라도 주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80%를 차지했다. 이들은 오일샌드 등 화석연료 생산을 확대할 계획을 세우고 있기 때문에 누적 온실가스 배출은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피고인 석유회사들은 해당 사건은 소송이 제기된 주 법원이 아닌 연방법원에서 관할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오랜 시간 소송을 지연시켰다. 주 법원에서 소송이 진행될 경우 주 정부의 영향력을 무시하기 어려워 본인들에게 불리할 것이라는 취지였다. 한편, 지방정부들은 피고 기업들의 화석연료 생산 중단이나 규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주에서 배출한 온실가스에 대한 비용을 지불할 것을 구하는 소송인만큼 주 법원의 판단을 받으면 충분하다는 반론을 펼쳤다. 연방지방법원은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여 2019년 말 해당 사건을 주 법원으로 환송하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기업들은 불복하였고, 결국 대법원의 판단을 구하게 되었다. 한편, 지난 3월 미국 법무부는 원고인 지방정부의 주장을 지지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연방 대법원은 정유사들의 항소를 기각하며, 주 법원에서 판결을 받으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관할권 분쟁으로 수년간 지지부진하던 지방정부들의 기후소송에 물꼬가 트일 전망이다. 콜로라도 주 외에도 미국 전역의 약 24개 주 및 지방 정부에서 주요 석유회사들을 대상으로 유사한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이들은 해당 기업들이 화석 연료와 관련된 위험을 은폐함으로써 기후변화를 악화시켰다고 주장한다. 주 법원이 지방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여 피고 기업들에 실제로 부담을 지울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적어도 앞으로 어디서 판단을 받아야 하는지는 분명해졌다는 측면에서 이번 판결은 큰 진전을 이뤘다고 평가된다.

우리나라에서도 기후변화 적응 인프라 개편에 있어 지방정부들의 부담이 매우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우리 지방정부들도 최근 세계적 동향에 착안해 해당 지역에 사업장이 있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기후변화 적응 비용을 요구하면 어떨까. 결국 비용 문제는 어떻게든 불거질 수 바에 없을 것이며, 원인 제공자를 추궁해 책임을 묻는 일이 발생할 전망이다.

지현영 녹색전환연구소 변호사 hyjee@ig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