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속담에 따르면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만큼 아기가 태어나서 어른이 되기까지는 많은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면 홀어머니인 ‘선영’을 대신하여, 이웃들이 어린 ‘진주’를 돌봐 주는 장면이 간간이 보인다. 때론 이웃들이 집을 비우면, 이웃들의 자녀를 집으로 불러들여 자신들의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는 것도 볼 수 있다.
우리 부모 세대는 이웃과 친척들이 더불어 자녀들을 키우는 이른바 ‘공동육아’를 했었다. 지금은 보기 어려운 공동 육아의 역사는 아주 오래전인 공룡들의 살았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공동 육아의 출현
독일 괴테 프랑크푸르트대의 옌스 피비히(Jens Fiebig) 교수가 이끈 국제 공동 연구진은 “7500만 년 전(중생대 백악기)에 북미대륙에서 살았던 육식공룡인 트로오돈(Troodon)의 알 화석을 분석한 결과 여러 암컷이 한 둥지에 알을 낳고 서로 번갈아 가며 품었을 것”이라며 국제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공룡의 직계 후손은 새이고, 파충류는 함께 살았던 친척이다. 과학자들은 트로오돈의 뼈가 오늘날 새처럼 비어 있어 가벼웠고, 깃털이 달린 날개를 가졌기에 새와 비슷하다고 추정했다. 하지만 몸집이 커서 날지는 못하고 빨리 달리며 사냥을 한 것으로 추측된다.
연구진은 트로오돈 알 껍질 화석에 있는 산소와 탄소의 동위원소 비율을 분석했다. 여기서 동위원소란 원자번호가 같아도 질량수가 다른 원소를 말한다. 연구진은 온도에 따라 동위원소 비율이 달라진다는 점을 이용해, 껍질의 탄산칼슘 결정이 만들어질 때 온도가 어떠했는지 계산했다.
분석 결과, 트로오돈의 알은 섭씨 30~42도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나왔다. 이는 오늘날의 새와 부합한다. 새는 평소에도 체온을 42도로 유지하다가, 환경이 나빠지면 30도까지 떨어진다. 트로오돈의 경우, 알을 품을 수 있을 정도로 체온이 높았음을 의미한다.
다만, 트로오돈의 알 껍질이 만들어지는 속도는 새가 아닌 파충류와 비슷했다. 새는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난소 하나를 잃었다. 반대로 파충류는 난소가 두 개라서 알을 더 많이 낳을 수 있다. 연구진은 트로오돈이 새와 비슷한 형태로 진화했지만, 난소는 여전히 두 개를 가진 것으로 추측했다.
모든 결과를 종합한 결과, 연구진은 공룡 한 마리 당 번식기에 알을 4~6개 낳았을 것이라 결론 내렸다. 그런데 화석에는 알이 4~6개가 아닌, 24개가 한곳에 모여 있었다. 연구진은 트로오돈 암컷들이 같은 둥지에 알을 낳고 번갈아 가며 알을 품는 공동 육아를 했으리라 추정했다. 어찌 보면 공동 육아의 선구자인 셈이다.
◇오늘날 공동 육아를 하는 동물은 누가 있을까?
지금도 공동 육아를 하는 동물이 남아 있을까? 당연히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황제펭귄이 있겠다. 영하 50도의 남극 한가운데서 번식하는 황제펭귄은 번식기가 시작되면, 한곳에 모여 알을 낳는다. 암컷은 낳은 알을 수컷에게 건네 준 뒤 먹이를 찾아 바다로 떠난다. 이때부터 수컷은 발등 위에 알을 품으며, 자신이 비축해 두었던 양분을 토해내 새끼를 먹인다.
이후 암컷이 배부르게 먹이를 먹고 돌아오면, 수컷과 역할을 교대하고 암컷과 수컷은 이를 반복한다. 또 황제펭귄들은 극한의 추위와 호시탐탐 자신의 새끼를 노리는 사냥새와 맞서기 위해, 공동 탁아소를 만들어 서로의 새끼들을 함께 키우고 보호해 준다. 아마 혹독한 환경이 암컷과 수컷이 번갈아 새끼를 돌보고 이웃과 친척과 함께 새끼를 돌보게 하는 공동 육아를 진화했다고 추측된다.
코끼리도 모계사회(어머니 중심의 사회)로서 무리에 속한 암컷끼리 다 같이 힘을 합쳐 새끼들을 기르는 공동 육아를 하는 동물이다. 2017년, 서울 대공원에서 1살가량의 코끼리가 연못에 빠진 사건이 있었다.
육아 경험이 적은 엄마 코끼리가 새끼 코끼리를 구출해 내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나이 많은 암컷 코끼리가 엄마 코끼리 곁으로 다가왔다. 할머니 암컷 코끼리는 재빠르게 엄마 코끼리를 데리고 연못으로 들어가 새끼를 구출해 냈다. 이처럼 경험이 많은 암컷 코끼리는 무리 내의 새끼 코끼리의 성장을 돕는다.
◇가지각색인 동물들의 육아
모든 동물이 공동 육아를 하는 것은 아니다. 새끼나 알을 낳은 후 돌보지 않고 떠나버리는 동물들도 있다. 한 예시로 바다거북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알에 많은 영양분이 들어 있어 온도와 습도만 적절하면, 알이 저절로 부화할 수 있다.
바다거북은 자신과 새끼를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천적에게 노출되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 알을 품지 않도록 진화되었다. 다만 새끼 바다거북은 보모의 보호가 없어 천적에게 잡아 먹힐 위험이 높고, 천적들을 피해 무사히 바다로 도달할 확률은 10% 밖에 안 된다. 이들은 수많은 알을 낳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개체 수를 유지한다.
독특하게도 자신의 새끼의 육아를 다른 새의 어미에게 맡기는 동물이 있다. 뻐꾸기는 자신의 알을 직접 키우지 않고 다른 새들의 둥지에 몰래 낳는 ‘탁란’을 한다.
뻐꾸기는 둥지의 원래 주인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원래 주인의 한 개의 알을 제거하고 자신의 알을 낳는다. 다시 돌아온 둥지 주인은 뻐꾸기의 알을 자신의 알로 여기고 열심히 알을 품어 부화시킨다. 부화한 뻐꾸기 새끼는 본능적으로 둥지 안에 있는 다른 알들을 둥지 밖으로 떨어뜨린다. 새끼 뻐꾸기는 가짜의 어미로부터 먹이를 받아먹으며 성장하며, 어느 정도 성장한 새끼 뻐꾸기는 가짜 어미가 자리를 비운 사이 둥지를 떠난다.
뛰어난 물속 사냥꾼인 물자라는 수컷이 육아를 도맡아서 하는 부성애로도 유명하다. 짝짓기를 마친 물자라 암컷은 수컷의 등 위에 알을 낳는다. 수컷들은 알들의 신선한 공기를 제공하기 위해, 알들이 부화할 때까지 물 밖에서 생활한다. 알을 돌보는 기간동안 수컷은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물자라는 주로 올챙이나 작은 물고기 같이 물속에서만 생활하는 생물들을 잡아먹는데, 알을 부화시키려면 잠수를 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물자라는 기러기나 오리 같은 천적에게 강한 공격을 받아도 목숨을 잃기 전까지 필사적으로 알을 보호한다. 알을 건강하게 부화시키기 위해 천적들에게 노출될 위험을 무릅쓰고 육아하는 셈이다.
캥거루도 독특한 육아로 유명하다. 캥거루는 적과 외부 환경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배 아래쪽에 있는 ‘육아낭’이라는 작은 주머니에서 9개월가량 키운다. 육아낭 안에는 젖꼭지가 있어 새끼는 안전하게 젖을 먹고 자라며, 새끼가 어미의 육아낭 안에서 주로 생활함으로써 어미도 양육에 소모되는 에너지를 줄일 수 있다.
임신한 포유류 암컷 대부분은 상대적으로 움직임이 둔해져 각종 천적의 공격에 취약하다. 캥거루는 임신 기간을 최소화하고 육아낭에서 육아함으로써 천적의 위험을 줄이도록 진화가 된 것이다.
육아 방식이 이렇게 다양하게 진화가 된 이유는 동물마다 서식지와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해 놀랍도록 잔인하고 무심해 보이는 육아와 마음이 뭉클하도록 감동적인 육아도 오랜 기간 진화를 거친 결과물이다. 모든 동물의 육아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새끼를 생각하는 마음은 사실 매한가지 아닐까?
글: 김자옥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