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불거진 김남국 의원의 ‘가상자산 보유’ 논란은 의외의 효과를 불러왔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분산원장과 블록체인 투명성을 설파한 것이 대표적이다. 일부 공개된 정보만 가지고 거의 모든 거래내역을 살필 수 있다 보니, 그동안 검찰, 경찰 등 공권력이 개입하던 수준의 ‘수사’가 민간에서 이뤄지고 있다. 정치적 파장을 차치하고서라도 사회에 끼친 영향이 작지 않다.
가상자산 가치 변동성이 크다는 사실을 상기시킨 것도 이번 사태가 일으킨 영향 중 하나다. 전문가에 준하는 지식과 전업에 가까운 활동으로 고액을 베팅해도, 한순간에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됐다. 가상자산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여야 할 명분이 커진 셈이다.
공교롭게도 이번 논란을 전후해 세계 곳곳에서 가장자산을 법으로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중이다.
유럽연합(EU)은 이달 ‘가상자산시장법’(Markets in Crypto Assets, MiCA, 미카) 시행을 확정했다. 법안이 발의된지 2년 8개월 만으로 세계에서 처음으로 가상자산 규제법을 만들었다.
미카에는 암호화폐를 비롯한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관리감독, 소비자 보호를 골자로 한 포괄적 규제가 담겼다. EU는 내년 6월 이후 단계적으로 이 법을 시행하는데 △가상자산을 발행하는 자는 공인 자격을 얻어야하고 △구매자가 해킹 등으로 보유 자산을 잃게되면 발행 업체가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또 금융당국에 가상자산을 통해 자금세탁이 이루어지는지 추적할 수 있는 권한도 부여했다.
국내 금융당국 역시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가상자산법)’을 준비 중이다. 이 법은 이달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했다. 이용자 보호가 골자로 △고객 예치금 예치·신탁 △고객 가상자산과 동일종목·동일수량 보관 △해킹·전산장애 사고에 대비한 보험·공제 가입 또는 준비금적립 △가상자산 거래기록의 생성·보관을 의무화했다.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행위, 시세조종 행위, 부정거래 행위 등 불공정 거래 행위를 할 경우 업체가 형사처벌을 받고 손해배상책임도 져야한다. 또 금융위원회는 위법 사실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EU 미카와 우리나라 가상자산법 모두 이용자 보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가상자산이 분산원장(블록체인)이라는 신뢰를 기반으로 성장했지만, 역설적이게도 ‘투자’라는 관점에서는 극소수에게 부를 집중시키며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혀 왔기 때문이다.
여야는 이달 25일 열리는 본 회의에서 공직자 재산 등록 대상에 가상자산을 포함하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상정할 계획이다. 법이 통과되면 국회의원을 비롯한 공직자들이 가진 가상자산도 신고대상이 된다. 이용자보호에서 한발 더 나아가 가상자산이 공적 영역이나 이권에 개입하는 소재로 활용되지 못하게 원천봉쇄하겠다는 의지다.
일각에서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 아직 법사위를 통과 하지 못한 가상자산법과 세트로 처리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투자자(공직자)와 생태계(가상자산 업체)를 동시에 제도권 안에서 관리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다.
진통을 겪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가 한 발 앞서, 보다 적극적으로 가상자산 투명성과 신뢰를 높이는데 앞장서야 한다. 우리나라는 첨단 정보통신(ICT) 기술을 다른 어떤 지역보다 빨리 수용하는 곳이다. 남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우리가 먼저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선의의 피해자나 유혹에 흔들릴 수 있는 공적 책무를 가진 자들을 향해 ‘빨간 불’을 켜 질주를 멈추게 할 수 있다. ‘김남국 사태’를 정치적 공방으로 소모하기 보다는 제도를 개선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가상자산 발행업체와 그를 둘러싼 시장의 투명성과 신뢰를 높이는 것은 업계 자정 노력만으로 한계가 있다. 울타리를 씌우고 관리 책임을 지워야 할 시기다.
김시소 기자 sis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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