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금속 표면에 도달하면 금속 내부의 전자에게 에너지를 빼앗기는데, 이러한 모든 현상을 ‘광 손실’이라고 한다. 빛을 이용하는 광학소자는 크기가 작아질수록 광 손실이 증가하기 때문에 초소형 광학소자를 만드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최근 광 손실을 역으로 이용하는 ‘비허미션(Hermitian)’ 이론이 광학 연구에 적용되고 있다. 광 손실을 불완전한 요소로 인식하는 일반 물리학과 달리 광 손실을 받아들이고 유용하게 이용하는 ‘비-허미션’ 이론을 통해 새로운 물리적 현상을 발견하고 있다.
포스텍(총장 김무환)은 노준석 기계공학과·화학공학과 교수·기계공학과 통합과정 정헌영·김석우 씨, 노스이스턴대학교(NEU) 류용민 교수 공동연구팀이 ‘비-허미션’ 이론을 적용한 메타 격자 장치를 활용해 빛을 원하는 방향으로 보내는 데 성공했다고 22일 밝혔다.
금속에 빛을 쏘면 빛의 자기장에 의해 금속에 있는 전자들과 빛이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인다. 이를 ‘표면 플라즈몬 폴라리톤(SPP)’이라고 한다. SPP의 방향을 제어할 때 보통 ‘격자 커플러’라는 보조 장치를 이용하는데, 이 장치는 수직 방향으로 입사하는 빛을 의도치 않는 방향의 SPP로 전환하기 때문에 전송 효율이 떨어지는 한계가 있다.
연구팀은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비-허미션’ 이론을 적용했다. 연구팀은 먼저 의도적으로 광 손실을 발생시킬 특이점을 이론적으로 계산했다. 이를 바탕으로 ‘비-허미션 메타 격자 커플러’를 제작한 후 실험을 통해 그 효과를 확인했다. 그 결과, SPP의 방향을 제어할 수 없었던 기존 격자와 달리 메타 격자 장치는 SPP를 하나의 방향으로 전송했다. 또 격자의 크기와 배치를 조절해 빛과 SPP를 양방향으로 보낼 수도 있었다. 연구팀은 이 장치를 이용하여 빛을 SPP로 전환하는 것뿐만 아니라 SPP를 빛으로 다시 전환하는 데도 성공했다.
이번 연구성과는 항원을 검출, 질병을 진단하거나 대기 중 유해가스를 검출하는 양자 센서 연구에 활용될 수 있다. 공학과의 융합 연구를 통해 다양한 분야에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노준석 교수는 “비-허미션 광학을 나노미터 크기의 작은 영역으로 이끌었다”며 “앞으로 우수한 방향 제어능력과 성능을 가진 플라즈모닉 장치를 개발하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한국연구재단, 미국국립과학재단 사업의 지원으로 수행된 이번 연구성과는 최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게재됐다.
포항=정재훈 기자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