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진료 시범사업 시행을 앞두고 의료계와 플랫폼 업계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특히 초진을 사실상 금지하고, 대부분 재진에 한해 비대면진료를 허용한 것을 놓고 ‘비대면진료에 대한 사형선고’라는 지적이 빗발친다. 특히 최근 진료 대란 문제를 겪는 소아청소년과(만 18세 미만)에 대해 야간·공휴일에 한해 초진을 허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는데 이마저도 당·정 협의에서 결정을 보류해 지나친 규제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정부와 의료계는 ‘비대면진료 행위는 리스크가 크다’는 입장이다. 혹시 모를 진료 리스크를 차단하기 위해 환자가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대면진료를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자신문은 모바일 플랫폼을 이용해 비대면진료를 수행하는 전문의 12인을 심층 인터뷰해 실제 비대면진료 현장에서 느낀 진료 리스크 정도와 문제점, 비대면진료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 등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대한의사협회가 비대면진료에 공식 반대하는 입장을 감안해 전문의 실명과 병원 이름은 밝히지 않는다.
이들은 서울과 지방의 가정의학과, 이비인후과, 비뇨기과, 소아청소년과, 정형외과 등에서 하루 10~20건의 비대면진료를 수행하고 있다.
비대면진료를 택한 이유로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지원, 환자 편의성, 환자 유입 확대를 주로 꼽았다. 비대면진료를 수행하면서 수익성 확대와 병원 평판 상승 효과를 누렸다고 답했다. 환자의 시간 절약과 진료 편의성, 야간·휴일 의료 서비스 제공 등을 장점으로 꼽았다.
본지 인터뷰에 응한 전문의 12인 중 10명은 의료계에서 우려하는 비대면진료 리스크에 동의하지 않았다.
나머지 2명 중 1명은 “비대면진료 리스크가 클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어 일반화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1명은 “의료사고 발생 가능성은 대면진료와 비대면진료 모두 마찬가지”라며 “비대면진료 환경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들 전문의는 대부분 △환자 스스로 증상이 심하다고 판단하면 대면진료를 이용하는 경향이 있고 △문진으로 비대면진료 초진 리스크를 줄일 수 있어 진료 리스크가 핵심이 아니라는 의견을 내놨다. 의사 판단에 따라 필요 시 대면진료를 권유할 수 있으니 비대면 환경 자체가 진료 리스크가 발생하는 핵심 사유는 아니라고 답했다.
인터뷰에 참여한 한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비대면진료처럼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의사 역량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비대면이 갖는 한계가 있어 대면진료보다 위험이 클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고 안전하게 진료하는 게 의사의 역량이고 전문성”이라며 “이런 역량을 키우면 위험을 키우기보다 오히려 국민 생활을 더욱 편안하고 안전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전문의는 “되레 대면진료보다 비대면진료 리스크가 적다고 생각한다”면서 “모든 진료 귀책사유가 의사에게 있어 대면진료보다 훨씬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모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일반 대면진료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의료사고는 비대면진료에서도 발생할 수 있고, 반대로 비대면진료에서 발생 가능한 의료사고가 대면진료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면서 “다만 비대면진료가 새로운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의료사고도 있을 수 있어 이 부분을 충분히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인터뷰에 응한 전문의 12명 중 11명이 정부가 비대면진료 정책에 초진을 포함해야 한다고 답했다. 1명은 의사에 대한 비대면진료 리스크 책임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현재 시범사업안처럼 제한적 범위에서만 재진 위주로 허용하는게 맞다고 답했다.
초진 포함 쟁점에 대해 한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정부와 의료계를 지적했다.
그는 “의사가 환자를 안전하게 치료하고 낫게 하는 것은 초진과 재진을 구분하지 않는다”면서 “초·재진 구분이 안전한 진료를 보장하거나 위험도를 가려서 나온 개념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잘 치료하려면 초진 시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므로 의사가 시간과 노력을 더 투입하기에 이에 대한 보상으로 진료비 차등을 두는 것이지 실질적 진료는 차이가 없다”고 일침했다.
복지부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에 대한 지적도 쏟아졌다.
서울 모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초진을 제외한 것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정책”이라며 “모든 판단은 해당 의료진 재량에 맡겨야 하며 그에 따른 책임도 의료진이 지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지방 모 외과 전문의는 “초진을 허용하지 않으면 비대면진료가 거의 불가능해질 것”이라며 “우리 병원의 경우 초진환자 점유율이 95% 이상인데 초진환자를 막으면 비대면진료를 유지할 이유가 없어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 이비인후과 전문의는 “재진만 허용한다면 대면·비대면진료를 한 번이라도 본 환자를 기간에 상관없이 허용해야 한다”면서 “왜 한 달 이내 재진만 허용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비대면진료만 10회 이상 봐서 파악이 잘 돼 있는 환자라도 대면진료를 한 번도 안 했기 때문에 앞으로 진료를 못 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설문에 응답한 전문의 12명은 모두 “비대면진료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고 입을 모았다.
모 지방 외과 전문의는 “현재 시행되는 비대면진료 체제는 매우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라며 “진료 편의성, 즉응성, 경제성, 시간절약 면에서 환자 만족도가 상당히 높아 반드시 유지·발전시켜야 할 미래지향적 진료방식”이라고 말했다.
서울 모 산부인과 전문의는 “비대면진료는 찬반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컴퓨터가 처음 등장했을 때 컴퓨터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지적이 많았고, 무인자동차 역시 사람이 운전하면 되는데 왜 필요하냐는 의견이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비대면진료가 없어도 된다는 것은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지방 모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비대면진료는 스마트 헬스케어를 위한 초석이 될 수 있는 기회”라며 “이를 놓치지 말고 노하우를 지속 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옥진 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