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양산을 시작한 ‘포니’는 현대차의 첫 고유모델이자 대한민국 첫 국산차다. 독자모델이 없었던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한계를 뛰어넘어 세계로 수출된 차량이다. 당시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리면서 ‘달리는 국기(國旗)’ 역할을 했다.
현대차는 이 같은 포니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최근 이탈리아 레이크 코모에서 현대 리유니온 행사를 열고 ‘포니 쿠페 콘셉트’ 복원 모델을 공개했다. 현대차 과거를 되돌아보며 미래를 향한 변하지 않는 비전과 방향성을 소개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정주영 선대 회장은 1970년대 열악한 산업 환경에도 ‘완벽하게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는 나라는 항공기까지 무엇이든 생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독자적 한국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실현했다”면서 “이탈리아, 한국을 비롯해 포니의 성공에 결정적 역할을 해준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다”고 밝혔다.
대한민국은 1960년대 초반부터 자동차를 조립 생산했다. 정주영 선대 회장은 1940년부터 정비소를 운영하며 자동차 구조와 기계 원리를 터득하고 현대차그룹 뿌리인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설립했다.
정 선대 회장은 포드와의 제휴 협상을 빠르게 이뤄내 1967년 12월 현대차를 설립했다. 이듬해 현대차는 울산에 조립공장을 짓고 영국 포드의 코티나 2세대 모델을 들여와 생산했다. 설립 1년도 채 되지 않은 자동차 회사가 공장을 짓고 조립 생산을 시작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현대차는 단순 조립을 넘어 독자 제조 단계에 진입해야 한다는 목표 아래 포드와 새 합작사를 세우기로 했다. 하지만 범아시아 진출 계획을 세우고 있던 포드와 합작사 설립 협상은 결렬됐다. 이에 정 선대 회장은 독자적으로 대량 양산형 고유 모델을 개발하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이를 계기로 1975년 현대차의 첫 독자 모델 ‘포니’를 선보였다. 우리나라 기계 공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동차 생산이 100% 국산화 돼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정 선대 회장의 노력과 빠르고 담대한 결단이 밑바탕이 됐다.
현대차가 고유 모델 개발 결심 후 가장 먼저 고민한 것은 디자인이다. 현대차는 유럽 곳곳을 수소문해 차체 디자인을 해줄 회사를 찾아 최종적으로 ‘이탈 디자인’을 선택한다. 창업자 조르제토 주지아로는 피아트의 다양한 차종을 비롯해 폭스바겐 골프를 디자인하는 등 성공 가도를 달리던 30대의 젊고 유망한 디자이너였다.
모델 디자인을 확정한 1974년 2월 말 설계 업무에 본격 착수했다. 3월 15일부터 프로토타입을 제작해 그해 10월 30일 토리노 모터쇼에 출품한다. 빠른 속도로 전개한 포니 프로젝트는 초기 디자인 스케치부터 프로토타입 제작 완료까지 1년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고유 모델을 열망한 끈기와 열정, 이탈리아 장인 정신이 만나 만들어 낸 기적이었다.
현대차는 1973년 3월 독자 자동차 생산을 경영 방침으로 결정했다. 우여곡절 끝에 울산에 완성차 공장을 준공해 1975년 12월부터 양산을 시작했다. 이듬해 1월 26일부터 계약을 받기 시작한 포니는 2월 29일부터 고객에게 출고됐다. 오늘날 기술력을 기준으로 생각해도 매우 짧은 3년 이내에 이뤄진 일이다.
포니가 첫 고유 모델로 조명받는 것은 ‘대량 생산 체계’에서 개발해 양산한 첫 ‘국산차’로 의미가 있어서다. 대량 생산이 가능한 자국 브랜드 고유 모델 기준으로 보면 한국은 기존 8개 자동차 공업국에 이어 9번째 고유 모델 출시 국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국가들은 고유 모델을 수출한 ‘글로벌 모델’ 생산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국내에서 개발한 포니는 한국인 체격과 도로 사정에 적합했고, 조립 생산차보다 내구성이 좋고 경제적이었다. 포니는 출시되자마자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1976년 국내 승용차 판매 대수는 총 2만4618대였는데, 포니는 1만726대가 팔려 44%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이후 포니2가 출시된 1982년에는 국내 승용차 판매의 67%(포니1·2 합산 기준)를 점유했다. 포니는 출시 첫해부터 포니1이 단종되는 1985년까지 10년간 대한민국 1위 모델로 자리매김했다. 포니는 국내 승용차 시장 성장을 주도했고 ‘마이카’ 시대를 여는 핵심 주역이 됐다.
주요 인기 요인 중 하나는 높은 부품 국산화율이다. 포니는 부품의 대부분을 국내에서 생산해 수리가 빠르고 저렴했다. 국산 부품으로 품질 수준이 향상되며 조립 생산자로서 낮은 내구성으로 비판받던 현대차 품질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부품 국산화의 진정한 의의는 업체 발굴과 계열화를 통해 국내 자동차 공업 발전의 단초를 마련했다는 데 있다. 현대차는 포니 프로젝트 초기부터 부품 국산화 관련 목표를 세우고 부품 업체 현황을 조사·발굴, 육성했다. 공장 건설 과정에서 430개의 부품 업체를 발굴하고 계열화했다. 이후 포니2는 최대 98%의 국산화율을 달성하며 국내 자동차 전후방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애초 포니는 수출을 목표로 개발된 차다. 국내 첫 출고보다 보름 정도 이른 1976년 2월 중순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한 현대건설에 포니 15대를 시험 수출했다. 그해 7월 에콰도르에 포니 5대를 수출한 것을 시작으로 포니와 포니 픽업은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 등에 1019대를 보냈다.
이듬해인 1977년 7427대를 30개국에 수출했고, 1978년 1만8317대를 40개국에 수출했다. 1982년 7월 포니는 단일 차종으로는 국내 최초로 누적 생산 30만대를 돌파했다. 수출 대상국은 약 60개국에 달했다. 현대차는 1985년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 진출했다. 그해 세계 각지에 포니, 스텔라, 포니 엑셀, 프레스토 등 다양한 모델을 수출해 글로벌 브랜드로 거듭났다.
정치연 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