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 차게 꺼낸 ‘이래경 혁신위원장’ 카드가 불발되면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리더십이 흔들리는 모양새다. 당내 안정과 혁신이라는 자칫 모순된 두 가지를 모두 추진해야 하는 이 대표 입장에서는 고심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은 지난 5일 입장문을 통해 “논란의 지속이 공당인 민주당에 부담이 되는 사안이기에 혁신기구의 책임자직을 스스로 사양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이날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이사장을 혁신위원장으로 선임했다고 밝힌 지 약 9시간만이다.
중소기업을 운영한 기업가 출신인 이 이사장은 민주화운동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로 평가됐다. 특히 고 김근태계로 분류되는 등 혁신에 따른 당내 불만을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일부 현실 인식이 공당과는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결국 이 이사장이 자진사퇴하는 형식으로 정리됐다. 현충일을 앞두고 ‘천안함 자폭’ 논란이 이어진 것도 당내 부담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가 깜짝 카드로 꺼냈던 이래경 카드가 당내외의 거센 반발로 무산되자 오히려 이 대표가 더욱 코너에 몰린 모양새다.
혁신위원장으로 또 다른 외부 인물을 찾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외부인사들이 혁신위원장을 고사하는 상황인 탓이다. 혁신위를 꾸리겠다는 발표 이후 위원장 선임이 늦어진 것도 당 외부 인사들의 고사가 이어졌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당내에서는 외부 혁신위원장에 대한 불만도 감지된다. 현재 당내 논란이 되고 있는 ‘부정부패 혐의 기소 시 당직 정지’라는 당헌 80조가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이 혁신위원장을 맡았던 당시 생긴 조항이기 때문이다. ‘귀책 사유로 재보궐선거가 생겼을 시 무공천’ 역시 당시 혁신위가 만든 조항이다.
결국 이 대표의 고심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혁신위원회의 막중한 역할 때문이다. 혁신위원회는 이른바 민주당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받는 내로남불과 온정주의 등과 결별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할 필요성이 있다. 특히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과 김남국 의원의 코인 투자 의혹 등으로 발생한 도덕성의 위기도 극복해야 한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조국의 강’에 더해 이른바 ‘남국의 강’도 넘어서야 한다는 의미다.
총선을 앞두고 혁신위원회가 환경·노동 등이 아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최근 차량호출서비스 타다의 전직 경영진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 확정 판결 이후 민주당에 쏠린 비판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민주당은 당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타다금지법) 주도에 앞장선 바 있다. 박광온 원내대표가 5일 열린 최고위에서 “타다의 승소는 국회의 패소라는 지적을 아프게 받아들인다. 시대 변화의 흐름을 정치가 따라가지 못했다는 사례다. 민주당은 기술 혁신을 선도하고 혁신 성장을 키우는 비전을 제시하겠다”고 공개사과한 것은 이를 진화하기 위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민주당 지도부 핵심관계자는 본지에 “외부인사에게 기대하는 것은 외부의 시선에서 나오는 당내 혁신을 위한 새로운 목소리”라고 설명했다.
최기창 기자 mobydic@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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