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세계의 요구 조건이 복잡해지면서 점점 더 스마트한 솔루션이 요구되고 있다. 기후 보호, 효율적이고 회복탄력적인 에너지 공급, 스마트 빌딩, 모빌리티 시스템과 개인화된 의료를 비롯한 까다로운 난제는 일회성 솔루션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총체적인 관점을 보여주는 체계적인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단일 산업부문, 단일 기술, 단일 회사가 혼자서 해낼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협업과 파트너십은 우리 시대의 상징이 됐다.
◇데이터, 기술 통합, 그리고 협업
이 난제에 대한 해답 중 하나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는 디지털 기술이다. 데이터 기반 기술과 자가학습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해 복잡한 시스템을 관리하게 되면서 고전적 기술로는 가능하지 않았던 수준의 효율성을 구현할 수 있게 됐다. 디지털 기술의 전제 조건은 데이터 공유와 공동 사용이다. 가령 개별 차량, 대중교통체계와 도시환경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를 기존 교통량 정보, 현재의 날씨 데이터와 결합하면 도시 모빌리티를 원활하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관리할 수 있다.
매우 복잡한 연관관계에 대해서는 통제, 관리가 필요하다. 우리가 바라는 이러한 체계의 완성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협업은 모두에게 혜택을 줄 것이다. 내부와 외부 데이터, 과거와 현재의 데이터 분석을 결합하면 맞춤형 제품 설계, 고객에게 제공하는 이점과 생산공정을 앞당길 수 있어 결국 기술 공급업체도 이점을 누리게 된다.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클라우드 컴퓨팅, 5세대(5G) 이동통신과 빅데이터 등 데이터 기반 애플리케이션은 개발과 제조 분야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서로 융합되고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오늘날처럼 급속도로 발전, 통합되는 기술의 시대에는 전체 생산체인에서 폭넓은 협업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이것이 공동으로 분석한 데이터의 잠재력을 모든 참여 주체가 가장 최적화된 방식으로 최대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특히 그 응용기술이 모든 핵심 산업의 기술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반도체 업계는 더욱 그렇다. 긴밀한 협력의 좋은 예는 바로 모빌리티다. 자동차 제조업체는 반도체 회사와 점점 더 긴밀한 협업으로 새로운 전자기술과 시스템을 도입, 통합해 자율주행차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점점 더 복잡해지는 칩 디자인
관리해야 할 시스템이 매우 복잡하며, 분석 대상 데이터의 양이 점점 증가하는 상황에서 마이크로칩이 충족해야 할 요건 또한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최신 프로세서는 겨우 손톱 한 개의 면적에 수십억 개 트랜지스터와 수천개 메모리 블록이 탑재돼 있다. 몇 킬로미터나 되는 부품 연결장치가 좁은 공간에 빽빽히 보관된 것이다.
어느 부품으로, 또 어떤 연결장치로 만든 구성이 최선인 동시에 전력 소비를 최적화할 수 있는 선택일까. 체스에는 1만123개 경우의 수가 있다고 하지만, 보다 복잡한 칩 디자인에는 10만9000개 플로어 플랜 옵션이 존재다. 심지어 반도체 설계기업 시놉시스는 하이엔드 반도체 경우 109만개의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고도 말한다. 이러한 복잡성은 AI와 디지털 설계 방법의 도움을 받아야만 처리가 가능하다. 만약 개발과 가치사슬 분야 참여자가 협업한다면 이 작업의 효율성이 한결 개선될 것이다.
이종집적 분야의 최근 발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필요 부품들이 하나에 칩에 모여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작고 고도로 전문화된 칩에 존재하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다. 이 칩들은 다시 3차원(3D) 칩으로 스마트하게 적층된다. 2D에서 3D로 전환은 최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줘, 다양한 제조사가 만든 부품들의 효율적인 결합과 연결을 가능하게 한다. 여기서도 공급업체와의 협업은 필수다.
◇수직 공급망에서의 협업
개발만 복잡한 것이 아니다. 최첨단 제품 제조 공정 역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소재는 점점 더 민감해지고 있다. 많은 품질 파러미터는 더 이상 직접 측정이 불가하며 대량의 데이터를 통해서만 추출이 가능하다. 만약 품질이 떨어지는 것을 확인하지 못하면, 생산 지연과 결함 발생으로 매우 높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공급망 전체에 대한 데이터와 정보를 공유하면 이러한 사태를 막을 수 있다.
데이터 공유 플랫폼인 아씨니아(Athinia)는 어떻게 이 문제를 방지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아씨니아는 디바이스 제조업체와 소재 및 장비 공급업체가 서로 안전하게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게 해 수직적으로 통합된 생산 흐름을 창출한다. 상호간 지속적인 정보 흐름은 공급업체로 하여금 업체 규격이 성능, 품질, 효율성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 지를 조기에 파악할 수 있게 한다. 효율성 제고와 이와 연관된 비용 절감은 최종 고객에게 이점을 제공할 뿐 아니라 자원 사용을 줄여 궁극적으로 환경 보호에도 기여할 수 있다.
◇기업과 사회, 그리고 기후 보호를 위한 이점
지금까지 예시는 협업이 결국 그만큼의 가치가 있음을 증명한다. 협업의 장점은 가치사슬 전체에서 발휘된다. 이미 연구 분야에서는 협업이 폭넓게 이루어지고 있다. 외부 지식의 전략적 사용을 적극적으로 실천할 때 혁신 잠재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기업이 단순히 외부 지식을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당사자에게 스스로를 개방하고 지식을 공유할 때에만 비로소 이 접근법의 잠재력이 온전히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고객, 공급업체, 연구기관, 학생, 스타트업은 모두 잠재된 아이디어의 원천이며, 혁신 잠재력을 충분히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하나로 통합돼야한다.
머크의 일렉트로닉스 비즈니스 부문은 이미 세계에서 이와 같은 작업을 추진 중이다. 일렉트로닉스는 유럽 전역에서 세계 최대 반도체 연구소인 벨기에 아이멕(IMEC) 연구 파트너들과 긴밀히 협업하고 있다. 미국에서 일렉트로닉스는 미국 반도체연구협회의 유일한 소재 제조업체 회원이기도 하다.
올해 초에는 한국에 본사를 둔 상장기업이자 반도체용 히터블록 및 화학 전구체 제조업체인 메카로의 화학 전구체 사업 인수를 마무리했다. 두 기업 결합으로 머크 반도체 솔루션 포트폴리오의 핵심 부문을 보완하는 동시에 머크의 현지화 노력을 배가시키고 있다. 머크는 약 100명의 직원과 함께 한국에 위치한 최첨단 제조 및 연구개발 사업장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했다. 이 파트너십은 한국에 대한 머크 투자 추진의 가장 중대한 요소일 뿐 아니라, 우리가 서로에게서 배울 때 비로소 최상의 솔루션을 찾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협력으로 나아가는 트렌드는 기후 보호 목표의 달성을 지탱할 것이다. 이 방면에서도, 힘을 합치면 더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다. 머크 일렉트로닉스는 마이크론과 함께 지구온난화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은 대안적인 에칭 가스를 테스트하고 있다. 인텔과는 유럽에서 지속가능한 반도체 생산 솔루션 개발을 가속화하기 위한 학술연구 프로그램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반도체 제조공정 및 기술에서 혁신을 창출하기 위해 AI와 머신러닝 기술을 적극 활용할 것이다.
◇협업, 위기 아닌 기회
협업을 향한 이 같은 움직임은 막을 수 없다. 위협으로 보이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중요한 기회의 원천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모든 회사는 협업을 통해 더 혁신적이고 고객 친화적이며 효율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 파트너십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우리가 현대적 경제의 개방성을 활용하고 경쟁과 협업의 공존을 영리하게 해낼 수 있다면 모두에게 더 큰 파이가 돌아갈 것이다. 강력한 솔루션으로 우리 시대의 난제에 접근하면 개별 회사 뿐 아니라 고객, 그리고 사회 전체에게도 이익이 된다.
카이 베크만 머크일렉트로닉스 회장(CEO) communication.mkor@merckgroup
〈필자〉카이 베크만 머크 일렉트로닉스 회장은 1965년생이며, 1984~1989년 독일 다름슈타트공대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다. 1998년 근무와 학업을 병행하며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 머크 정보기술(IT) 컨설턴트로 입사, 1999~2004년 정보 관리와 컨설팅 부서 임원으로 일했다. 2007년 머크 최고정보책임자(CIO)로 임명돼 기업 정보 서비스를 총괄했다. 머크 최고행정책임자(CAO)로서 그룹 인사, 비즈니스 테크놀로지, 조달, 사내 컨설팅, 사이트 운영 및 비즈니스 서비스와 환경·건강·안전·보안·품질을 총괄했다. 2011년 머크 이사회 멤버로 합류, 2017년 9월부터 머크 일렉트로닉스 CEO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