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혼합현실(MR) 헤드셋 ‘비전 프로’를 공개하면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아이폰으로 전 세계 스마트폰 열풍을 일으킨 애플이 9년 만에 내놓는 새로운 디바이스기 때문이다. 애플은 신제품을 만들 때 전에 없던 기술과 부품 등을 채택해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도 매우 크다.
이번 비전 프로에 적용된 부품들 중 단연 주목되는 건 마이크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다. 마이크로 OLED는 기존 OLED와 달리 실리콘 웨이퍼 위에 유기물을 증착해 만든 디스플레이다. 크기가 작아 ‘마이크로’라는 이름이 붙었다. 실리콘을 기반으로 만들어져 ‘올레도스(OLEDoS, OLED on Silicon)’라고도 불린다.
마이크로 OLED가 메이저 기업 제품에 상용화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업계에 따르면 애플 비전 프로 마이크로 OLED는 소니가 제조했다. 화이트-OLED에 컬러필터를 더해 적(R)·녹(G)·청(B)색을 구현하는 방식이다. LG디스플레이가 TV용으로 만드는 W-OLED와 개념이 같다. 소니가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건 최근 낯선 모습이나 소니는 OLED TV를 최초 상용화한 회사다. 또 이미지센서 시장에서 세계 1위다. 마이크로 OLED가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기술 융합이 필요한 만큼 소니가 적극적으로 애플 수요에 대응한 것으로 풀이된다.
비전 프로는 다른 MR 헤드셋과 달리 외부에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점도 특징이다. 외부와의 소통을 위해 넣은 이 디스플레이는 LG디스플레이가 공급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화면 크기는 5.99인치며 OLED다. LG디스플레이는 애플 메인 디스플레이 협력사다.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등에 지속 공급했다. LG디스플레이가 차기 제품에 마이크로 OLED도 공급할지 주목된다.
비전 프로에는 동작과 공간 등을 인식하기 위해 다수의 카메라와 센서가 들어갔는데, 이 중 비행시간측정(ToF) 모듈을 LG이노텍이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ToF는 피사체에 광원을 쏜 후 되돌아오는 시간이나 변형 정도를 측정해서 거리, 입체감 등을 파악하는 부품이다. 애플은 2020년 아이폰12부터 ToF를 첫 탑재했다. LG이노텍은 이 때부터 ToF를 만들어 납품했다. LG이노텍은 광학 부품 쪽 애플 최대 협력사다. 정밀 제조가 필요해 후면 카메라, ToF 등 고성능 광학 부품은 LG이노텍이 사실상 전담했다. LG이노텍은 고부가 부품에 집중하기 위해 비전 프로에 탑재되는 카메라 대신 ToF만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전 프로 카메라는 중국 코웰이 맡는다. 코웰은 주로 아이폰 전면 카메라를 생산한 곳이다. 애플 발표에 따르면 비전 프로는 12개의 카메라, 5개의 센서, 6개의 마이크를 통해 콘텐츠를 사용자 눈 앞에서 구현한다.
비전 프로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는 애플이 자체 개발한 메인 연산기능을 수행하는 M2와 카메라, 센서 등에서 받은 정보를 빠르게 구현하는 역할을 하는 R1이 같이 장착됐다. M2에 들어가는 반도체 패키징 기판(FC-BGA)은 삼성전기가 공급해왔다. 반도체 제조 특성상 이번 비전 프로에 적용된 M2 기판도 삼성전기가 담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비전 프로는 첫 제품인만큼 3499달러(약 457만원)에 육박하는 높은 비용으로 인한 적은 수요와 작은 생산물량으로 인해 기대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그러나 애플 고객층이 탄탄하고, 애플은 후속 제품도 지속 출시할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대중화에 성공하면 아이폰과 같이 새로운 카테고리 제품이 탄생해 전자산업계에 큰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
애플은 향후 출시할 MR 헤드셋에는 현재의 W-OLED 방식 마이크로 OLED 대신 RGB 기반의 마이크로 OLED를 적용할 계획으로 전해졌다. 아직 전 세계에서 RGB 방식으로 마이크로 OLED를 개발한 곳이 없어 구체적인 시점은 미정이나 MR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면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가세할 공산이 크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해 8월 마이크로 OLED 개발을 발표한 이후 연말에는 마이크로 OLED 개발 연구조직을 갖췄다. 지난달에는 미국 마이크로 OLED업체 이매진을 2900억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LG디스플레이는 마이크로 OLED 개발을 위해 SK하이닉스와 협력 중이다.
김영호 기자 lloydmin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