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은 ‘기술의 진화 속도가 무한대에 이르는 특이점(Singularity)이 2045년에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인공지능, 데이터, 네트워크 등 디지털 기술이 특정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경제와 사회 전반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고 있다.
정부가 디지털 기술을 단순히 활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조직 운영과 업무 프로세스 등을 개선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도입·활용하는 시기가 되었다. 근본적인 혁신없이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없듯 공공영역의 데이터 개방이 가져올 사회적 변화에 대한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는 빅데이터 학습으로 구현되는 인공지능이 2030년까지 세계 경제에 기여하는 규모가 13조 달러에 달할 것이며, 세계 국내총생산(GDP)을 매년 1.2% 상승시킬 것으로 전망했다. 데이터가 ‘21세기의 원유’라 불리는 이유가 이해되는 대목이다.
국민의 안전에 대한 기대가 향상됐고 안전한 삶을 영위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욕구에 화재, 구조·구급 등 소방 안전 서비스 영역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 특히 최근 재난의 양상이 이전과는 다른 형태와 규모로 인류를 위협함에 따라 이런 재난에 선제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소방 혁신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아날로그 데이터를 가공해 디지털 형식 데이터로 전환하고 빅데이터화 하는 작업이다.
그동안 소방이 오랜 시간 화재, 구조·구급 등 수많은 출동 데이터를 축적해 자료를 갖고 있었음에도 단순히 아날로그식 저장에 그쳐 정보를 가공하고 활용하는 데는 미흡했다. 이에 각종 재난 현장에서 축적해 온 방대한 소방 활동 데이터를 소방 정책 수립 기초자료로 활용하고자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사업에 착수했다. 이는 곧 재난관리 패러다임을 대응에서 예방 중심으로 전환한다는 의미이다.
소방 활동 데이터 분석은 비단 현장 활동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경보기가 잘못 작동해 출동력 손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다양한 119 빅데이터 분석 업무가 활발히 진행되고 소방 정책 수립과 개선에 활용될 것이다. 잘못 작동된 화재경보의 원인분석과 같은 예방 분야, 신속하고 정확한 출동로 확보를 위한 출동 지연 요소 분석 등 대응 분야, 현장 대원의 안전사고 요인 분석 등 현장 안전 분야이다.
‘수요일 오후 2시, 특히 불조심!’ 최근 5년간 화재진압 출동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자료에 따르면 가장 많이 불이 발생한 요일은 수요일이다. 시간대는 오전 11시에서 오후 3시 사이이다.
이 같은 분석 결과는 화재 발생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각종 교육과 홍보를 통한 대국민 인식 전환 유용한 자료로 활용된다. 또, 지역별 화재 발생 데이터는 시도별 화재 발생 패턴을 아는 데 도움을 주고 예방 정책 수립 기초가 된다.
뿐만 아니라 전국 구조 출동 데이터는 지역에서 안전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장소를 알려준다. 이에 따라 국민이 주의해야 하는 지역이나 대상을 미리 알고 해당 지자체가 위험 요소를 사전에 제거하는 정책을 펼쳐 안전사고를 줄이는 근거 자료로 활용된다.
2020년부터 진행된 이 사업은 교통·산악·수난사고 등 사고 유형과 빈도에 따라 소방 활동을 분석했다. 그 결과를 해당 지자체와 관계기관이 공유함으로써 성공적인 정책 성과를 보이고 있다. 사업 시행 전과 비교해 해당 지역의 인명피해는 절반 이상 줄었고 출동 건수도 21% 감소했다.
지역별 환자 이송 건수와 차량 궤적 정보 등 구급 활동 데이터는 고품질 구급 서비스 제공을 위한 밑바탕이 되고 있다. 특히 구급 활동 구간별 소요 시간과 지역별 환자 유형 분석은 환자 이송 지연 원인을 도출하고 이송환자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필수 정책 자료가 됐다. 이 같은 구급 데이터 분석은 구급 서비스 품질 체계를 고도화하기 위한 토대가 되는 동시에 국가 응급의료시스템 선진화를 위한 밑거름이 되고 있다.
아울러 민간 참여와 협력을 도모하기 위한 데이터 정책도 진행 중이다. ‘소방 안전 빅데이터 플랫폼’도 3년간 시스템 구축을 마치고 지난 4월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시스템을 통해 소방산업의 기술정보, 지역별 건축물 특성과 주요 소방대상물의 설계도면, 소방산업 연구 분야의 모든 정보도 한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소방 안전 빅데이터 플랫폼은 정부와 공공기관은 물론 소방 관련 업계와 학계 관계자 등 국민 누구나 양질의 소방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공공형 플랫폼이다. 이전과 달리 초고층 건축물 등 대규모 건축물이 많아지고 각종 소방시설에 대한 데이터양도 방대해졌다. 이런 현실이 고려돼 지난 2020년 소방 설계, 감리, 점검 등 소방시설에 대한 데이터를 디지털 형식으로 전환하고 활용성을 높이기 위해 소방 안전 빅데이터 플랫폼 사업이 시작됐다.
플랫폼에는 소방산업 진흥과 육성에도 유용하게 활용 할 수 있는 소방산업 기술정보를 비롯해 지역별 건축물 특성, 주요 소방대상물의 소방시설 설계도면 등 600여 종 2000여 건에 이르는 소방 안전 데이터가 수록됐다. 사물인터넷(IoT) 기술정보센터, 인공지능 화재 위험 데이터센터 등 총 9개 데이터센터에서 수집된 소방 관련 각종 데이터를 이용자 요구에 맞춰 가공하고 융합해 제공한다. 향후는 개방형 플랫폼으로 전환해 일반 국민과 관련 기업 종사자 누구나 데이터를 생산하고 판매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빅데이터를 활용해 재난과 재해에 대한 분석과 예측 시스템을 구축하고 국민 안전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싱가포르 정부는 빈번히 발생하는 테러와 전염병으로 인한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2004년부터 RAHS(Risk Assessment & Horizon Scanning) 시스템을 이용해 뉴스를 포함한 세계 모든 온라인 공개 정보를 통해 질병, 금융위기 등 모든 국가적 위험 요인을 수집하고 있다.
정치와 환경, 문화로 나눠 수집된 정보를 분석해 위험 시나리오를 점검하고 필요할 경우 수정하는 등 선제적으로 위험 데이터를 관리하고 있다. 특히 정보 수집 과정은 물론 정보를 제공하고 모니터링하는 과정에서 블로그나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또 수집된 정보는 정밀하게 분석하고 분석한 결과는 일반 이용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량적 모델로 변환해 공개한다. 위험 데이터 관리에 일반 국민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새정부 출범과 함께 우리 정부는 ‘모든 데이터가 연결되는 세계 최고의 디지털플랫폼 정부 구현’을 국정과제로 채택했다. 국민과 기업, 정부가 함께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대한민국을 지향한다. 사회 각 분야에서 수집되는 데이터가 유연하게 융합되고 활용돼 정책적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는 부처 간 데이터 공유와 민간과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소방은 이러한 개방형 데이터 기반 위에서 국민 안전을 위한 혁신과 변화의 노력을 계속 이어 갈 것이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정책 개발과 과학 소방 구현은 머지않은 현실이 될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재난환경에 발맞춰 소방의 빅데이터 분석은 재난의 예측 가능성을 더 높일 것이다. 또한 빈틈없는 재난 대응으로 이어질 것이다.
체계화된 예방 중심의 재난관리로 국민의 안전한 일상을 지켜내기 위한 소방의 미래를 함께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기를 기대한다.
남화영 소방청장
〈필자〉남화영 청장은 1964년 경북 봉화 출생으로, 1986년 소방장학생(소방장)으로 임용됐다. 지난해 10월부터 소방청 차장 및 청장 직무대리를 역임하다 최근 승진 임명됐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장(2021), 경북소방본부장 (2019), 대구소방안전본부장(2016), 제주소방안전본부장(2015) 등을 역임했다. 남 청장은 온화하고 합리적인 리더십으로 직원 신망이 두터우며 뛰어난 업무기획·추진력을 겸비한 지휘관으로 평가받는다. 남 청장은 취임사를 통해 “국민의 성원과 사랑으로 발전한 소방이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신뢰와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새로운 변화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며 지휘부가 먼저 혁신의 기수가 되어 솔선수범의 자세로 임하겠다”고 전했다.
소방청장 남화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