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위원회를 띄우겠다고 공언했던 더불어민주당이 장고를 거듭하는 모양새다.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의 사의 표명 이후 더욱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라는 해석과 함께 ‘혁신위원장’ 자체에 매몰되면서 혁신위의 방향에 대한 논의가 사라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12일 국회 본청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이후 취재진과 만나 “(혁신위원장은) 다양한 루트로 추천을 받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 이사장을 혁신위원장으로 임명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가 당내외 거센 비판을 받았다. 천안함 등 이 이사장의 과거 발언이 문제가 됐다. 결국 이 이사장이 사의를 밝혔지만 이를 두고 친명(친 이재명)계와 비명(비 이재명)계의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혁신위의 방향을 두고 당내 입장은 사뭇 엇갈린다. 이 대표는 혁신위에 사실상 전권을 부여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공천룰이 이미 확정된 탓에 ‘사실상 전권’을 부여하더라도 혁신위 운영의 폭이 줄어들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일부 지도부 역시 지난 혁신위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가 감지된다. 지난 2015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대표이던 시절 김상곤 혁신위가 추진한 ‘부정부패 혐의 시 기소 시 당직 정지’와 ‘귀책 사유 시 무공천’ 등이 현재 당 지도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판단 탓이다.
정청래 최고위원 등은 공개적으로 ‘대의원제 폐지’나 ‘당원 소환제’ 등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정 최고위원은 지속해서 국회의원의 혁신위 참여 배제를 주장 중이다. 국회의원은 혁신위의 대상이라는 취지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이번 혁신위가 ‘전당대회 돈봉투 논란’과 ‘김남국 의원 가상자산(코인)’ 투자 논란 등을 통해 발생한 도덕성 논란을 회복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결국 대의원제나 당원 소환제 등 내부 제도 개선은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린다는 주장이다. 양소영 대학생위원장이 지난 9일 국회 본청에서 열린 민주당 확대간부회의에서 “국민의 관심사가 아닌 대의원제 폐지는 혁신기구의 주요 의제가 돼선 안 된다”는 발언은 이와 맥락이 비슷하다.
다만 민주당 지도부는 여전히 혁신위원장을 외부인사로 영입하는 것을 1순위로 삼고 있는 모양새다. 외부인사 출신 혁신위원장 후보군으로는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과 정근식 서울대 명예교수, 김은경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이들은 외부인사임에도 상대적으로 검증에서 자유롭다는 평가지만 당 내부 구조를 상대적으로 잘 모르는 탓에 일부 부정적인 기류도 읽힌다.
아울러 이재명 지도부와 투톱을 이뤄야 하는 상황에서 혁신위가 자칫 강성 지지층들로부터 거센 저항을 받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결국 지도부가 혁신위의 방향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민주당 의원은 “지금까지 혁신위를 꾸려서 잘 된 적이 없지 않나. 혁신위가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혁신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소영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오전에 열린 의원총회(의총)를 마친 뒤 취재진에 “오늘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토론이 이뤄졌다. 혁신위 기능이나 역할에 대해선 다양한 견해와 시각이 있을 수 있다”면서 “지도부가 혁신위 인선과 역할 정립 등을 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기창 기자 mobydic@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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