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혁신시스템(IIS)이 국가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으로 급부상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미·중 무역분쟁,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으로 글로벌 경제·산업 지형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대전환의 시대다.
전통 산업 질서가 빠르게 붕괴하면서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세계 각국·지역은 ‘혁신’을 핵심 가치로 삼아 산업 체질 개선에 속속 나서고 있다. 특히 경제안보 차원에서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기술 주도권 선점 경쟁이 치열하다.
대한민국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일구며 발전을 거듭하면서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새로운 먹거리 창출에 실패하면서 성장 정체기에 빠졌다. 과거에 머물러있는 산업 시스템을 미래 산업 중심으로 전환하지 못하면 선진국 간판을 내려야 할 수도 있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이인선 의원은 1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제1회 산업통상자원 R&D전략기획단(OSP) ‘코리아-GIFT’(Grand Innovation For Tomorrow) 포럼을 열었다.
포럼에 참석한 산학연 전문가들이 한 데 모여 한국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산업혁신 가속화 전략’ 마련 방안을 논의했다. 특히 차세대 기술 확산에 발맞춰 새로운 산업혁신시스템(IIS)을 구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장웅성 OSP 단장은 “급변하는 세계경제와 산업 구조 변화에 직면하면서 위기와 동시에 기회를 맞이하고 있는 시기”라면서 “우리나라의 미래는 기술혁신과 산업혁신에 달려있으며, 이를 통해 경제를 새롭게 성장시킬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국가혁신체제, ‘선진국형’으로”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석좌교수는 ‘첨단전략산업 성장을 위한 산업혁신시스템의 고도화’를 주제로 발제에 나섰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가 그동안 일본을 따라잡기 위한 추진한 움직임을 ‘추격 1.0’, 앞으로 미국과 독일 등을 목표로 삼는 것을 ‘추격 2.0’으로 각각 정의했다. 그는 올해 한국이 미국 대비 1인당 소득수준에서 70% 수준을 기록하면서 일본을 추월할 것으로 봤다.
이 교수는 ‘추격 1.0’을 화려하게 마무리한 한국의 국가혁신체제(NIS)가 추격형에서 선진국형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NIS는 기술혁신과 관련한 기업, 대학, 정부 등 혁신 주체 역량과 이들의 상호작용 효율성을 의미한다. 그는 NIS가 국민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결정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한국은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은 단주기(숏 사이클) 기술에 특화한 산업으로 급속하게 성장하는 데 성공했다”면서 “앞으로는 경쟁국이 우리나라를 쉽게 추격하기 어려운 장주기(롱 사이클) 기술 기반 산업을 추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계 보이는 NIS…새 체계 필요
산학연 전문가들은 현재 우리나라의 NIS가 한계를 보인다고 진단했다. 차세대 산업이 속속 등장하면서 새로운 관리·운용 형태가 요구되고 있지만 과거에 얽매이면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데 동의했다.
곽재원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부회장은 “코로나 팬데믹, 미중 패권경쟁, 기후변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이 한꺼번에 몰려온 지난 몇 년간 기존 NIS가 많은 한계를 노출했다”면서 “국내외 이슈는 전혀 다른 규모와 범위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해결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달라졌다”고 꼬집었다.
그는 변화하는 산업 생태계에 맞체 NIS를 정교하게 다듬는 한편 새로운 IIS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D 중심으로 구성된 NIS에서 벗언 경제안보 틀에서 작동하는 IIS가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염재호 태재대 총장은 국가 산업정책이 단순히 R&D 비용 증액에 매몰되면 안 된다고 봤다. 기술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지만 새로운 아이디어 구태에 얽매이는 사례가 있다고 지적했다.
염 총장은 “세계 경제가 6배 성장하는 동안 한국 경제는 400배 성장했다. 마이크로 레벨 수준의 산업 정책이 경제 성장을 이끈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면서 “지금은 새로운 형태의 접근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주현 산업연구원 원장은 R&D를 넘어 혁신 생태계 전반을 고민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과거 추격형 NIS는 낮은 혁신 탐색 비용과 개발 리스크 덕에 정부 주도 자원 배분이 효율적이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산업구조 고도화에 따라 후발자가 얻는 이득이 상당 부분 상실되면서 우리나라 혁신체제의 효율성이 빠르게 저하됐다고 봤다.
그는 “투입 대비 성과가 갈수록 약화하는 ‘코리아 패러독스’가 구조화됐다”면서 “R&D 중심 체계에서 벗어나 혁신을 창줄할 수 있는 제도, 인재, 시장환경 등 생태계의 다양한 구성요소를 균형있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현장 들여다 봐야
정부가 산업 현장 목소리를 적극 수렴해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천종식 CJ바이오사이언스 대표는 바이오 산업에서 활동하는 벤처·스타트업 사례를 소개하면서 정부가 혁신 생태계 조성을 위한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주요 R&D 영역이 격벽으로 막혀 있기 때문에 기술·인적 교류가 어려운 것을 고려해 규제 개혁과 국가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천 대표는 “국내 바이오 산업에는 이미 높은 수준의 기초 원천 연구가 수십년간 이뤄져 수천개 벤처기업이 R&D에 전념하고 있지만, 다음 바통을 받아줄 기업이 턱없이 부족하다”면서 “기초와 산업혁신 분야에 투입된 자금이 10년 후 국내에 다수의 빅파마를 탄생시키는 산업 혁신 시스템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화장은 산업 혁신을 위한 국가 시스템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특히 혁신 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초기 시장을 육성하는 시스템이라면서 혁신을 촉진하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회장은 “정부가 로또복권 1등 당첨자에게 부과하는 세금은 당첨금의 20~30% 수준이지만, 과학자, 대학교수들이 특허를 내면 40%를 적용한다”면서 “혁신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세태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혁신 환경을 만들자
포럼 참석자들은 새로운 시대의 산업혁신을 위해 다방면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봤다.
곽재원 부회장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IIS 기반 신산업혁신 리더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역균형발전이 아닌 지역특화발전을 위한 ‘지역클러스터’ 인센티브와 규제완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염재호 총장은 캐나다 아이스하키 선수 발언을 인용해 “위대한 선수는 퍽이 가는 곳을 보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 갈지를 예상한다”면서 “예를 들어 국가정보원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 흐름을 기업에 제공하는 등 산업기술 인텔리전스를 구축해 미래를 대비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현 원장은 글로벌 산업 질서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경제안보 차원의 기술 전략 수립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종식 대표는 정부의 과감한 규제 개혁과 마중물 수준의 직접적 지원을 주문했다.
황철주 회장은 “우리나라 면적은 세계 0.07%에 불과하며 천연자원이 거의 없다”면서 “강력한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윤희석 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