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형 기술 혁신의 핵심 ‘오픈이노베이션(OI:Open Innovation)’은 이제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대·중견기업에게도 없어서는 안될 성장 키워드다. 폐쇄형·단방향 혁신으로 볼 수 있는 기업 내부 연구개발(R&D)과 아웃소싱만으로는 더 이상 성장을 이어가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오픈이노베이션은 기술과 아이디어가 기업 내외 경계를 허물어 자유롭게 이동하고, 공유됨으로써 기업 상생의 혁신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성장판 역할을 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올해초 오픈이노베이션 생태계 추진축을 민간으로 전환하기 위해 기존 민·관협력 오픈이노베이션 지원사업을 민간주도+정부지원 형태로 개편한다고 밝힌바 있다. 스타트업과 수요기업(대·중견기업)간 상생협력 파트너십을 유도하고, 협업체계를 구축해 지원하는 오픈이노베이션 생태계를 확장하겠다는 의미다. 일회성 단순 지원을 넘어 기업간 실질적 연결을 통해 기업 성장은 물론, 고객에겐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겠다는 취지의 사업이다.
대구지역창업 거점인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이하 대구혁신센터)가 대구광역시와 함께 추진하는 스타트업 오픈이노베이션 지원사업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 오픈이노베이션 및 성장사다리는 대구혁신센터의 연속적 혁신창업 선순환체계 구축의 차별화 전략이다.
산업기반과 혁신기관 인프라를 연결한 연계협력, 혁신성장을 선도하는 스케일업, 네트워크 강화를 통한 탄탄한 대구형 성장사다리를 만들어가겠다는 구상이다. 대구혁신센터가 추진해온 산업기반 스타트업-대·중견기업 오픈이노베이션은 벌써 다양한 실적을 내기 시작했다.
대동그룹, 삼익THK, KB국민카드, KT, DB손해보험 등 대·중견기업이 대구혁신센터와 네트워크를 구축, ‘문제해결형(Top-Down), 자율제안형(Bottom-Up), 수요기반형(On-Demand)’ 등 다양한 방식으로 스타트업과 오픈이노베이션 사업에 뛰어들었다.
특히 문제해결형은 대구지역 공공기관 및 대·중견기업 수요과제에 대응할 수 있는 혁신 스타트업을 발굴·육성하는 성장촉진 오픈이노베이션이다. 지역내 공공기관 및 대·중견기업이 매칭 예산을 구성, 아이디어와 기술력있는 스타트업을 발굴해 사업화로 연계하는 방식이다. 대·중견기업 수요기술 사업화 공모를 통해 짧은 기간 안에 성과를 도출하는 것이 목표다. 기술개발 자금 및 개념검증(PoC:Proof of Concept) 자금을 지원하고, 제품 개발·고도화를 위한 기술 멘토링, 각종 인프라를 지원한다.
대구혁신센터의 오픈이노베이션 사업은 이미 2021년부터 다양한 공공기관과 협력해오며 노하우를 쌓았다. 한국가스공사와는 2021년 한해동안 그린뉴딜창업기업지원사업(사업비 10억원)으로 그린에너지분야 스타트업 발굴·육성에 나서 20개사를 지원했다. 한국가스공사와는 올해까지 3년째 에너지 관련 분야 스타트업 육성사업을 펼치고 있다.
2021년과 2022년에는 중소벤처기업부의 지원을 받아 사내벤처육성프로그램, 대-스타 해결사 플랫폼 스마트 스타디움 등을 진행해 스타트업 104곳을 지원했다. 올해 4월부터는 중기부 지원으로 민·관협력 오픈이노베이션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또 대구시 지원으로 대동그룹, DB손해보험, KB국민카드, KT와 지역 중견기업 삼익THK 등과 PoC 지원 및 수요기업 협업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가운데 대동그룹X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ESG 상생오픈이노베이션 지원사업은 지난 4월 대구시와 대구혁신센터, 대동그룹이 협력하는 오픈이노베이션 첫 사업이다. 최근 대동그룹 수요기술 관련 스타트업 3곳을 선정하면서 출발이 순조롭다.
사업에 참여한 미래 농업 리딩 기업 대동은 대구에 본사를 두고 농기계 사업에서 자율주행 농기계 개발과 골프카트, 전기스쿠터, 로봇체어 등 애그테크(Agtech)와 모빌리티 부문 플랫폼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고속성장하고 있다. 특히 올해 스마트 농기계와 스마트팜 사업에 집중하며 애그테크 전문기업으로 도약을 선언했다.
이번 오픈이노베이션 사업은 ‘빌드(Build)’, ‘바이(Buy)’, ‘파트너십(Partnership)’이라는 대동의 성장전략이 깔려 있다. 자체 개발(빌드)과 기술력 있는 기업의 인수합병(바이), 그리고 다양한 혁신기관 및 기업과의 협력(파트너십)을 바탕으로 고객에게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가치를 전달하려는 목표지향 전략이 깔려 있다.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과정을 스타트업과 함께 한다는 의미다. 대동이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 외형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기술력 있는 우수한 스타트업과의 상생 파트너십이 필요하다는 판단때문이다.
대동그룹X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ESG 상생오픈이노베이션 지원사업에는 대동의 수요기술 가운데 ESG기술과제에 에너캠프, 미래신기술과제에 레오엔과 지엘아이엔에스 등 3개 스타트업이 최종 선정됐다. 이들 스타트업은 기업당 최대 7000만원의 PoC 지원금을 받는다. 오는 11월말까지 대동그룹 내 현장실무그룹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향후 현장에 직접 적용할 수 있는 PoC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온디멘드(On-demand) 전기차 충전솔루션 기업 에너캠프(대표 최정섭)는 이번 사업을 통해 이동형 전기차 충전기를 활용한 전기이륜차 및 스마트 모빌리티 충전 솔루션을 개발할 계획이다. 자율주행 기반 호출형 충전서비스를 개발하고, 전력증강 시스템과 미래차 및 모빌리티를 위한 새로운 충전 솔루션 인프라 구축이 목표다. EV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고정형 충전기 인프라는 구축 속도가 느려 이동형 충전 솔루션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것도 호재다.
에너캠프는 이미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EV충전이 가능한 모듈형 배터리 개발 기술력과 제품을 보유하고 있다. 기술력을 인정받아 최근 30억원의 투자도 유치했다. 이번에 대동과 협력해 해외 이동형 충전 솔루션 시장을 파고들 계획이다. 에너캠프가 보유한 이동형 충전 솔루션 기술을 대동의 소형 전동화 트랙터에 접목, 고정형 충전 인프라가 부족한 미국 등 해외시장에 선보인다는 전략이다. 소형 전동화트랙터에 이동형 충전 솔루션을 패키지로 탑재할 경우 충전인프라가 부족한 해외 시장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정섭 에너캠프 대표는 “현재 대기업과 다양한 형태의 오픈이노베이션을 진행한 경험이 있다. 이번 사업에서는 대동이 해외 시장 진출 과정에서 원하는 기술을 제품에 접목, 글로벌 시장 동반 진출을 통한 상호 윈윈효과를 기대하고 있다”면서 “오픈이노베이션 사업은 대동과 에너캠프가 상호 신뢰를 통해 향후 지속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포항소재 레오엔(대표 류홍근)은 대동과 함께 미래신기술분야에서 유럽형 노지 포도농장 자율주행 운반 카트용 인공지능(AI) 카메라 시스템 개발 과제를 수행할 계획이다. 레오엔은 농업 환경 자율주행을 위한 단안 카메라 영상기반 대상작물 및 지지대 하단부 인식 AI 모델 학습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다. 기존 나무나 기둥 인식 AI 모델의 경우 자율주행에서 인식 정밀도와 재현율이 낮다. 레오엔은 작물과 지지대 하단부 인식 AI모델을 적용하기때문에 자율주행 경로로 활용 가능한 영역을 높은 정밀도와 재현율로 검출 가능하다. 실제로 사과와 포도 과수원을 대상으로 단안 카메라 영상기반 인식 테스트 결과 높은 인식율을 보였다. 이를 기반으로 현재 경북지역 사과와 포도 과수원을 대상으로 자율주행 인식 가능한 AI카메라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레오엔이 이번 사업에서 제안한 AI 카메라 시스템은 다양한 상황에 맞춤형으로 제작 가능하다. 농업뿐만 아니라 산업분야에도 손쉽게 적용할 수 있다. 레오엔은 대동과 함께 이번 오픈이노베이션 사업을 통해 이미 상용화된 플랫폼에 자율주행 기능을 추가하거나 유럽, 북미지역 노지 포도농장에서 농작업에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자율주행 이동체로 기능을 업그레이드한다.
류홍근 레오엔 대표는 “농업환경 자율 이동과 작업장비의 원가 상승 요인이 되는 고가 고정밀 GPS 기술, 3차원 카메라, 라이다 기술을 배제하고, 개발과 생산비용이 낮은 AI 영상인식기술을 적용하면 글로벌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면서 “해외 농업 현장에서 바로 활용 가능한 기술을 개발하고, 최종적으로 다양한 기능이 집적된 최적화된 AI 카메라 시스템 개발이 목표”라고 밝혔다.
지엘아이엔에스(대표 김덕흥)는 이번 사업으로 무선통신, GPS를 탑재한 농기계 통합 제어 컨트롤러를 개발할 예정이다. 대전 소재 지엘아이엔에스는 이미 대동에 농기계 부품을 공급해온 기업이다. 농업에 IT를 접목, 농기계 자동화와 라이다, 레이더 센서를 활용한 작물 모니터링, 농지 데이터수집 및 분석을 위한 빅데이터 기술력도 확보했다. 지난 2021년에는 두산밥캣 북미 수출용 트랙터용 클러스터, 컨트롤러 개발과 양산을 지원했고, 스타트업 사업화 과제로 사각지대경보(BSD) 기능을 제공하는 라이다 기반 시제품을 개발, 신뢰성 검증을 받음으로써 농기계를 제어하는 핵심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지엘아이엔에스는 이번 과제로 농업용 기계 통합 제어 시스템을 개발한다. 엔진과 변속기, 작업기를 제어하는 범용 컨트롤러와 자율주행, 무인 농업의 핵심인 GPS와 무선통신을 융합한 제품을 개발할 계획이다. 김덕흥 지엘아이엔에스 대표는 “통합 제어기를 농기계에 구현한 사례는 아직 없다. 대동과 협력해 트랙터 등 농기계에 통합 제어 모듈을 접목하고 향후 건설기계 등 다양한 플랫폼을 적용 타깃을 넓혀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구혁신센터는 이번 대동과의 ESG 상생오픈이노베이션 지원사업을 시작으로 다양한 대·중견기업-스타트업간 기술연계 오픈이노베이션을 추진하고 있다. DB손해보험과는 블랙박스 데이터를 활용한 새로운 솔루션 제공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블랙박스 데이터를 활용해 AI 자동 과실비율 판정시스템 성능점검 관련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을 발굴해 육성하는 사업이다. 또 KB국민카드와는 KB국민카드 데이터를 활용한 기술개발에 참여할 스타트업 2곳을 선발해 육성하는 데이터 오픈이노베이션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대구혁신센터는 이번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을 발판으로 대구지역 기반 중소·중견기업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수요기술 발굴, 대구 지역 스타트업 기술 연계를 위한 지원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자동차와 제조 등 지역 전통산업 중소·중견기업 수요기술을 발굴해 우수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의 판로개척을 연계함으로써 대구의 10년 뒤 산업 생태계를 준비하고, 지원한다는 목표다.
한편, 대구혁신센터는 그동안 중소벤처기업부·대구시와 협업하며 청년 창업문화 확산, 기술창업 지원, 대·중견기업 오픈이노베이션 육성 전략 등 탁월한 성과를 보여 최근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는 전국 17개 창조경제혁신센터 2022년 성과평가에서 최우수 센터로 선정됐다.
대구=정재훈 기자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