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지급결제 시장이 심상치 않다. 애플페이 상륙과 더불어 오프라인 결제 시장 강자였던 삼성페이도 변화 조짐이 보인다. 그동안 카드사로부터 징구하지 않았던 결제 수수료를 부과하려는 움직임이다. 수신업무가 없는 카드사로서는 조달금리 상승과 가맹점 수수료 인하 등 업황 악화로 비상이 걸린 모양새다.
최근 10년간 지급결제 시장은 급격한 변화의 연속이었다. 온라인 결제 급성장과 함께 오프라인에서도 모바일 결제가 일상화됐다. 이에 따라 복잡한 절차를 단순화해 비밀번호 또는 생체 인증만으로 결제가 가능한 간편결제가 보편화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카드사를 비롯한 전통금융사, 빅테크, 핀테크, 유통, 통신, 휴대폰 제조사가 결제시장의 주도권을 두고 격전을 치루는 양상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이런 변화가 긍정적이다. 결제 편의성과 다양성이 증가함으로써, 선택 폭이 넓어졌다. 때로는 포인트 등 혜택을 제공받음으로써 전반적으로 비용이 줄어드는 효과를 누리게 됐다.
그러나 시장참여자들은 상황이 녹록치 않다. 특히 간편결제 약진은 카드사에게 커다란 위협으로 작용했다. 빅테크 기업이나 삼성전자, 애플 등 휴대폰 제조사는 이미 보유 중인 고객군을 통해 결제 접점을 공고히 하고 있다. 또한 플랫폼 장점인 규모의 경제를 십분 활용하고, 생활밀착형 등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만들어내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통계자료를 보면 이런 시장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2020년 4492억원이던 일평균 간편결제 금액이 2022년엔 7326억원으로 40%나 가파르게 성장했다. 이 금액 중 네이버나 카카오 등 빅테크가 48%를 차지했고, 삼성페이 등 휴대폰 제조사는 25%를 초과했다. 반면, 카드사의 간편결제는 27%에 불과했다. 앞으로 애플페이가 통계에 추가되면 휴대폰 제조사가 카드사를 초월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이런 추세라면 결제시장에서 굳건하게 자리를 지켜온 카드사도 그 지위가 온전치 않다는 예상이다. 단순히 연회비 수취나 장단기 카드 대출, 대금 결제만 처리하는 중간 유통사로 전락할 수 있다. 자체적으로 만든 앱카드의 고도화나 카드사 연합 오픈페이를 통해 대응하고 있지만, 카드사마다 셈법이 다르기 때문에 별반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위기의 다른 한 축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핀테크다. 이들은 신선한 아이디어와 기술로 결제시장에서 초기 혁신을 이끌어 냈다. 그러나 자원의 한계와 빅테크의 높은 파고때문에 불과 몇 년 사이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핀테크 효시나 다름없는 페이팔은 시장을 먼저 읽고 미래를 통찰하며 혁신에 혁신을 거듭해왔다. 이메일 송금, 모바일 충전결제, BNPL(Buy Now Pay Later, 선구매 후지불) 서비스, 암호화폐 결제 등 시장보다 앞서서 소비자의 동기부여를 자극했다. 필요하다면 인수합병과 기술개발로 경쟁자와 맞섰다. 솔루션 기업을 인수해 개발자 친화적 소프트웨어로 온라인 가맹점을 공략했다. 또한 모바일 커뮤니티 기업을 인수해 개인간 송금 및 이체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이처럼 페이팔의 과감한 도전은 변화의 소용돌이에 있는 국내 기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페이팔의 동력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소비자 중심 서비스 개발, AI 및 블록체인 등 적극적인 신기술 적용, 광범위한 데이터 활용을 위한 과감한 투자다. 이러한 동력은 자산소비관리 등 다양한 서비스를 만들고, 폭넓은 고객층의 충성도를 높이는 요인이 됐다.
결국 지급결제의 진정한 가치는 소비자 생애에 걸친 생활 정보 등 핵심 정보를 다룬다는 점이다. 결제는 상거래가 최종 완성되는 지점에서 소비패턴, 선호도, 생활행태, 창업, 상권 등 무한 정보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정보가 기업의 다양한 사업모델로 연결되고 수익원천으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급결제 시장의 참여자들은 생존을 걸고 더욱 혁신적이며 도전적일 수밖에 없다.
송민택 동국대 겸임교수 pascal@apthef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