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한 교수의 정보의료·디지털 사피엔스]AI 판사

김주한 서울대 의대 정보의학 교수·정신과전문의
김주한 서울대 의대 정보의학 교수·정신과전문의

“인공지능(AI) 판사를 채용해 주세요.”

2020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청원이다.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운영자에게 고작 징역형 1년 6개월을 선고한 판결에 분노한 목소리였다. 국민의 사법부 신뢰 문제이기도 하고 법 감정 괴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물론 AI의 빠른 발전의 영향도 컸다.

26일 대법원 양형 연구회는 'AI와 양형'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재판에서 유무죄 판단이 중요하지만, 일단 유죄로 인정된 피고인을 어떤 형벌에 처할지 그 형벌의 종류와 정도를 최종결정하는 '양형' 판단이 유무죄 판단 이상으로 중요하다. 의료에 비유하자면 '유무죄 판단'은 '질병의 진단'에 가깝고, '양형'은 '처방과 치료'에 가깝다.

'치료'는 '진단'보다 더 복잡미묘한 행위다. 진단은 '사실과 현상'의 객관적 검토와 논리적 판단이라는 성격으로 어느 정도 정형화가 가능하다. 대략 '모범답안'이 있는 '진단'과 달리 '치료'는 다양한 적용 수단, 환자와 의료진이 처한 현실적 상황, 치료비용, 감내해야 할 위험 요인, 사회문화적 가치체계뿐 아니라 치료과정에서 벌어질 돌발상황 대응까지 다 고려해야 하는 '부단한 모색의 과정'이다. 재판의 목적 또한 그저 '나쁜 짓'을 처벌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적합한 형벌을 통해 피고인과 피해자와 그를 포함한 전체 공동체에 가장 긍정적 결과를 얻어내기 위함이다. 양형 판단도 '부단한 모색'의 과정이다.

법조계는 AI가 판사의 양형을 보조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유사 사건을 효과적으로 검색해 사건별 양형 분포를 파악하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의 업무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정형화된 데이터 처리능력에서는 사람이 AI를 따라갈 수 없다. 특히 경미하고 반복적인 사건의 처리에는 AI 판사가 매우 효율적이다. 흔한 경증 질환의 치료에도 AI 의사는 매우 효율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비언어적 소통을 분석하거나 변화하는 시대정신을 판례에 반영하는 등 현재로서는 쉽지 않은 역할도 AI의 발전에 따라 점차 해결돼 가고 있다.

하지만, 데이터 분석과 모델링에 따라 양형을 최적화하려는 'AI와 양형' 논의가 빠뜨린 점이 있다. 미국의 양형 보조 도구인 컴파스(COMPAS) 연구에서 AI가 흑인에게 더 가혹한 양형을 제시한다는 연구가 있었다. AI는 '모든 판례'를 다 학습한다는 점에서 '민주적'이지만, '과거의 모든 판례'를 다 학습한다는 점에서 '엘리트주의적'이다. 데이터 분석과 모델링에 기반한 AI는 판례라는 전문가 집단의 '전문가 합의'를 황금률로 삼는다. 결국 '전문가 자신이 황금률'이라는 '게으른 엘리트주의'가 한층 강화될 뿐이다. 과학기술의 영향을 많이 받는 의료도 매한가지다. 웬만한 과학적 증거로는 전문가 합의를 바꿀 수 없다. '옛 의사들의 판단' 자체가 황금률이다. 많은 의료 신기술 스타트업들이 장벽에 좌절하는 이유다.

데이터 분석과 모델링 AI에 대한 의존성은 앞서 말한 '부단한 모색'을 포기하는 것이다. 어떤 반대 관점은 각 사건에는 본디 '합당한 양형이 스스로 존재한다'고 보아 판사의 역할도 판단이라기보다 그 '합당한 양형'을 찾아가는 역할로 본다. 의사의 역할도 전문가인 내 판단이 정답이라기보다 질병의 생명현상은 스스로 존재하고 그 '최고의 치료' 또한 스스로 존재한다고 보아 이를 '부단히 모색'해가는 역할로 본다. 경미한 판결은 AI 판사에게 맡길 수 있다. 그러나 그저 '나쁜 짓'을 벌하고 종결하는 업무처리를 넘어, 고뇌에 찬 판사가 최종 판결문을 작성하듯, 공동체의 최선을 위한 최선의 양형을 찾아내려 부단히 노력하는 AI 판사를 완성하기까지 우리가 찾아내고 가르쳐야 할 것들이 정말 너무나도 많다.

김주한 서울대 의대 정보의학 교수·정신과전문의 juhan@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