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저귀는 아기가 태어난 첫해만으로도 2500~3000개가 사용되고 버려진다. 당장 미국에서만 매년 300억톤(t)이 넘는 기저귀 폐기물이 배출된다.
기저귀 폐기물은 대부분 매립되는데, 이는 미국 매립 쓰레기의 2%를 차지한다. 특정 연령대가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용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어마어마한 양이다. 더 큰 문제는 기저귀 폐기물이 땅속에서 모두 분해되는 데 500년 넘게 걸린다는 것이다.
최근 기저귀 폐기물 문제를 줄일 획기적인 방법이 등장했다. 시스완티 주리이다 일본 기타큐슈대 건축학과 연구원은 인도네시아 반둥대에서 강의하는 도중에 이 묘안이 떠올랐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출생률이 높아 기저귀 폐기물이 많이 발생한다. 높은 출생률은 '주택 부족'도 야기한다. 인도네시아는 저개발국가이기 때문에 건설 자재에 대한 비용 부담이 커서 주택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시스완티 연구원은 기저귀 폐기물을 건축 자재로 활용하는 연구를 진행했으며,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실었다.
◇모래 대신 기저귀로 콘크리트 반죽 만들기
기저귀는 목재 섬유질인 펄프와 면, 흡수성 고분자 물질로 이뤄져 있으며, 움직임에도 찢어지지 않고 단단하다는 특징을 갖는다. 연구팀은 높은 내구성을 지닌 기저귀가 콘크리트에서 강도를 높이는 역할을 하는 모래를 대체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진행했다.
우선 일회용 기저귀를 소독했다. 기저귀에는 사람의 오물이 묻어있으므로 깨끗이 소독하지 않으면, 2차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 소독에는 염화나트륨(NaCl)이 사용됐다. 염화나트륨은 일반적인 소독제는 아니지만, 배설물의 장내 미생물들은 높은 염분 농도에서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에 기저귀를 소독하는 데 효과적이다.
실제로 연구팀이 소독한 기저귀와 깨끗한 기저귀로 만든 콘크리트를 미생물의 존재량을 가늠할 수 있는 생물학적 산소 요구량(BOD)으로 각각 테스트한 결과, 비슷한 수치가 나왔다.
연구팀은 깨끗하게 소독된 기저귀를 잘게 부순 다음, 콘크리트 반죽의 모래를 0%에서 40%까지 기저귀로 바꿔가며 콘크리트 강도를 테스트했다. 실험실에서 뿐만 아니라 기저귀로 만든 콘크리트를 활용해 주택도 직접 건설했다.
실험 결과, 기저귀 함유량이 많아질수록 강도는 점진적으로 낮아졌고 함유량에 따라 콘크리트 용도를 크게 4종류로 나눌 수 있었다.
기저귀가 모래를 최대 10% 대체한 콘크리트는 3층 건축물에서의 힘을 받는 내력벽에, 20% 콘크리트는 2층 건축물에서의 내력벽, 30% 콘크리트는 1층 건축물에서의 내력벽, 마지막으로 40% 콘크리트는 힘을 받지 않는 비내력벽에 활용할 수 있었다.
연구팀은 36㎡ 면적의 단층 주택을 짓는 데 최대 전체 모래의 7.6%를 기저귀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기저귀 폐기물 1.7㎥에 해당하는 양이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일회용 기저귀 폐기물은 저소득 및 중산층 국가의 저가 주택 건축 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며 “이번 연구 결과를 보다 광범위하게 적용하려면 폐기물의 대규모 수거, 소독, 파쇄를 위한 프로세스를 개발하는 데에서 이해관계자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일회용 기저귀의 변신은 무궁무진
일회용 기저귀를 재활용하려는 연구는 이전에도 있었다. 2021년 미국 미시간대 연구팀은 일회용 기저귀에서 수분을 흡수하는 고분자 물질을 접착제로 사용하는 기술을 개발한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게재했다.
연구팀은 흡수성 고분자 물질을 3단계 공정을 거쳐 분해했다. 이 공정의 핵심은 흡수성 고분자 물질이 물과 결합하려는 성질을 제거하는 것이다.
연구팀은 폴리머 구조에서 물과 결합해 있는 수용성 사슬을 끊어낸 다음, 초음파를 이용해 폴리머 사슬을 짧게 잘랐다. 마지막으로는 접착제의 끈끈한 성질을 띠도록 폴리머 사슬의 산성 부분을 에스테르로 치환했다.
그 결과, 포스트잇이나 일회용 밴드에 사용할 수 있는 접착제가 탄생했다. 기저귀를 재활용한 접착제는 일반 접착제보다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이 적었다. 제조 시 사용되는 에너지는 25% 줄었으며, 지구온난화 영향은 22% 감소했다.
일본 재활용업체 토털케어시스템은 기저귀의 펄프만 분리하고 빨래 과정을 거쳐, 재생 펄프를 만든다. 우선 깔때기 모양의 분리조를 탈수기처럼 회전시켜 기저귀를 펄프와 플라스틱 등으로 분리한다.
이렇게 걸러낸 펄프는 다량의 물이 담겨 있는 세탁조로 옮겨 '세탁기 빨래'처럼 오염물을 제거하고 탈수하면 재생펄프로 재탄생한다.
이때 많은 양의 물을 사용하게 되는데, 토털케어시스템은 80%를 재활용 용수로 사용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대한으로 줄였다.
기저귀 재활용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독일 드레스덴 공대 크리스토프 슈뢰프 교수는 기저귀를 건축물로 재활용한 연구를 언급하며 “분해되지 않은 폐기물에서 가치를 창출한 방법이지만 기저귀 폐기물을 처리 공장이나 건설 현장까지 운반하는 경로가 길다”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기저귀 건축은 분해가 어려운 폐기물을 재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지표 중 하나다. 적절한 보완방식만 찾는다면, 기저귀는 매립지가 아닌 미래 주거 공간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글:박영경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