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현대차그룹은 화성에 새로운 전기차 전용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1994년 현대차 아산공장 기공식 이후 29년만에 이뤄진 자동차분야 국내 투자다. 반도체 분야에서도 낭보가 전해졌다. 삼성전자는 용인에 300조원 규모의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한다고 밝혔다. 그간 해외투자에 주력하던 기업이 다시 국내 투자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투자의 80%를 책임지는 대기업의 투자가 늘어나면서, 이와 관련된 중소·중견기업의 동반투자도 확대되는 모습이다.
기업들은 그동안 높은 조세부담과 낡은 규제, 반기업 정서, 빈번히 일어나는 강성노조의 불법 파업 속에 국내보다는 해외투자에 더 적극적이었다. 그 결과, 우리 기업의 해외투자가 매년 10% 이상 증가하는 동안, 국내 제조업 설비투자 증가율은 0%대로 정체 상태로 머물렀다. 대한민국의 성장판이 닫혀버렸던 것이다.
지난 해 5월 출범한 새정부는 우리나라 경제의 성장판을 다시 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라는 기조 아래 지난 1년간 기업 기(氣)를 살리고 우리나라 경제 활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가장 먼저 기업이 마음껏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발벗고 나섰다.
법인세를 인하해 기업 투자 여력을 늘리고, 해외유보금에 대한 이중과세를 조정해 기업이 해외에서 번 돈을 국내에 투자할 수 있게 했다.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등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은 경쟁국 수준에 맞춰 최대 25%까지 늘렸다.
우리나라 기업의 투자를 어렵게 하던 규제는 과감하게 뜯어고치고 애로는 해소했다.
규제로 인해 팹 생산능력 확충에 제약을 받던 용적률 규제를 첨단산업에 한해 완화해 적극적 투자를 이끌어 냈다. 교육환경평가로 인해 지연 우려가 있던 배터리 공장에 대해서는 선(先) 생산공장 착공, 후(後) 교육환경평가를 받도록 하여 신속히 투자가 이뤄지도록 했다. 지자체간 갈등으로 지지부진하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용수공급 문제를 해결했고, 수주를 받아놓고도 사람이 부족해 배를 만들지 못했던 조선업 인력난도 신속히 해결했다. 탈원전 대못은 뽑아내고, 현실과 동떨어진 목표로 산업계에 부담을 지우던 온실가스감축목표(NDC)도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수정했다. 우리 기업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던 노사문제도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대응해 떼법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명확히 했다.
여기에 더하여, 전 부처가 산업부, 수출부처라는 생각으로 세일즈 외교에 나서고 있다. 1호 영업사원 대통령을 필두로 미국 국빈 방문에서 59억달러, 얼마전 유럽 순방에서 9억4000만달러 투자를 유치하며, 상반기 168억달러 규모 역대 최대 외국인투자를 달성했다. 첨단산업의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서 미국, 일본 등과 연대를 강화했다. 핵심광물파트너십 체결 등 안정적인 공급망도 확보했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기존의 자유무역질서가 신(新) 워싱턴 컨센서스로 대체되면서 각국의 보호무역주의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또한, 우리와 전략적 분업 관계를 맺어온 중국이 우리 주력산업의 경쟁자로 부상했다. 인공지능(AI), 우주 등 미래첨단기술에서는 우리를 앞서 나가고 있다. 제조업 중심 우리 산업구조를 볼 때, 탄소규범 강화와 그린전환 가속화도 우리에게 큰 위기요인이다.
국내적으로도 구조적 문제가 누적되고 있다. 정부 재정 투입, 반도체 특수에 따른 착시효과로 우리 경제는 순항하고 있는 듯이 보였지만, 세계적 긴축기조 속에 수면 아래 있던 문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중국 의존도가 높던 수출은 부진에 빠졌으며,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주요 기관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하향조정했다. 우리 경제의 장기 잠재성장률이 0% 대에 임박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새로운 산업의 탄생이 없이 10년 전과 똑같은 수출 주력품목이 이어지고 있으며, 규제 지향적 문화로 인해 유니콘 등 새로운 기업의 출현도 쉽지 않다.
달라진 세계화 흐름에 맞춰 변화하고 저성장 위기를 극복해나가기 위해서는 최우선적으로 우리 기업이 일하기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기업 활동을 제약하던 규제 하나하나를 고치는 데서 나아가 잘못된 규제가 만들어지거나 강화되지 않도록 글로벌 스탠다드 규제준칙주의, 규제영향평가를 도입해 나갈 것이다. 나아가, 우리 현실에 맞는 제도를 국제사회에 확산시키고, 디지털, 공급망, 그린 등 신통상질서에도 능동적으로 대응해나가야 한다. 원전을 포함하는 무탄소에너지(CFE·Carbon Free Energy) 확산으로 우리 기업의 기후비용 부담을 줄이면서도 2050 넷제로 달성 가능성을 높여나가야 할 것이다.
근본적인 잠재성장률을 올리기 위한 노력도 계속할 것이다. 혁신인재가 적시에 공급될 수 있도록 산업계의 인재양성 참여를 제도화하는 '첨단산업 인재혁신 특별법'을 제정하고, 노동인력 감소에 대응하여 해외인력 유치와 AI·로봇의 적극적인 활용방안도 만들 것이다. 생산성을 높이도록 연구개발(R&D) 체계를 개선해 혁신기술에 과감한 투자가 이뤄지도록 하고, 글로벌 기관과의 국제협력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물론 이렇게 만들어진 우리의 첨단기술이 해외에 유출되어 국부를 좀먹는 일이 없도록 기술보호도 강화할 것이다.
이와 함께 방산, 원전 등을 우리의 새로운 수출 주력품목으로 키워나갈 것이다. 세일즈 외교로 수출 저변을 넓히는 한편, 원전 생태계 복원을 가속화하고 방산과 연계된 소재, 부품 개발을 촉진해 경쟁력을 높여나갈 계획이다. 또한, 에너지의 안정적, 경제적 공급에서 한발 나아가 에너지가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수소, 해상풍력, 탄소포집·저장·활용(CCUS), 고효율기자재,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을 육성해나갈 것이다.
새정부 1년을 맞이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77.6%의 중소기업이 정부 정책에 만족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우리나라 경제를 진정으로 생각하고, 우리나라 경제의 성장판인 기업의 기를 살리기 위한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준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머물러서는 안될 것이다. 남은 22.4%의 기업도 만족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경제의 성장판을 다시 열고 글로벌 경제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제1차관 yjjang@motie.go.kr
〈필자〉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제1차관은 산업 분야와 에너지 분야에 정통한 관료다. 장 차관은 1991년 행정고시 35회로 공직에 발을 들였다. 과거 지식경제부에서 가스산업과장, 운영지원과장, 주미국대사관 공사참사관 등을 지냈다. 산업부가 출범한 뒤에는 에너지자원정책관, 투자정책관, 산업혁신성장실장, 기획조정실장 등을 역임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지난 2월 산업부를 떠나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 원장으로 일했다. 윤석열 정부 초대 산업부 제1차관으로서 부처 실무를 총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