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23일, 김종필 전 국무총리(JP)의 5주기 추도식이 국회에서 엄수됐다. 훗날 국민과 역사가 더욱 평가하겠지만, JP의 통찰력과 정치력이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근대화, 문민화, 민주화를 이루는 역사의 변곡점마다 막중한 역할을 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JP는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의회주의자였다. 분열과 갈등이 아닌 대화와 타협으로 화합의 길을 추구한 낭만과 품격이 있는 최고의 정치가였다. 정치를 정쟁과 각박으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늘 여유와 여백, 유머와 해학으로 국민을 다독이며 안심시킨 나라의 든든한 기둥이었다.
묘비명에까지 새겼듯 일평생을 사무사(思無邪) 정신으로, 무항산이무항심(無恒産而無恒心)을 치국근본(治國(根本)으로 국리민복(國利民福)과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구현(具現)하기 위해 헌신진력(獻身盡力)했다고 자신의 인생을 반추한 그였다.
정치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국리민복(國利民福)과 국태민안(國泰民安), 국가를 이롭고 태평하게 하고 주권자인 국민을 행복하고 평안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본령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국가 최고규범 헌법에 새겨진 국민의 명령이기도 하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사악함이 없는 사무사 정신으로 민생 안정을 최우선의 사명으로 여기며 정치에 임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정치는 어떠한가?
국민을 평안하게 하고 국민의 걱정을 덜어줘야할 정치가 거리로 나가 비과학적 괴담선동으로 국민에 두려움을 주고, 각종 개인범죄비리에 전당대회 불법 돈봉투 수수를 하고도 법적 특권을 악용해 1년 내내 방탄 국회를 열어놓고 있다.
민생을 외면한 채 다음 선거, 당리당략만을 위해 민생과 국가미래를 희생시키는 무책임한 포퓰리즘 정치, 그리고 정치적 이익에 매몰돼 국격을 실추시키는 나라망신 외교훼방에, 실익없이 생색만 내는 평화쇼와 굴종적 자세로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참담하고 개탄스러운 상황도 계속됐지 않았는가?
과연 정치권이 국익과 국민을 우선해 정치인으로서의 소명을 다 하고 있는가? 각자 되돌아보고 반성해야 할 일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은 어떠한가?
대내적으로는 경제·안보 복합 위기, 심각한 저출산·고령화, 인구소멸, 지방소멸, 재난안전, 양극화, 일자리, 복지, 교육, 연금, 주거, 에너지, 환경, 기후변화 등 국가의 미래를 위해 해결해야만 하는 국가적 난제가 우리 앞에 산적해 있다.
특히 한국은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빠르게 고령화하고, 출산율마저 가장 낮은 나라다. 이에 따른 잠재성장률 하락, 연금·의료비 부담 증가, 국가채무 증가 등 복합연쇄 리스크를 세계 석학 및 전문기관들도 반복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게다가 국제정세, 남북관계와 동북아정세도 녹록지 않다. 미중 간 패권경쟁이 전방위로 확산하며 신냉전 대립이 노골화하고 자국우선주의 탈세계화·블록화가 심화되는 양상이다. 북한은 미사일·무인기 도발을 계속하는데다, 핵실험을 강행할 태세고, 이를 빌미로 일본은 재무장과 우경화 노선을 강화 중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냉혹한 현실의 벽이 우리 앞에 있다.
결국 복합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다시 도약토록 하기 위해 국민들은 지난해 대선과 지방선거 두 차례의 선거를 통해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을 바로 잡았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국익외교로 한미동맹 강화와 한일관계 복원, 탈원전 정책 폐기와 민간주도 성장기반 마련 등 외교·경제·사회 각 분야에서 결실을 맺어가고 있고, 사회 각 분야의 구조개혁,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폐지를 비롯한 정치개혁을 주도하며 비정상화된 대한민국을 다시 정상화하기 위한 배전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의 본산, 민의의 전당인 국회만큼은 아직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180석에 달하는 제1야당의 독선적 국회 운영, 입법 폭주로 국론을 분열시키고 민생정책과 국정과제를 건건이 발목잡고 있다. 소통과 대화, 합의와 협치는 사라졌고, 정쟁과 갈등만이 계속되고 있다. 10개월 남은 다음 총선까지 이러한 갈등과 극단의 정치는 노골화되고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그 피해는 국민과 미래세대의 몫이다.
돌이켜보면 과거의 정치는 투박하나마 국민에게 희망과 미래비전을 제시하며 갖은 국난을 극복하고 대한민국을 발전·진보시켜왔다. 국난 때마다 국론과 국민을 통합하며 수많은 위기를 함께 극복하는 동력이 돼왔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라는 국민적 결집과 미래에 대한 희망과 비전을 움켜잡고 국민적 단합과 화합으로 이뤄낸 대한민국이다. 폐허의 국가에서 이제 세계 10위권 안의 경제강국으로 발돋움했다.
우리는 여기서 '중진국의 함정'에 빠져서는 안된다. 한때 우리보다 잘 살던 아르헨티나와 필리핀 등이 선진국 문턱을 넘지 못하고 뒤쳐진 이유는 첫째가 정치불안이며, 사회불안, 극단적 포퓰리즘, 권력 부패로 이어지는 공통의 악순환의 고리가 있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중진국 함정을 반면교사 삼아 선진국 도약에 반드시 성공해야한다.
앞으로 10년에서 20년, 대한민국에는 가장 중요한 시기다. 선진국 문턱에서 추락한 아르헨티나와 필리핀, 그리스 등의 길로 갈 것인가, 위기를 넘어 안착한 구미 선진국의 길로 갈 것인가. 외환위기 때와 달리 지금은 외부 충격보다 내부 갈등, 체력 저하로 더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 상상 못 할 변화도 걷잡을 수 없이 밀려온다. 인공지능(AI) 등 기술 변혁과 인구구조 변화는 피할 수 없는 미래다. 우리가 갈등과 분열을 봉합하고 국론을 모아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로 함께 나아가야만 하는 이유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정치의 복원, 정상화를 반드시 선결해야 한다.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게 할 것이 아니라, 정치가 민생을 걱정하며 국익과 민생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야 한다. 여야가 진흙탕 정쟁의 늪에서 벗어나 진정 국익과 민생을 위한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한다. 그렇게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정치가 안정돼야만 한다.
정치의 복원, 정상화는 주권자인 국민들의 올바른 선택으로 시작된다. 대한민국 역사의 중요 변곡점마다 시대의 정치인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건 결국 국민의 힘이었다. '어떤 정치인이 생각이 바르고 사악함이 없는 사무사 정신으로 정치를 하는가? 국익과 미래, 국리민복과 국태민안을 위해 헌신진력하는가?'를 현명하게 살펴 국민의 정치적 대의자를 잘 선택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정치가 바로 서고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앞으로 20여년 후, 2045년에 우리는 광복 100주년을 맞게 된다. 우리는 이 광복 100주년을 어떻게 맞아야 할 것인가? 국가와 후세를 위해 현명하고 옳은 선택으로 정치를 바로 세우고, 광복 100주년에는 제2의 한강의 기적을 통해 세계일류, 미·중과 자웅을 겨루는 G3 강국의 꿈을 이루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국민이 선택한다. 우리 함께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의 힘으로 광복 100주년의 꿈을 이뤄 보자. 그것이 진정한 대한민국의 광복 100년을 맞는 의미일 것이다.
정우택 국회부의장 wtc0218@naver.com
〈필자〉정우택 국회부의장은 국민의힘 소속 충북 청주상당구 5선 국회의원이다. 성균관대 법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 제22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 경제기획원에서 13년간 경제관료로 일했으며, 미국 하와이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경제전문가다. 국회의원, 해양수산부장관, 충북도지사를 지내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했다. 국회 정무위원장.운영위원장, 새누리당 최고위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및 당대표권한대행, 국민의힘 전국위원회의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국회 경제외교자문위원장,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