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빅테크로부터 한국 시장을 수성하고 있는 네이버의 반격이 시작됐다. 글로벌 스탠다드를 강요하는 구글·마이크로소프트(MS)·아마존 등에 맞서 현지 시장이나 언어, 프로젝트에 최적화된 '로컬' 전략으로 글로벌 확장을 추진한다.
9일 플랫폼 업계에 따르면 네이버는 공식석상에서 '소버린 인공지능' 전략을 연이어 강조하며 자체 인공지능(AI) 모델의 해외 진출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소버린 AI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본격적으로 진출하지 않은 비영어권 국가들의 자체 언어 AI 모델 구축을 지원하는 전략이다.
지난달 성낙호 네이버클라우드 하이퍼스케일 AI 기술총괄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지역 특화 AI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하정우 네이버클라우드 AI 이노베이션 센터장도 한 토론회에 참석해 “한국어 중심으로 AI 모델을 만들고 평가한 노하우를 토대로 일본어 초거대 AI 모델을 개발 중이다. 그 다음으로 바라보고 있는 곳이 중동 시장과 동남아 시장”이라고 말했다.
네이버는 미국 기업들의 공세 속에서 AI주권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정치적 민감성이 큰 국가나 비영어권 국가에 맞춤형 AI 시스템을 제공해 구글의 바드와 MS의 챗GPT에 맞선다.
네이버는 이미 일본과 중동에서 다방면의 기술 협력을 하고 있다. 네이버는 AI 기반 상품추천 기술과 장소추천 기술 등을 기반으로 야후재팬과 함께 쇼핑, 로컬 영역에서 협업 중이다. 올 3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자치행정주택부 및 투자부와 MOU를 체결하고,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추진하는 국가 차원의 디지털 전환에 다각적으로 협력하기로 했다.
네이버가 하이퍼클로바X 기반으로 한 생성형 AI 검색 서비스 '큐:'와 '대화형 에이전트' 서비스 공개를 앞두고 있는 만큼, 이들 국가로의 AI 모델 진출도 임박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네이버는 클라우드 시장에서 이미 '소버린' 전략으로 파고들었다. 네이버클라우드는 아태지역에서 톱3 클라우드 사업자로의 목표를 제시했고, 이를 위한 동력으로 '소버린 클라우드'를 꼽았다. 이미 싱가포르 등에 구축된 데이터센터를 기반으로 현지 규정을 준수하면서, 미국 기업의 데이터 유출을 우려하고 디지털 주권을 수호하려는 시장에 핀포인트 전략으로 승부를 걸었다.
업계에서는 네이버가 기술 투자에 적극적이고 해외에서 서비스 역량도 증명해온 만큼 기술을 통한 현지 시장 공략에 성공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네이버는 매년 매출의 20~25%를 R&D에 투자한다. 서비스 전반에 AI 기술을 접목하고 브레인리스 로봇, 디지털트윈 등의 첨단 기술 역량도 보유했다.
네이버는 제페토, 웹툰 서비스로 억 단위의 글로벌 사용자를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네이버웍스 등을 내세워 B2B 시장까지 확장하고 있다. 네이버웍스는 지난해 12월 기준 고객사 47만, 이용자수 480만명을 돌파했다. 네이버는 또 스마트렌즈 기술이나 라이브커머스 기술을 포시마크에 접목해 C2C 시장 1위를 공고히 할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도 네이버 기술을 통한 해외 매출 증대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김동우 교보증권 애널리스트는 “네이버는 일본 쇼핑 검색 역량 강화와 C2C 플랫폼(포시마크)에서도 경쟁력 강화가 가능할 것”이라며 “클라우드 사업은 비영어권 지역에서의 구축형 클라우드 사업 확대에 따른 중장기적 성장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함봉균 기자 hbkon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