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로부터 전력을 구매하는 기업에 적용하는 '직접 전력거래계약(PPA)' 요금제 시행이 무기한 유예됐다. PPA 요금제가 산업용 전력 요금제보다 비싸 재생에너지 확대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산업계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한국전력은 최근 제3자간·직접 PPA 고객용 전기요금제(직접 PPA 요금제) 시행을 별도로 정하는 때까지 유예한다는 내용의 기본공급약관 시행세칙 개정을 안내했다.
대상은 직접PPA 계약 체결 이후 부족전력을 한전으로부터 공급받는 일반용(을), 산업용(을) 고압 전기사용자로 유예 기간은 이달부터 무기한이다.
한전이 직접 PPA 요금제 시행을 유예한 것은 산업계의 거센 반발 때문이다.
PPA는 민간 발전사업자와 전기사용자가 정해진 계약기간 동안 사전에 협의한 가격으로 전력구매계약을 체결하는 제도다.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에 한해서만 PPA를 허용하는 방식으로 지난 2021년 도입했다. 민간기업이 직접 재생에너지 발전에 뛰어들지 않고 RE100에 대응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줬다.
이후 한전이 직접 PPA 전용 요금제를 신설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한전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PPA 요금제 내용에 따르면 기본요금은 kWh당 9980원, 경부하 시간대(오후 10시∼오전 8시) 요금은 kWh당 95.1원으로 산업용 요금과 비교해 각각 50.5%, 0.2% 비싸다. 요금제는 재생에너지를 1%만 쓰더라도 적용받도록 규정했다.
이와 관련해 한전은 기업이 PPA를 체결하더라도 한전의 전력공급을 받아야하기 때문에 기본요금으로 고정비를 회수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전은 재생에너지 특성인 간헐성으로 인해 전력이 공급되지 않는 시간대에도 보완공급약관에 따라 전력을 공급해야 한다.
경부하 요금과 관련해선, 경부하 시간대 사용량이 많은 고객에게 혜택이 집중되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전체 고객 관점에서 요금제도를 운영해야 한다는 게 한전의 입장이다.
산업계에선 'RE100 대응 무력화', '요금폭탄' 우려가 쏟아졌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산업통상자원부, 한전에 전달한 건의서에서 “PPA요금제로 인해 중견 제조업체의 경우 연간 10억원의 비용증가가 예상되고 대기업의 경우 60~100억원 전기요금 상승이 예상된다”면서 “통상 PPA계약이 20년 장기계약인 점을 감안하면 최대 2000억원 안팎의 손해가 발생하고 이는 원가상승,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한상의가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참여기업과 협력사 321개사를 대상으로 PPA요금제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의 28.3%가'심각한 악영향', 48.1%가'부정적 영향'이 있다고 답했다.
한전의 이번 결정으로 직접 PPA 요금제 시행이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관측이 따른다. 한전이 유예기간을 못박지 않은 것은 제도 시행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한전은 앞서 지난해 12월, 직접 PPA 요금제 도입 계획을 발표한 뒤, 지난 3월·6월 말까지 두 차례 시행을 유예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직접 PPA를 통해 가격이 가장 싼 경부하 요금만 취사 사용하는 등 편법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 마련이 새 과제로 부상했다.
한전 관계자는 “PPA 요금제 시행 관련 여전히 산업계의 우려가 존재한다”면서 “요금제 보완 필요성을 검토하고 산업계와 추가 논의를 거쳐 시행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호 기자 snoop@etnews.com, 변상근 기자 sgb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