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에어컨 시장이 여름 성수기에 진입했지만 부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전기료 인상과 고물가 기조 속 소비심리 하락 영향이 크다. 한 해 가전 사업 실적을 좌우하는 에어컨 판매가 부진에 빠지면서 업계 고심이 깊어진다.
국내 가전 유통사에 따르면 올해 5~6월 에어컨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최대 20%가량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연간 에어컨 판매도 부진했던 터라 올해 반드시 반등이 필요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통상 에어컨 시즌은 무더위가 확산되기 전인 5월부터 시작된다. 가전 업계는 1월부터 신제품을 출시하고 3월부터 에어컨 구매 상담이나 사전 점검 등 마케팅에 착수한다.
올해 5~6월 에어컨 시즌 가전 유통사의 실적은 좋지 않다. 국내 대형 가전 유통 전문점인 A사는 해당 기간 에어컨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20% 감소했다. 또 다른 대형 가전 유통사인 B사는 4%가량 줄었다.
에어컨 판매 부진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가전 수요 둔화 여파가 작용했다. 글로벌 경기침체가 이어지며 필수재가 아닌 가전 판매는 뚝 떨어졌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가전 품목 경상금액(매출)은 30조4865억원으로, 코로나19 유행 이후 3년 만에 첫 역성장했다. 올해 들어서도 지난 5월까지 5개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했다.
고물가 기조가 이어진 가운데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총 다섯 차례나 전기료가 인상된 점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에어컨 구매는 물론 운영까지 부담을 늘렸다.
전기료 부담은 선풍기나 창문형 에어컨 등 소형 가전으로 수요를 전환시켰다. 실제 국내 주요 가전 유통사의 5~6월 에어서큘레이터·선풍기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장마철에 접어들면서 에어컨 대신 찾는 제습기 역시 6월 판매량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초기 구매와 운영비용 부담을 줄이는 창문형 에어컨을 대안으로 찾는 고객도 크게 늘었다. 올해 국내 창문형 에어컨 시장은 약 70만대까지 성장, 2020년 대비 4배 이상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가전 업계는 갈수록 여름이 길어지는 만큼 7~8월에도 수요가 이어질 것으로 기대를 걸고 있다. 하지만 소비심리 회복이 더딘데다 긴 장마, 예년 수준 무더위 등으로 부진 탈출은 쉽지 않을 것도 보인다.
가전 유통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6~8월 여름 에어컨 판매량도 전년 동기 대비 11% 줄어든 상황에서 올해는 지난해 수준보다도 더 안 팔리고 있는 실정”이라며 “2021년 코로나 펜트업 수요가 폭발하며 상당수 고객이 에어컨을 구매한 데다 올해는 고물가 부담이 커져서 수요 반등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가전 업계는 에너지 소비 부담을 줄이는 고효율 에어컨을 전면에 내세우는 한편 공격적인 할인 정책으로 수요 회복에 총력을 기울인다.
삼성전자는 '무풍 에어컨 갤러리'가 에너지 소비효율 1등급 최저기준보다 소비 전력량이 10% 낮다는 점을 강조한다. LG전자는 '휘센 오브제컬렉션'을 활용해 18평형 스탠드 품목 기준 월간 에너지 비용이 최저 수준임을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롯데하이마트, 전자랜드 등 대형 유통사도 7월 한 달 동안 주요 에어컨 품목을 20~40% 할인하는 행사를 시작했다.
정용철 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