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 배터리 구하기 별따기”…국내 중소기업, 배터리 못산다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 팩 ⓒ게티이미지뱅크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 팩 ⓒ게티이미지뱅크

# 배터리팩 제조 사업을 하는 A사는 국내 배터리 제조사로부터 인증 절차가 지연되면서 사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배터리 수급을 위해 정식 구매 루트를 포기하고 딜러를 통해 웃돈을 주고 사오거나 중국산 배터리를 공수하는 자구책을 고심 중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 팩모듈 제작기업과 이들로부터 배터리팩을 공급받아 전기버스, 초소형전기차, 전기스쿠터,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애플리케이션(완제품)을 만드는 기업들이 국산 배터리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반적으로 배터리팩 제조사들은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등 배터리 제조사로부터 인증을 거쳐 배터리셀을 공급받는다. 이를 모듈 혹은 팩으로 만든 후 전기차, ESS, 전기스쿠터 업체 등에 납품한다. 팩 제조사가 일종의 배터리 셀 총판 역할을 하는 셈이다.

최근 전기차 수요가 급증하고 배터리를 활용한 애플리케이션이 다양화되면서 배터리 셀 수요도 함께 늘었다. 하지만 구매력이 약한 기업은 수급에 난항을 겪는다. 특히 소규모 전기차·ESS 생산 업체 경우 국산 배터리를 아예 사지 못하거나 높은 가격을 지불해 겨우 소량을 얻는 실정이다.

계약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완성차 제조사에 공급하는 배터리 셀 가격은 kWh당 200달러 미만이다. 반면 국내 팩 제조사가 구매하는 가격은 최근 kWh당 300달러가 넘는 수준으로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셀 구매 절대량이 적어 가격대가 높게 형성된 것이다. 중소 배터리 팩 업체에는 큰 부담이다. .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가 안전 사고를 막기 위해 도입한 자체 사전검증절차도 허들로 작용하고 있다.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은 자사 배터리 구매 자격을 부여하는 프로그램인 'CET'와 'CCS'를 운영 중으로 일종의 인증제 역할을 한다.

업계에서는 이같은 절차가 안전성 확보라는 당초 취지를 벗어나 물량을 기준으로 고객사를 선별하는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주문량이 적거나 예상 매출액이 적은 프로젝트는 인증 조차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업계에서는 인증 건당 최소 100억~200억원 매출 발생이 가능하거나 원통형 셀 기준 최소 연간 100만셀 주문이 가능해야 인증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한 배터리팩 제조사 관계자는 “구매 물량이 많은 해외 고객사 대비 인증 절차가 느리게 진행되는데다 가격도 해외 고객사에 판매하는 것보다 20~30% 비싼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이같은 수급난으로 중국 배터리 셀 기업이 반사이익이 거둘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국산 배터리를 사지 못한 팩 제조사들이 중국 배터리 셀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팩 제조사들이 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팩으로 시장을 공략하는 일도 늘고 있다.

정현정 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