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AI가 공개한 챗GPT는 '5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릴 정도로 여러 산업계에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법률 시장에서 두드러진다. 많은 변호사가 급격한 기술 발전을 목도하며 '기술'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고 있다. 해외 리걸테크 기업은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서비스를 빠르게 선보이는 중이다.
미국 리걸테크 기업 케이스텍스트(Casetext)는 3월 초 최신 GPT-4 기반 코카운슬(CoCounsel) 서비스를 출시했다. 코카운슬은 법률 문서 검토, 증인 심문 준비, 유사 판결문 검색, 계약서 분석, 기초적 법률 제언까지 해주는 AI 법률 비서 서비스다. 대학원생 수준의 이해력을 바탕으로 읽기와 쓰기가 가능하다. 캐나다 미디어 기업 톰슨로이터는 케이스텍스트를 6억5000만달러(약 8586억원)에 인수한다고 밝혀 법률 AI가 지닌 높은 가능성을 보여줬다.
일본 대표 법률 플랫폼 벤고시닷컴도 4월 챗GPT를 활용한 무료 채팅 법률상담 서비스를 선보였다. 벤고시닷컴은 일본 변호사를 대상으로 AI 활용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변호사의 약 30%가 챗GPT를 활용하고 있으며, 전체 응답자의 70% 이상은 AI 도입에 '기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해외에서는 AI 기술의 효용 가치를 받아들이고 빠르게 적용해 업무 생산성을 높이는 데 활용하고 있다. 일반 국민도 호기심 있게 지켜보고 있지만 가장 크게 환영하는 건 역시 변호사다.
법률 시장에서의 AI 기술 도입 흐름은 올해 초 미국에서 열린 테크쇼(Techshow)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테크쇼는 미국변호사협회(ABA)가 매년 주최하는 리걸테크 행사로 많은 기업이 참여해 신기술을 소개하는 교류의 장이다. 현장에서는 혁신 스타트업이 기술을 소개하는 스타트업 피칭 대회 프로그램을 통해 기술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15개 참가 기업 가운데 절반 이상이 AI 기술을 활용한 서비스를 선보였다.
리걸테크가 성공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미국에서는 로펌도 기술 도입에 적극적이다. 미국 대형로펌에는 여러 리걸테크 기업이 출시하는 업무 효율화 솔루션을 직접 사용한 뒤, 로펌의 생산성과 매출 증대에 도움이 되는 솔루션 도입을 결정하는 팀이 별도로 있을 정도다. 계약서 검토 솔루션은 이미 대다수 로펌이 사용하고 있다. 미국 리걸테크 발전 속도와 국내 리걸테크 현실을 비교하면 가히 충격적 수준이다.
국내 법률 시장에서 AI 기술 도입은 어디까지 왔을까. 스탠퍼드대 로스쿨 법률정보센터 코드엑스(CodeX)가 분류한 리걸테크 영역은 크게 9가지로 분류된다. 그중 대표적인 영역이 변호사 정보를 찾는 마켓플레이스, 즉 법률 플랫폼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수백 개 법률 플랫폼이 활발하게 서비스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대한변호사협회가 변호사의 법률 플랫폼 가입을 금지하도록 규정을 신설함에 따라 리걸테크가 발전 동력을 잃고 2년 넘게 제자리걸음 중이다. 국내 산업 격차를 실감할 수 있는 단적인 사례다.
국내 리걸테크도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작지만 곳곳에서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최근 대한변호사협회가 법률 플랫폼 금지 규정을 근거로 변호사를 징계하는 것이 위법하다는 공정거래위원회 결론이 나왔다. 국내 리걸테크 업계도 AI 기술을 적용하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로톡은 변호사의 법률상담 준비 과정을 줄이고자 의뢰인이 작성한 상담글의 핵심 내용을 챗GPT를 활용, 요약해주는 기능을 도입했다. 의뢰인의 상담글과 유사도가 높은 사건의 판결문을 찾고 분석하는 서비스도 등장하고 있다. 변호사의 업무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기술을 접목한 다양한 서비스가 출현하고 있는 것이다.
걸음마 수준인 국내 리걸테크 산업이 성장하려면 해외 사례를 참고해 변화를 받아들이고 발전의 기회를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업계 뿐만 아니라 국가, 법조계, 학계의 전방위 도움이 필요하다. 먼저 국가 차원에서는 법률 시장에 AI 기술 도입과 활용을 촉진하는 정책과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법조계에서는 신기술이 가져올 변화에 대비하며 업무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기술이 발전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함께 고민해야 한다. 리걸테크 성장은 법률 전문가의 협력 없이는 실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학계 역시 AI 기술과 법률 분야 융합에 대한 연구를 확대하고, 법률 AI 기술을 발전시킬 전문 인력 양성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AI 기술은 지금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어디로 나아갈지 모른다는 우려로 무조건 막아 기술 효용까지 잃는다면 더 이상 국내 리걸테크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기술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효용은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시대의 지성이라 불리는 고(故) 이어령 교수는 AI 기술에 대해 “말과 경주하면 반드시 인간이 진다. 말과 직접 경주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올라타야 이긴다”라고 했다. 국가미래연구원에서 진행한 챗GPT 관련 세미나에서 김진형 전 인공지능연구원 원장도 “AI에 대한 근거 없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잘 활용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리걸테크 산업의 발전은 결코 몇몇 기업의 성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은 최근 '리걸테크 플랫폼의 존재만으로 전체 법률 시장이 27% 확대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특히 '확대 효과가 상대적 취약계층에 집중된다'는 분석까지 덧붙였다. 이처럼 기술 혁신이 가져올 과실은 변호사는 물론 법률소비자에게까지 모두 돌아가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법률 시장에 AI 기술을 성공적으로 도입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리걸테크 분야의 기술 주도권을 해외 기업에 뺏기고 글로벌 리걸테크 기업과 격차가 더욱 벌어지기 이전에 전향적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
정재성 로앤컴퍼니 부대표(공동창업자) js.jung@lawcompany.co.kr
〈필자〉정재성 부대표는 고려대에서 산업공학과 금융공학을 전공하며, 경영학을 부전공으로 공부했다. 졸업 후 약 3년 동안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앤드컴퍼니'에서 경영 컨설턴트로 근무했다. 법률서비스 시장에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변화를 일으키고자 2012년 김본환 대표와 '로앤컴퍼니'를 창업했다. 현재 로앤컴퍼니는 국내 1위 법률서비스 플랫폼 '로톡'을 비롯해 법률 정보 검색 서비스 '빅케이스' 등 법률서비스의 대중화와 선진화에 기여할 서비스를 다양하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