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예산 ‘대수술’ 불씨, 과학기술 거버넌스 재편으로 번지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청사 이전 현판식이 1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렸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비롯한 직원들이 현판 제막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오곤지 주무관, 조영찬 사무관, 성주영 국가공무원노동조합 과기정통부 위원장, 류광준 기획조정실장, 박윤규 제2차관, 이 장관, 조성경 제1차관, 주영창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송영섭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과기정통부 지부장, 김단호 인터넷진흥과장, 이주연 사무관, 성재민 주무관. 이동근 기자 foto@etnews.com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청사 이전 현판식이 1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렸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비롯한 직원들이 현판 제막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오곤지 주무관, 조영찬 사무관, 성주영 국가공무원노동조합 과기정통부 위원장, 류광준 기획조정실장, 박윤규 제2차관, 이 장관, 조성경 제1차관, 주영창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송영섭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과기정통부 지부장, 김단호 인터넷진흥과장, 이주연 사무관, 성재민 주무관. 이동근 기자 foto@etnews.com

연 30조원 규모를 넘어선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의 전면 재검토가 본격화되면서 과학기술계 혼란이 연일 지속되고 있다.

국가 R&D 시스템 혁신을 통해 재정지원 효과를 높이겠다는 목적이지만, 기존 R&D 시스템을 '카르텔'로 정의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과학기술 투자 전반에 대한 소극적 기조가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여기에 R&D 예산 권한을 중심으로 정부가 과학기술 거버넌스 재편에 나선 것이란 관측도 함께 나오면서 이번 '개혁'의 향방에 귀추가 더욱 주목된다.

이번 사태는 지난달 28일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보고에 대해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이 발단이 됐다. 윤 대통령은 다음날인 29일 차관 내정자들에게도 R&D 이권 카르텔 타파를 언급하며 개혁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이로 인해 현재 과기정통부는 내년도 국가 R&D 예산 배분·조정안 재검토에 착수한 상태다.

이와 관련해 이 장관은 지난 10일 과기정통부 신청사 이전 현판식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R&D 전반에 효율이 떨어지는 분야는 없는지 살펴보고 뿌려주기, 나눠지기가 있다면 그런 부분은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R&D 시스템 혁신 필요성에 공감하고 적극적인 추진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과학기술계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미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은 윤 대통령 지시 직후 일제히 R&D 예산 20% 삭감안을 제출, 구조 조정에 나섰다.

과학기술계는 이를 두고 '연구 자유도' 침해가 본격화될 것으로 분석한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연구성과 부진 등이 아닌 기존 R&D 구조를 카르텔로 규명한 만큼 출연연의 출연금 대폭 삭감 등 결과로 이어질 것이란 이유에서다. 다만 이 장관은 이같은 우려에 대해 '아직 모르는 이야기'라며 선을 긋고 있는 상태다.

일각에선 이번 사태로 국가 R&D 전반에 대한 불신 기조가 확대되면서 과학기술 관련 정부 조직 재편 전망까지도 나온다.

한 과학기술계 인사는 “내년도 R&D 예산안 심의·확정 법정기한을 넘기면서까지 제로베이스 재검토를 지시했다는 것은 이례적”이라며 “이는 결국 그동안의 국가 R&D 예산 심의·조정 역할과 R&D 성과평가 기능 등을 수행해 온 조직에 대한 불신이 우회적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즉 과학기술 거버넌스 관련 재편을 위한 신호탄이란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가장 밀접한 곳은 과학기술혁신본부다. 2004년 장관급 정부 조직으로 처음 설치된 과기혁신본부는 이명박 정부에서 폐지됐으나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2017년 차관급 조직으로 재편돼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현재 연 30조원에 이르는 국가 R&D 사업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 중이지만, 이번 사태와 가장 맞닿아 있는 만큼 이번 R&D 재검토에 이어 곧바로 과기혁신본부 권한에 대한 재조정 또한 가능성이 크다는 게 과학기술계 전반적인 분위기다.

이 때문에 공개적 반발도 이어진다. 실제 공공연구노조는 지난 5일 성명서를 통해 “연구비의 급격하고 일방적 삭감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연구비 삭감에 급급한 정부가 어떻게 미래·원천 기술분야 투자에 집중하고 단기 성과에 연연하지 않는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과학기술계 또다른 관계자는 “내달 확정될 내년 국가 R&D 예산안이 나와봐야 알겠지만, 현재까지는 연구현장 혼란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며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대통령의 대선 공약대로 R&D 예산의 무조건적 삭감이 아닌 건강한 연구혁신 생태계를 위한 효율적 분배가 최우선으로 고려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인희 기자 leei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