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정부가 발주한 백신 입찰에서 담합한 제조사와 총판, 판매상 등을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제재했다.
공정위는 백신제조사와 총판 등을 포함해 32개사가 2013년 2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170개 입찰에서 담합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409억원을 부과했다고 20일 밝혔다.
담합에는 백신제조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과 광동제약, 녹십자, 보령바이오파마, SK디스커버리, 유한양행, 한국백신판매 등 6개 백신총판이 가담했다. 이들로부터 백신을 공급받아 병·의원에 납품하는 의약품도매상 25곳도 담합에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의 담합 대상은 정부 예산으로 실시되는 국가예방접종사업(NIP) 백신으로 인플루엔자, 간염, 결핵, 파상풍, 자궁경부암 등 24개 품목에 이른다.
특히 장기간에 걸쳐 담합 관행을 고착화해, 입찰담합에 반드시 필요한 들러리를 전화 한 통 만으로도 섭외할 수 있었다. 낙찰자와 들러리로 각자 역할이 정해지면 낙찰자가 투찰 가격을 알려주지 않아도 알아서 투찰하는 등 입찰담합을 쉽게 완성했다. 낙찰예정자는 최대한 높은 가격으로 낙찰을 받기 위해 조달청이 제시한 기초금액의 100%에 가깝게 투찰하고 들러리는 이보다 몇 % 높게 투찰하는 식이다.
이런 방식으로 낙찰을 받으면서 담합에 성공한 147건 중 117건에서 낙찰률이 100% 이상으로 나타났다. 통상적인 최저가 입찰에서는 100% 미만으로 낙찰받는 것과 달리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에 해당한다.
정부 조달 방식이 바뀌더라도 이들의 담합은 유지됐다. 정부는 글로벌 제약사가 생산하는 백신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전체 백신의 5~10%인 보건소 물량만 구매하는 방식에서 연간 백신 전체 물량을 전부 구매하는 '정부총량구매방식'으로 조달 방식을 바꿨다. 기존 방식에서는 의약품도매상들끼리 담합을 시도했으나, 조달 방식 변경 후에는 글로벌 제약사와 백신총판이 담합에 참여했다. 제약사가 직접 들러리를 섭외하고 백신총판이 낙찰예정자로 등장했다.
녹십자, 보령바이오파마, SK디스커버리 등 3개사는 2011년 인플루엔자 백신 담합으로 제재를 받은 이력이 있음에도 재차 담합에 가담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공정위는 이번 담합으로 인해 정부 예산이 얼마나 낭비됐는지에 대해서는 추산하기 어렵다고 봤다. 담합을 하지 않았을 경우 경쟁을 통해 얼마에 낙찰됐는지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제조사인 GSK와 6개 백신총판사는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의약품 도매상은 입찰방해죄로 유죄가 선고돼 별도 고발 조치는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이 사건으로 정부 예산이 효율적으로 집행되지 못했다”고 평가하며 “국민 건강에 필수적인 백신 등 의약품에 관해 담함 감시를 강화하고 법 위반행위는 엄정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다현 기자 da2109@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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