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5일 개최된 애플 세계개발자회의(WWDC 2023)에서 팀 쿡 최고경영자는 혼합현실(MR) 헤드셋 '비전프로'를 공개했다.
비전프로는 고성능 컴퓨팅을 위한 M2 프로세서, 실감있는 콘텐츠 구현을 위한 R1 칩셋을 탑재해 디지털 콘텐츠가 마치 실제 공간에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사용자에게 제공한다.
그런데 애플은 비전 프로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메타버스를 한 번도 언급하지 않고 대신 공간컴퓨팅 시대의 도래를 알릴 뿐이었다.
비전프로는 애플이 자사 기술력을 총동원해서 만든 가장 뛰어난 제품이지만, 아직은 가격과 무게같은 외적인 문제뿐 아니라 어지럼증, 킬러(Killer) 콘텐츠 부족 등 현 시대 메타버스 기술력 한계를 명확하게 나타내고 있다.
세계 최고의 기업도 메타버스를 구현하기 위한 하드웨어(HW)와 소프트웨어(SW) 측면에서 아직 극복해야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 아직 출발 단계인 메타버스, 뭉쳐야 뜬다
코로나19에 따라 본격적인 비대면 시대가 열리면서 메타버스에 대한 기대가 급격히 상승했다. 하지만, 광풍이라 불릴 정도로 뜨거웠던 열기가 빠르게 차가워지고 있다.
비전프로 발표회에서 애플은 유명한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의 많은 클립을 활용해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다.
이 영화는 메타버스 세계가 어떨지 상상적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영화가 개봉한 지 5년이 지난 지금, 당장 주위를 봐도 영화의 '오아시스'와 비슷한 가상현실(VR) 서비스를 찾기란 힘들다.
특히 기술적 한계가 여전하고, 폐쇄형 플랫폼에 따른 상호 운용성 및 산업 생태계 측면에서 아직 극복해야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우선, 메타버스는 현실과 가상세계를 연결하는 확장현실(XR), 사물과 사람을 잇는 네트워크, 콘텐츠 저장과 공유를 유연하게 하는 클라우드, 디지털 트윈과 블록체인, 인공지능(AI) 등 현존하는 다양한 정보통신기술(ICT)이 동반 혁신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야 가능한 서비스다.
하지만 현재 기술에서 가능한 메타버스는 VR과 증강현실(AR)로 접하는 실감 콘텐츠, 진일보한 게임과 소셜 미디어 서비스 정도로 제한돼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울러 여전히 일회성 이벤트와 폐쇄된 공간으로 운영되고 공간 간 상호연동이 제한돼 있어 이용자들의 불편과 확장성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메타버스 플랫폼과 XR 콘텐츠 개발에 가장 널리 활용되는 게임 엔진 및 GPU 등의 대부분을 외산에 의존하고 있다.
국산 AI 반도체와 더불어 엔진 및 콘텐츠 제작 등 다양한 생태계가 동반 성장하기 위한 기반 마련이 시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메타버스, 내실 다지며 도약을 준비
메타버스 기술은 예술, 미디어, 관광, 소비재 등과 유기적으로 결합해 무한한 확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전후방 산업연관 효과가 매우 높은 분야다.
특히 최근 챗GPT의 확산을 계기로 누구나 쉽게 AI를 활용해, 텍스트를 넘어 소리·이미지·3D공간 등 메타버스 제작 및 운영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글을 이미지나 영상 등으로 바꾸는 멀티모달 기능을 갖춘 생성형 AI가 주춤하는 메타버스 완성도를 높이고, 변화를 주도하는 엔진 역할을 수행하면서 메타버스 생태계 진화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생성형 AI와 메타버스를 결합한 킬러 서비스 모델을 발굴하고 기기, 플랫폼, 서비스의 산업 선순환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지속적인 기술개발, 각종 규제개선, 인재양성, 전문기업 육성도 병행해 나갈 때 우리나라 메타버스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도 한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상상이 현실이 되어가는 메타버스 세상! 우리나라가 글로벌 메타버스 산업을 선도하고 세계를 이끌어 갈 날이 조만간 실현되고 그런 세상이 펼쳐지길 간절히 기대해 본다.
글:도승희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