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직으로 가는 것이 진정한 영전(?)'
최근 중앙부처 공무원 사이에서 돌고 있는 자조 섞인 표현이다. 핵심 업무를 맡았던 공무원들이 죄다 감사를 받으면서 징계는 물론 구속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여있으니 너도나도 한직을 선호한다. 주택 정책이 업무의 꽃이었던 국토교통부 공무원들은 이제 주택이라면 등을 돌린다. 실제로 최근 국토교통부 사무관들을 대상으로 희망부서를 조사하니, 주택을 지원하는 사무관이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지난 정부의 주택통계 조작 의혹으로 감사를 받고 있는 국토교통부 공무원이 십수명이다. 실장급 절반 이상이 감사로 발이 묶였고, 사무관부터 국장급까지 일 잘한다던 공무원들이 줄줄이 감사 개시와 함께 1년 가까이 인사 제약을 받고 있다. 일 할 사람이 없어지는 것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모든 공무원들의 일할 의욕까지 없애는 것이 문제다.
이는 더 큰 문제로 이어진다. 주거정책심의위원회만 열려도 집값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마당에 부처 내 주택정책 전문가를 없애는 결과를 낳는다. 비전문가가 만드는 주택정책이 어떤 후과를 가져오는지는 '임대차 3법'을 통해 현 정부마저도 뼈저리게 느꼈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갖는다고 해도 면밀한 분석과 진단이 없으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전세 안정을 위해 4년으로 임차 기간을 늘렸지만 전세 물량 감소와 전세값 폭등이라는 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전문가들은 예상했던 결과이기도 하다.
주택통계 조작과 같은 위법 행위가 있어서는 안 되지만, 이를 잡기 위해 모든 실무진을 다 털자는 식의 접근이 정부 운영과 민생 안정에 과연 도움이 될 지 의문이다.
국토교통부만의 일이 아니다.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도 원전 조기 폐쇄 의혹부터 태양광 비리까지 줄줄이 감사·수사 대상에 올라 곤혹을 치르고 있다.
이대로라면 다음 정부에서도 공무원 털기가 반복될 것이 뻔하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서울~양평 고속도로와 무량판 구조에 이어 이제 잼버리 대회까지 두고 전 정부 탓과 현 정부 탓이냐로 싸우고 있다. 담당자들에 대한 감사와 수사가 또 한바탕 재현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국정과제를 수행해야 할 공무원들의 부담은 더욱 커진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가 아니라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지 마라'가 된다. 핵심 업무일수록 최대한 문제가 없도록 시간을 뜸들이고 늦추는 것이 낫다는 말까지 나온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태를 지켜봐온 젊은 공무원들은 이제 예비타당성에 나온 노선만 그대로 고수하고 대안노선 검토는 최소화하려고 할 것이다. 대안노선 검토를 최소화하면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다고, 변경하면 무슨 이유인지 털려고 하지 않겠느냐고 하소연한다.
정부는 한쪽에서 규제혁신을 외친다. 규제혁신을 위해 공무원들의 적극행정이 강조된 것은 지난 정부부터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라면 적극행정은 곧 감사 대상이다. 특히 현안이 터지고 핵심 정책을 수립할 때면 '월화수목금금금'을 밥먹듯이 해야 했던 공무원들이 1순위다. 적당한 한직, 적당한 업무가 최고의 덕목이 되는 셈이다.
가뜩이나 복지 혜택은 줄고 세종시 이주로 문화·의료 혜택도 줄어든 마당에 공무원 사회를 떠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하고 있다. 공무원들의 위법행위는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할 문제지만, 지나치면 빈대 잡다가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문보경 기자 okmun@etnews.com
-
문보경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