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일어날 대형 범죄를 예측하고 범죄 주체가 될 피의자를 미리 검거해 범죄를 방지한다. 이를 통해 수많은 사상자 발생을 방지하고 재산피해를 최소화한다. 2002년 개봉한 공상과학(SF)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이야기다.
일면식도 없는 불특정 다수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가해 행위를 벌이는 이른바 '묻지마 범죄'가 최근 대한민국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신림역 칼부림 사건에 이어 서현역 칼부림 사건, 대전 교사 칼부림 사건 등 약 보름동안 사상자가 발생한 칼부림 사건은 총 8건에 달한다. 이 외에도 크고 작은 칼부림 미수 사건이 연이어 발생함과 동시에 이 같은 사건들이 촉발제 역할을 하듯 온라인상에는 약 30건에 달하는 묻지마 범죄 예고가 쏟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묻지마 범죄로 인한 사상자 규모가 점차 커짐에 따라 이를 '테러'로 정의하기까지 한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최근 연이은 묻지마 범죄를 사전에 알고 예방할 수 있을까? 영화에서 현실 속 아직 발생하지 않은 범죄를 미리 알아내는 장치인 '프리크라임(pre-crime)'과 같은 기술이 최근에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분석 기술 등의 발달로 점차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
국민 치안을 책임지는 경찰청에서도 이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경찰청은 AI 기반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범죄 위험도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범죄 위험도 예측분석 시스템(Pre-cas)'을 개발해 가동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112신고와 범죄 통계 등 치안 관련 데이터를 통합, 이를 AI가 분석해 범죄 위험도를 예측하는 구조다.
경찰청은 시스템을 기반으로 범죄 위험도가 높은 장소를 순찰차 내비게이션에 자동으로 전달시켜 선제적 순찰이 가능케 했다. 시간 및 장소별로 범죄와 무질서 발생 변수를 예측해 경찰 인력을 미리 배치하는 등 범죄를 사전에 대비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다만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프리크라임 시스템과 차이점이라면 특정 범죄자를 단정해 알려주는 것이 아닌, 취약지역을 기반으로 범죄 위험도를 분석하는 예방 위주라는 것이다.
이를 더 보완해 우발성을 포함한 묻지마 범죄 예방에 근접한 기술도 개발이 활발하다. 광주과학기술원(GIST) AI대학원 전해곤 교수 연구팀은 최근 AI 기술을 기반으로 도시 시각 영상 정보를 분석, 일탈 행위 발생 가능성을 탐지하는 모델을 고안해냈다.
기존 범죄 예방 기술들이 제한된 장소인 단일 이미지에 의존해 위험도를 예측했다면 연구팀은 구글 지도 영상과 실제 범죄 정보 GPS 값을 결합, 객관적이면서도 대규모의 데이터셋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 더 포괄적인 범위를 대상으로 비규범적 일탈행동 발생을 예측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이 기술이 기존의 '깨진 창문 이론'을 기반으로 한 도시 치안 이론 및 기술보다 포괄적 일탈 행위 이론을 AI 모델로 구현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고 설명한다.
국내 범죄 예측 선두주자로 평가받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도 힘을 보태고 있다. ETRI는 CCTV를 활용한 AI 인식시스템으로 범죄 예측 시스템을 개발, 관제요원의 보조 수단 격인 CCTV를 완전히 독립적인 범죄 예측 수단으로써 활용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 외에도 '사람 재식별 기술'을 활용해 고위험군 특정인 경로 분석이 필요할 때 즉시 대상을 찾을 수 있는 시스템 개발 등을 개발하고 있다.
다만 이들 기술이 SF 영화와 같이 활용되기 위해선 정확성을 비롯한 기술 고도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한 범죄 예방 기술 개발과 더불어 기존 기술의 고도화를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과학계는 이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머지않은 미래에 단순 시각 정보와 범죄 및 일탈행동 간 관계성을 연구하는 사회학·범죄심리학과 결합을 통한 SF영화와 같은 효과적인 묻지마 범죄 예방 수단으로 발전할 것으로 예측한다.
이인희 기자 leeih@etnews.com
-
이인희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