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경제로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산업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빅 블러(Big Blur)라고 하는 이러한 변화는 특히 금융업에서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다. 빅테크 기업이 금융서비스를, 은행도 이동통신 서비스를 각각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산업간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서비스가 출시할 수 있게 된 것은 데이터 중심 경제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부는 데이터 3법 개정을 필두로 다양한 규제 완화를 통해 시장의 창의성이 발현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고, 시장에서도 새로운 플레이어 출현으로 보다 경쟁력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최근에는 금융과 비금융 분야간 데이터 동맹(Data Alliance)을 통해 개별 금융기관 한계를 넘어 신사업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같은 변화에 맞춰 정부는 지난달 '가명정보 활용 확대방안'을 발표했다. 보다 안전한 데이터 활용을 위해 가명정보라는 개념이 도입됐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장에서는 데이터 보유기관의 보수적 태도와 가명처리의 실무적 부담으로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일례로 공공의료 데이터는 헬스케어 산업 활성화, 새로운 보험상품 개발 등 활용 가치가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반대에 부딪혀 활용이 요원한 상황이다.
앞으로는 가명 처리된 양질의 데이터가 민간기업과 연구소 등 다양한 수요처에 적극적으로 제공돼 이종 산업간 데이터 결합을 촉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소비자에게 다양한 편익을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금융분야 데이터 역시 비금융분야와 결합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지난 3년간 데이터 결합 건수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금융분야 내 결합보다 금융과 비금융간 결합이 비교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IT·통신·유통 등 다양한 산업분야의 데이터와 결합을 통해 대안신용평가모형 개발, 소상공인 밀착 컨설팅과 같은 새로운 서비스가 출시됐고 데이터 결합 수요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가명정보 결합 업무를 수행하는 데이터전문기관도 계속 확대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다른 데이터와 결합해야만 가치가 드러나는 데이터도 존재하며 다양한 업종 데이터를 결합한 집합 데이터는 시간이 지나도 개별 데이터보다 가치가 높다고 한다. 데이터 결합은 향후 인공지능(AI) 분야 성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AI의 학습에 알고리즘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데이터 셋(data set)기 때문이다. 강력한 AI 시스템은 강력한 데이터가 필요하다. 앞으로 데이터 정책이 산업간 데이터 결합 저변확대와 활성화에 주력해야 하는 이유다.
이와 함께 가명정보를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는 여건 또한 충분히 마련돼야 하는데 재식별 위험이나 정보유출과 같은 위험으로부터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 노력도 필요하다. 최근 실제 데이터보다 높은 성능과 안전성을 갖는 합성데이터(synthetic data) 기술이 주목받고 있는 것과 더불어 산업분야를 막론하고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노력 또한 병행돼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산업별로 양질의 빅 데이터 환경을 구축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여 왔고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어 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데이터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산업간 데이터 장벽을 낮추고 보다 안전하게 데이터를 활용함으로써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
방태진 한국신용정보원 상무 tjbang@kcredit.or.kr